올드걸의 시집

그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 은유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과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 김수영 시집 <거대한 뿌리>

지금 파리는 새벽 한 시 반이고 남자친구도 강아지들도 다 잠이 들었어요. 공부하던 책을 내려놓고 멍하니 앉았다가, 잠 안 오면 한잔씩 마시려고 사다둔 술을 병 채로 마시고 있어요. 그러니까 새벽이고 술을 마셨으니까 감정적이어도 이해해달라고 자기변명을 하는 중이에요. 아니 이렇게 해야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어리광을 부려보는 중이에요….떠나…온…거 후회해요. 이제는 밤에 잠도 잘 이루지 못할 만큼. 왜 그때 떠나왔을까. 뭘 배우겠다고 떠나왔을까. 나 살던 공동체에서도 못 찾던 답이 여기에 있을 리 만무한데. 전 이제 비판 따위 할 자격도 없는 놈인 거 같아요.

언니는 자본주의가 뭐라고 생각해요? 소작농들의 처절한 일 년 농사를 다 앗아가는 지주나 노동자들의 노동의 대가를 다 가져가는 부르주아나 다를 것도 없는 더러운 세상에 그래도 신분제가 철폐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진보였다고…언니 한 마디만 대답해주세요. 그럼 정말 믿을게요. 어떤 철학자의 말보다 어떤 혁명가의 말보다두요… 어제 홍대 미화원 노조에 쌀을 인터넷으로 사서 보내놓고 전 제 자신이 용서가 안돼요. 나이라는 걸 먹으면 강해질 줄 알았고 강해지면 더 또렷해질 줄 알았는데 스무 살이건 서른 살이건 한국 이건 프랑스이건 저는 아직도 질문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이젠 제 자신에 대한 분노로 비판도 부끄러워 너무 부끄러워서 잠을 이룰 수도 없어요.

생태공동체건 유럽식 사회주의 복지사회건 모두 허울임을…설령 프랑스의 노동자가 잘 살고 한국의 노동자가 잘 살게 된 들 남미의 농민이 가난한 세상이면 결국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왜 냐하면 북반구의 산업 국가의 노동자들이 한때나마 임금이 올라 잘 살아도 그 구조적인 자본주의의 착취가 사라지지 않는 한 결국은 소용없는 일이라는 거. 내 공동체만 억울한 이 없으면 끝날 일도 아니기에. 눈만 뜨면 정보라는 이 세상에 1초면 이렇게 구만리를 넘어 글이 도착하는 이 세상에 연대조차 못하는 우리가 태연하게 사회의 잉여물로 공부라는 걸 했다는 저 같은 것들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에…언니, 미안해요. 질문이라는 거 계속하면 그거 답은 아니더라도 길은 보이겠죠? 그죠?

네 편지 읽으니 좋구나. 젊음이 느껴진다. 그런 고뇌, 그런 방황 나는 안 해본지 너무 오래된 거 같아. 보수적이 되어가는 증거겠지. 자명한 것에 물음을 던지지 않는 것 말이야. 떠나온 것 후회되니? 난 태어난 것이 후회된다. -.- 이 세계가 추악하고 나란 존재는 무기력하고 그래. 요새 인생 최대의 슬럼프를 보내고 있단다. 서울은 한 달 넘게 영하 10도 날씨가 계속돼서 마흔을 넘긴 내 몸은 완전 땅으로 꺼지려해. 그런데도 아감벤 공부하고 왔어. 살을 에는 찬바람 맞으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왜 공부하는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남들처럼 무슨 학위 따고 연구자의 길을 갈 것도 아닌데…그냥 나의 갑갑함이겠지. 뭐라도 삶의 근거, 희망 나부랭이를 찾고 싶은.

산다는 것은 물음을 발명하는 일이지. 묻고 답하고 한 평생 그러다가 가는 거야. 물음이 멈출 때 투쟁도 끝나겠지. 네 공부도 이제 일 년 남았으니 좀 더 힘을 내렴. 일단 이루려던 목표는 이루고. 그곳이 서울이든 아프리카든 파리든 네 몫이 있을 거야. 혹시 공유정옥씨 아니? 운동권 의대생출신인데. 지금은 의사 그만두고 삼성백혈병 노동자 도우면서 노동보건운동 활동가로 일하더라고. 네 생각했어. 너도 의대 졸업해서 반도체산업 노동자들 위해서 일하면 좋겠다 싶더라고. 국제연대가 필요한 영역이기도 해서.

파리에 있으면서 홍대노동자 아주머니들에게 쌀을 보냈다니 나보다 훨씬 낫구나. 난 집에서 가까운데 아직 못 가봤거든. 그런 나누는 마음에 의학적 지식까지 갖추고 있으면 네 앎과 삶은 넘쳐흘러 누군가의 삶에 가 닿겠지. 우린 다 연결돼 있으니까 말야. 나는 궁극적으로 현장인문학이 하고 싶은데 이 세계를 덮고 있는 자본의 신을 벗어나 다른 삶의 척도를 발명할 수 있는 그런 삶의 공부를 하고 싶어. 근데 몸이 힘들고 아이도 둘이나 있고 머리는 안 돌아가서 괴로워. 그젠 남편이랑 싸웠어. 너도 알다시피 형부가 완전 순둥이인데 자기도 내가 외부활동이 많으니까 불편하고 싫은 가보더라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도 힘겹고 공부도 그렇고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만 그래도 피하는 건 비겁하겠다, 여길 극복하지 못하면 또 걸리겠다, 그런 생각해.

네 고민들 네가 회의하는 것들, 충분히 소중해. 현대정치지형에서도 물음으로 채택한 것들이고. 그걸 잘 품고 농익혀서 살다보면 어떤 우발적인 기회로 사건은 다가올 테고 네가 무언가 하고 있게 될 거야. 떠나온 거 후회되는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유학생활에 그런 위기와 갈등이 없을 순 없겠지. 결혼생활도 마찬가지고. 나도 남편과 싸우고 펑펑 울었어. 삶은 늘 그래. 외부가 없더라. 대단한 무엇 없이 소소한 일상으로 굴러가고. 그게 삶의 놀라움이겠지. 너무 큰 물음 세워놓고 내가 작다며 자학하지 말고, 싸우는 노동자들한테 쌀도 보내고 서로 하소연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우리 그렇게 살자. 힘내렴. 술 먹고 인류문제로 꼬장 부리는 후배도 있고,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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