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신선한 커피

- 김민수(청년유니온)

다정한 연인에게는 안정된 담소의 공간, 친구들간에는 자지러지는 가십의 즐거움이 녹아드는 공간, 솔로에게는 묵묵한 작업 겸 공상의 공간, 노신사에게는 다방 커피가 줄 수 없는 노년의 낭만을 선사하는 공간,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에게는 부족하지만 존귀한 자유를 선사하는 공간 -커피숍

이용의 주체가 누가 되었든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사실. 커피숍은 제법 멋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물론 ‘고객님’을 향한 서비스의 질이 높은 공간이라는 사실이, ‘종사하는 파트타이머의 노동의 질 또한 높다.’라는 명제의 충분조건으로 만족되지는 않는다.

나는 종로에 위치한 어느 커피숍에서 야간근무를 했다. 야간근무라는 것이 어설프게 밤 12시 정도까지 일하고 집에 가는 그런 수준을 상상하신다면.. 에이~ 아마추어도 아니고.. 나는 밤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 까지 근무하였다. 편의점도 아닌 주제에 24시간 내내 커피숍이 돌아간다. 음주가무가 끊이지 않는 종로 한 복판에서 비틀거리며 해장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점, 마감시간에 쫓겨 폭풍같이 매장 정리하는 대신 느긋~하게 청소하고 다음 날 영업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24시간 매장 운영방침은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24시간 영업방침이 실질적인 고용 증대(야간근무 파트타이머)로 이어졌으니(…) 청년실업 해결에 기여한 24시간 영업 커피숍에 청년유니온의 이름으로 감사패라도 드려야겠다.

새벽 2시가 되면, 커피숍의 고상한 분위기에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빨간 고무장갑을 낀 알바생이 쓰레기 봉투를 질질 끌고 내려온다. [규모가 있는 매장이다 보니, 하루치 쓰레기의 양은 종량제 봉투 100L를 거뜬히 넘긴다.] 쓰레기 봉투가 준비되면 우유박스에 주저앉은 채, 굉장히 쓸 데 없어 보이는 작업에 몰두한다. 일반쓰레기 봉투에 섞여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골라내는 작업이다. 뭐, 덤으로 재활용 쓰레기도 건져 올린다. 흡연실의 담배꽁초, 가래침, 옆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먹다 만 햄버거 잔해, 가끔 심할 날에는 구역질의 흔적까지.. 매립되기 전의 난지도를 연상시키는 이 폐허 속에서 종이컵을 골라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냥 여담이지만, 그렇게 제휴를 통해 얻는 수입은 점장의 부수입이 되던지, 프렌차이즈사의 자체 수입이 될 텐데.. ‘고객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밥 빌어 먹고사는 알바생 입장에서, 매장을 찾아주신 ‘고객’을 위한 서비스와 전혀 상관없는 ‘노가다 삽질성’ 작업에 왜 투입되어야 하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지곤 한다. 제기랄, 돈이라도 좀 더 얹어주던가..

회식의 거리, 종로에서 운영하는 24시간 매장이다보니, 취객과 함께하는 에피소드가 감히 편의점에 비견할 만하다. 메뉴판도 못 읽고 헤롱거리는 취객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일상다반사요, 동이 터오는 새벽녘까지 소파를 모텔 삼아 숙면을 취하는 위인은 1주일 로테이션으로 등장한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비틀거리며 2층 화장실로 올라가는 손님은 거의 100%이다. 뭐가 100%냐고? 자기가 먹은 회식안주를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을 향하고 있지만.. 올라가는 과정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거,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계단에 쏟아 낼 확률! -이 분들은 대개 자신의 의지로 몸을 제어하지 못한 채 계단에 ‘찔끔찔끔’ 쏟아내며 올라간다. (애처롭다.) 물론, 휴지를 뿌려가며 이 분의 발자취를 쫓는 일 역시, 나의 몫이다.

여기까지 텍스트를 읽어내리신 당신의 비위에 찬사를!

아직까지도 커피숍에 ‘고상함’이라는 단어를 수식하고 계시다면, 그 일관성에 다시 한번 찬사를!

아, 물론 이 무식한 근무 시간 대에, 무식하게 혼자 일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수 년 가량 연배가 앞선 매니저와 함께 일했다. 부모님이 별거 중이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2명의 동생의 책임지며 살아 온, 무튼 중량감 묵직한 삶을 꾸려왔다. 대기업 사무직, 편의점 본사 직원, 매장 관리직 등의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다가, 근 몇 년 사이에 여러 커피숍을 돌아다니며 매장관리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누나였다. 이 매니저는 나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종로3가 매장 근무를 그만 두었다. 청계천에 위치한 다른 커피숍에 점장으로 스카웃 되었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간만에 이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점장으로 스카웃 된 사실은 문자 그대로 표현하면, 좋은 소식이므로, 나는 밝은 목소리로 근황을 물었다. 그러나, 돌아 온 대답은 -내가 기대한 류의,해피한 전개는 아니였다.


“민수야, 나 점장 일 그만 뒀어. 다리가 너무 아파서 검사 받아보니 하지 정맥이래. 다음 달 중에 수술 받으려고.”

통화 직후, 슬라이드를 거칠게 접으며 단발마로 욕을 내지른 까닭은, 단지 당시에 얼근히 올라와 있던 술기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삼신할머니 랜덤 삑사리로 태어나, 동생들 뒷바라지 하기 위해 커피숍 전전긍긍하며, 변변한 의자 하나 마련되지 않는 매장 구석에서 밤새도록 낑낑 거리며 일한 것이 몇 안되는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잘못을 ‘하지정맥류’라는 질병과, ‘산재처리 불가’라는 방침으로 엄히 다스린 이 지랄맞은 세상에 선사할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찬사는 다음과 같다.


“씨발.”

응답 5개

  1. 전미령말하길

    저는 커피보단 카페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카페라는 공간은 제 삶에 대놓고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왠지 디테일한 부분을 풍요롭게 해준다랄까요. ㅎㅎ
    저도 나름대로 어린 나이때부터 서비스쪽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인지 어느 식당에 가도 제 또래 점원들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대기업, 프렌차이즈 직원들이 그렇죠.
    시급이 적어도 꾸준히 일하면 올려준다 그러지만 막상 시급이 오르면 일하는 시간이 줄기도 하고, 기껏 몇 백원 올랐는데 막중한 일들을 시키기도 하고..
    아무리 파트타임이라지만 일하기 일주일 전에 스케쥴이 나오니(심한 경우는 하루 전에) 일주일에 4~5일 출근을 해도 언제 일하게 될지 몰라서 자기생활 계획도 마음대로 못짜고(내가 무슨 5분 대기조냐!!!)…
    프렌차이즈 특성상 매니저니 바이저니 하는 분들도 누군가의 부하직원이기에 막상 좋은 상사를 만났다 하더라도 위로만 더 받는거지 부당한 대우가 줄지는 않습니다.
    아, 아직 더 할말이 많지만 댓글이니 줄여야 겠습니다.

    너무 공감하는 글에 댓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여하튼 저도 “씨발” 하나 추가하고 싶습니다.

  2. rom말하길

    그 누나의 전화를 받고 내지른 한마디의 욕이
    카테고리 그대로 잔혹한 노동현실의 대한 탄식의
    의미겠지만 그 누나에겐 걱정과 따뜻한 마음으로
    전달됐을 것 같네요 – 안산중앙역에서..

  3. Lifetime말하길

    전 왜 이런 삶으로 초대받은 걸까요.

  4. 예원말하길

    큰 울림이 남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ㅠㅠ

  5.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CI Song and 허준영(J.Y. Hoh), 박제민. 박제민 said: 수유너머 51호가 새로 실렸네요. <편집자의 말>을 읽다가 꼭 읽어보라는 편집자의 권유로 읽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마지막 멘트도 눈여겨보시길.. "신선한 커피" http://bit.ly/gW9mx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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