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선곡표

첫 인상

- 신현주(수유너머N)

소개팅에 나갔다.
상대방을 만난 그 순간, 그 짧은 순간, 우리는 느낀다.
이 사람과 오늘 밥만 먹을지, 밥을 먹고 차를 마실지, 아니면 술까지 먹게 될지..
그리고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만나게 될지 아닐지를..
아 이 얼마나 잔인한가.

소개팅 전에 ‘착하대. 똑똑하대. 젠틀하대. 여성스럽대.’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소용하나 없이 그저 한 순간 인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 버리고는 씁쓸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만남.

음악의 첫 인상은 앞 5~10초가량의 전주부분 그리고 앨범의 경우에는 첫 번째 트랙의 곡이다. 이 첫 인상이 강렬하기도 모호하기도 한데 곡의 전체적인 흐름만큼이나 매력적인 첫 인상을 가진 곡을 소개한다.

Exit, 20th Century-Enter The 21st… (Intro) – god (Chapter 2, 1999)

god는 1997년에 데뷔한 이들은 아이돌 1세대라고 불린다. 최초의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평가 받는 TV 육아 프로그램 ‘육아일기’와 힘들었던 어린 시절 가족애를 그린 1집 타이틀곡 ‘어머님께’ 통해 10대에서 30대까지 폭 넓은 지지를 얻은 국민그룹이다. 그들의 2집 앨범 첫 트랙 곡인 이 곡은 당시 20세기에서 21세기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막연한 공포감과 비장함을 가져다가 재미있게 앨범 인트로로 사용하였다. Carl Orff의 Carmina burana를 인용해 분위기를 잔뜩 잡는데 연기력이 썩 좋지 않은 그들의 나레이션은 심각한 곡의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한다.

Gadd A Tee? – Trio Toykeat (Kudos, 2000)

핀란드 출신의 피아노 트리오인 트리오 토이킷은 2000년에 발표한 이 앨범 ‘Kudos’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재즈 뮤지션부터 스팅, 모차르트 등에게 헌정하는 곡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연주하여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두툼한 화성 한 조각만으로 곡 전체의 멜로디와 리듬감을 선보이며 시작되는 이 곡은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러머중 한 명인 스티브 갯(Steve Gadd)과 피아니스트인 리차드 티(Richard Tee)에게 헌정하는 곡이다.

귀향 – 두번째 달 (Monologue Project – Alice In Neverland, 2007)

현악기와 피아노 저음 연타로 잔뜩 무게를 잡고, 고음에서 예쁜 화성을 연주하고 조를 옮겨서 다시 한 번 더 연주하고 다시 한 번 더 연주하는 이 곡의 전주는 곡의 전체를 들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본 곡에서는 하모니카와 타악기들을 시작으로 점점 스케일이 커져 가는데 팻 메스니의 향취가 느껴지는 기타 소리와 과하지 않고 정제된 오케스트레이션은 전주의 화성과 멜로디를 두껍게 재현한다.

서쪽 하늘에 – 두번째 달 (두번째 달, 2005)

두 번째 달은 에스닉 퓨전(민족적 색채가 짙은 전통 음악)이라는 장르를 내세우며 개성 강하면서도 대중과 호흡하는 그룹이다. 두 번째 달은 국내에 생소한 음악을 한 번 해보자고 모인 사람들로 아일랜드 전통음악이라 할 수 있는 켈틱풍의 노래로 인기를 얻었다. 바로 그 곡이 ‘서쪽 하늘에’이다. 이 노래는 2004년 MBC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극중 인물들의 운명이 엇갈리는 장면에서 주로 쓰였는데 ‘아일랜드’는 요즘 대세인 ‘현빈’이 MBC ‘논스톱 4’와 영화 ‘돌려차기’ 등으로 주목 받던 신인이었을 때 드라마의 강국 역을 통해 섬세하면서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그를 스타 반열에 올라서게 만들었던 드라마다.

첫 인상이 다가 아니라는 고루한 말보다는 첫 인상도 네가 가진 무기니 갈고 닦으라는 말씀을 받들어 찢고, 세우고, 굶는 요즘이다. 음악의 첫 인상은 그저 소개팅 남 또는 여와의 약속 잡는 정도에 불과하니 한 번 끝까지 들어보자. 그렇게 약속을 잡아 만나서도 아니면 뭐 그냥 오늘도 씁쓸하게 집에 돌아가자. 다행히도 음악은 내가 직접 골라들을 수 있다. 가끔은 누군가의 선곡표도 흘깃할 수도 있고…

응답 5개

  1. 연초록말하길

    나만의 선곡표라는 말에 끌려서 들어왔습니다.

    역시 저도 kudos의 곡은 지원이 되지 않아서 궁금해서

    메모해놓았고요, 낯선 곡에 끌려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오게 될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2. 퐁티말하길

    아일랜드 참 좋아했는데 말이죠. 음악 들으니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우리 국이 ㅠㅠㅠㅠㅠㅠㅠㅠ

  3. 말하길

    나만의 선곡표 첫인상이 참 좋네요. 클릭해서 음악 들으며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비평글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근데, kudos는 해당 국가에서 지원이 안 된다는 멘트가 뜨네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암튼, 앞으로 기대 많이 할게요.

    • 현주말하길

      그래요? 저는 잘 되는데.. 유투브 설정에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설정해 보시면 볼 수 있으실것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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