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겨울 바다, 슬픈 고향길.

- 김융희

안산 야트막한 산자락에 대나무 숲이 늘푸르다.
동구길에는 탱자나무가 둘러서 있다.
겨울이면 대나무 숲에 눈꽃이 아름답게 피고,
앙상한 탱자나무에는 참새들이 모여들어
요란한 새소리가 종일 끊이질 않는다.
뒷등엔 노송 몇 그루가 든든하게 둘러 서있고,
다닥 붙은 소박한 집들이 옹기 종기 모여 아름다운 마을이다.
등 너머엔 큰 들이 있고, 그 너머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햇빛에 맑은 수면이 은어 비늘처럼 반짝이는,
어릴 적 내 고향의 모습이다.

아늑하고 따뜻했던 고향이 그립다.
유난히 계속된 혹한이 지겹다.
그동안 업무로 어울리지 못했던
죽마의 친구와 모처럼의 고향길 동행이다.
용산역을 나서면서 세 시간대의 광주,
그리고 다시 한 시간대의 고향행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60년대의 고향길은 거의 이틀이 걸렸다.
그동안 50여 년만에 거의 열 배의 단축이다.
백여 년 전 우리나라 도로 사정을 서양인 ‘이사벨라 비숍’은 이렇게 썼다.
도로는 “불과 3마일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열악하고,
“사람이나 동물이 여러번 다녀 그저 사용이 가능해진 오솔길일 뿐“이다.
지금의 한국 도로는 세계 제일이란다. 그러나 이처럼 빠른,
그래서 나의 지척의 고향길 나들이가 어쩐지 허전하고 서운하다.
금방 와버린 고향 방문은 마음의 어떤 감회도 없어 덤덤하다.

내가 살았던 집이 있는 고향 마을에 들어섰다.
뜯긴 집들로 듬성인 채, 남아 있는 집들도 거의가 빈 집이다.
긴 고샅을 지나는데도 인기척이 없다.
집을 지키는 개들만이 가끔씩 인적을 대신한다.

우리 집도 이웃집에서 창고로 쓰는지, 텅빈 채 잡물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뒤뜰 유자나무엔 누렇게 익은
유자가 그데로 달려 있다. 반가워 하나쯤 따고도 싶었으나,
어린 시절의 요람인 내 생가 꼴이 너무도 황량하다.
나는 참아 바라볼 수가 없어 사립에서 돌아서 버렸다.
동구를 들어선 외지 사람이 궁금했을까?
꾸부정 할매가 고샅 입구에 나와 서있다.
어렴풋 떠오른 모습이 알 듯 싶어 아른 채를 했더니,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엉뚱한 대꾸로 나를 기억 못한다.

절친한 친구의 집을 들렀다.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유일한 죽마고우이다.
항상 바쁘게 살고있는 그가, 나의 고향 온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미리 마련한 음식을 차리는 기미다.
반가운 친구의 배려에도 어서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
함께 바닷가를 들리자며 간곡히 설득했다.
잠을 설치며 기대했던 고향길을 이렇게 돌아서 버린 것이다.

허전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서니, 택배가 와 있었다.
이번 만났던 고향 친구가 보낸 것이다.
그는 고집스럽게 옛 것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참 좋은 나의 벗이다. 금년엔 혹한으로 해산물이
전혀 자라지를 않아서 피해가 크다고 했다.
그렇게 까다롭게 생산된 ‘무산김’을 또 보내준 것이다.

그의 정성을 생각하면서, 가능한 여러 분들과 함께
그의 뜻을 함께 나누고 싶어 작게 나누다보니 너무 쪼금이
민망스럽다. 변명겸 친구를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몇자를 적어 함께 포장을 했다. 아랫 글은 그 변명의 글이다.

〔정남진이 지나는 남쪽 바닷가 외딴 갯마을,
싱싱한 농어 숭어 망둥어, 넓게 펼쳐진 갯벌엔 물 반 고기 반에,
석화, 고막, 바지락등, 조개도 지천이었는데…
흔적없는 갯등엔 그 때를 아는가, 오늘도 말없이 들물 날물만…

횃불에 홀린 떡게들처럼, 인구 모두가 외지로 떠나버린 고향에서
강고집 친구는 아직도 집자리를 지키며, 옛것을 고집하며,
결코 아닌 건 아니라며, 외로움도 남들도… 모두를 외면한 채,
한사코 아니라며 손사래질만 계속, 말 없이 살고 있는 그가.
염산을 뿌리지 않음 못할 것 같은 남들의 김 생산을 보면서,
그건 아니라며 전통을 지키며 고집을 부리며, 손수 생산하는 김 농사.
그 진맛을 보라며 보내온 김. 그 무산 김맛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이것이 그 “장흥 청정 무산김”입니다.
지금 장흥의 청정 무산김은, 염산을 뿌리지 않는 ‘무염산 김 생산’을
결의함으로, 전국에서 좋은 호응과 지지를 받고 있다 합니다.

여기 그 ‘무산 김’ 맛을 함께 감식하고 싶습니다.
오랜 우리의 전통, 그 옛 맛 그데로의 김맛! 내 친구 강고집을
너무 잘 알기에, 그러기에 지나친 나의 편향의 맛일까?
뒤안에 열린 붉은 감도 지금은 농약을 해야만,
청정 바다인 남해안의 외딴 갯마을에서도 지금, 해초도
염산을 뿌려야 생산이 되는, 이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입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친구 강고집과 같은 이들이 있기에…..

(시중에는 편리하게 가공된 가미된 맛김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전통 고유의 김맛은, 역시
소금 참기름 살짝 발라서 가볍게 구운, 참깨 고춧가루 뿌린
전통 간장에 찍어, 싸먹는 맛. 그것이 참 김맛이지요.)
맛보기로 드시라 여기 약간, 너무 쪼금이라서 부끄럽습니다.

저의 호들갑이 조금 심했지요.
어렵고 불리한 환경에도 굳굳한 친구의 귀한 선물에 감동,
그만 제가…
좋은 쪽으로 많은 이해 바람니다. 〕 _()_

응답 6개

  1. 신수현말하길

    선배님, 오랬만에 고향을 찾으셨나 봅니다.
    야트막한 안산 자락 밭길을 따라서 그리고 이신(내저) 가는
    길 가에 탱자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 시상처럼
    탱자나무 끝에 참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노래하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 하나도 온데 간데없이 변해 버린
    가난의 찌든 내 고향이 그나마 그리운 것은 왜 일까요?
    늙은 어머님 품속같은 고향을 다시한번 추억해 봅니다.
    선배님의 아련한 추억의 길을 더듬어 보다 갑니다.

  2. 키티손말하길

    의준이랑 처가 어른들 모시고 우르르 대식구가 우백당에 들이닥쳤습니다.
    이래저래 폐가 많았지만, 저희로서는 너무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담에 염치없이 또 들이닥치더라도 예쁘게 봐 주세요..

  3. 여강말하길

    덤님,들려 주셔서 고맙고, 반가워요.
    보낼 수 있음 무산 김을 쪼금이ㅣ만 보냈을건데… 연락 주세요.

    나라라님, 병영 제가 좋아하는 곳인데, 그 곳 3인 이상 정식 집, 지금도 여전이겠죠. 그 큰 상 한 번 받아보고 싶은데, 그래요. 요즘은 더 가까운 길이 생겨서 안 들리게 되네요. 저는 대덕이예요.
    이번에도 구정길이 정리 되는데로 다녀 올까해요. 장 토요시장을 보신다니 지금 병영에 계신가요? 계시면, 모처럼 병영도 들려보고 싶은데……

    • 말하길

      아이구, 꼭, 달라고 한 것 같아서, 민망하네요. 하지만, 뻔뻔스럽게, “예, 한 통만 주세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배고픈 영혼들이 많아서…쩝. 주소는.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2가 1-206 2층 수유너머R 입니다.

  4. 나라라말하길

    장흥이라?
    저보다 한참을 더 가야하는 곳…
    아마 관산이나 대덕 이나 용산 쯤인가요?
    전 전에 장흥직행이 무시로 다녔으나 지금은 장흥직통이 화순쪽으로 빠지는 터라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병영땅!
    반가워서 몇 자 올렸어요.
    장흥장에 가서 이것저것 설장 봤어요.

  5. 말하길

    김 양식할 때 보통 염산을 뿌리나 보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선가? 옛날엔 김 참 맛있었는데, 명절 때나 겨우 먹을 수 있었지요. 신새벽 큰집에 차례 지내고 제사밥상에 있던 김을 썰어서 한 접시씩 나왔는데, 그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이란…꾸울꺽. 고향, 안 가본 지 20년이 넘었네요. 무섭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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