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이커우챠오미엔] 집에 가야만 한다

- 홍진

1월 19일 본격적인 춘윈 예매가 시작되었다. 춘윈春运은 춘절(:음력설)기간 운행하는 대중교통을 말한다. 왜 이름이 따로 붙었을까? 표를 사기 어려우니까.

2011년 공식적인 춘절 휴가는 7일이다. 한국의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아싸! 하고 휘파람을 불겠지만 중국의 인민들에겐 충분하지 않다. 왔다 갔다 이틀씩만 빼더라도 고작 3일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신장新疆처럼 먼 곳이나 교통편이 복잡한 깡촌에서 온 농민공(중국의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이주노동자)들은 더 애가 탄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된다. 바이두(baidu.com 중국 인민들의 구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성공적으로 표사는 방법’이라는 식의 글들을 보면, 하루 전 줄 서는 것은 기본, 플랫폼 입장권이나 바로 다음 역으로 가는 표를 사서 어떻게든 승차해보거나, 40시간이 훌쩍 넘는 장거리를 입석표로 사기도 하고 급기야는 위험하게 철로를 넘는 법을 제시한다. (이건 표사는 방법도 아니잖아!) 한정된 표에 비해, 가야 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많다는 문제는 결국, 그대로다.

암표는 황소표黄牛票 라고 부른다. 공공의 적. 꿈쩍도 않는 줄 안에서 몇 시간을 버티며 기다린 후에는 결국 아까, “야, 임마”라고 호통을 쳤던 바로 그 암표상에게 “형씨, 후난湖南 가는 그 표 정말이오?”라고 갈라진 목소리로 물어 볼 수밖에 없었던 농민공의 사연을 읽게 된다. 가짜표도 난무한다. 없는 돈에 겨우 고향에 가려던 사람들의 무너지는 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가짜 표를 파는 사람은 이미 남의 고통에 무뎌진 것일까. 그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깎으며 살아 왔을 거친 인생 역시, 생각해보면 속상하다. 비행기 타고 다닐 부자들의 속만 멀쩡한 것도 속상하다.

왜 이렇게까지 집에 가야만 하는 것일까? 아까 아싸! 하고 휘파람을 불었던 한국의 회사원이라면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에 가기 보다는 명절 특가로 나온 해외여행 패키지 비행기 좌석에 앉아 방실방실 웃고 있을 가능성이 높잖아? 나이 지긋한 동네 언니에게 넌지시 물어보자.

“고향 가면 뭐하고 놀아요?”

“우선 방파오放炮(:폭죽놀이)의 급이 여기와는 차원이 틀려.”

언니의 얼굴에 아련한 미소가 번질 때 나는 간담이 서늘해 진다. 작년 춘절의 대련. 밤새도록 집요하게 울려 퍼지는 무시무시한 폭죽 소리에 정신줄을 놓을 뻔했던 기억이 있는데, 한 급이 틀리다고?

폭죽은 1위안(약172원)부터 만위안(혹은 까마득히 비싼 폭죽)까지 모두 있다. 외로워도 가난해도 사이좋게 모두 폭죽을 산다. 왜? 폭죽을 터뜨리면 악귀가 물러나니까, 운이 좋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시끄러우니까. 신나니까. 돈은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아. 폭죽이야 말로 진정한 무쓸모, 비생산적 소비다.

하지만 기껏 폭죽이라니, 혹시 젊은 애들이 시시해 하지는 않겠냐고? 걱정 마시라. 마을 회관이나 무도회장에 모인 젊은이들은 폭죽도 아닌데 활활 타오르는 한줄기 불꽃이 된다고 한다. 돈 벌러 떠나온 도시에서 뭔가 외롭던 청춘들에게 어린 시절 함께 놀던 고향 친구들 만큼 든든한 게 있을까. 야, 너 윗동네 아삼 알어? 같이 한 잔 할까?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처지에 핑큿빛 소개가 여기저기서 봄을 앞당긴다. 흠, 한국에서 열리는 몽골 공동체의 성대한 연말 행사가 떠오르는 걸.

이런 말캉한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춘절의 훈훈함을 조금씩 알아간다. 마음을 열기 쉽지 않다니, 농민공들에게 타지에서의 고된 생활은 길게 꾸는 악몽은 아닐까. 그들에게 고향은 촌스럽게도 꼭 돌아가야 할 곳이다. 그리고 고향의 가난 때문에 다시 이주노동을 떠난다.

춘절에 대한 기존의 내 상상은 조금 달랐다. 춘절을 비롯한 중국의 긴 공휴일들은 자본주의 생산방식에 균열을 내는 공인된 파업이다. 노동절 장기파업(역시 7일)은 민족명절 보존을 핑계로 분쇄되었지만 아직 국경절(10일)과 춘절이 남아있지 않은가! 쓰촨四川성의 한 공무원 동지는 고향을 생각하는 농민공들의 고단한 마음, 한번 오가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심적, 물적 에너지를 헤아려 그냥 일 년치 공휴일을 그러모아 아싸리 22일을 쉬자는 주장도 했다. 그래 까짓거 혁명이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공장이 장기간 돌아가지 않으면 사장님은 마음이 아프다. 돈을 두 배로 준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춘절에 남아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하나 둘 늘어간다. 정해진 시간까지 일터에 돌아오지 못하면 야진押金(보증금)으로 낸 한달치 월급이 까이는 형편이다. 결국 춘절 파업도 언젠가는 사그러들지 모른다.

춘절의 귀경대란은 무의식적으로 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이다. 라고 맘대로 이야기하기에는 그들의 진심이 너무 쓰다. 자본주의에 순응하면서 고향은 덜 중요해 지고, 가슴 아플 일도 없어지고, 우리는 세련된 여행자가 될 것이다.

올해도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언니오빠들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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