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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조겸의 서문 – 낮고 가까운 데서 높고 먼 곳까지

- 기픈옹달(수유너머 R)

«근사록»의 책임 편집자, 주희의 서문을 보았으니 이번엔 여조겸의 서문과 목차를 살펴보도록 하자. 주희는 서문에서 총 622개 글 조각을 14개의 주제로 나누어 엮었다고 밝혔다. 이때 각 주제 묶음을 세는 단위로는 ‘권卷’을 썼다. 그러니까 «근사록»은 14권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이렇게 말하면 «근사록»이 어마어마한 분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그러나 걱정 말길. 지금은 책을 세는 단위로 ‘권’을 쓰지만 예전에는 글 묶음을 세는 단위였으니. 본래 ‘권’에는 ‘둘둘 말다’는 뜻이 있다. 고대 중국에서 책의 역할을 담당하던 죽간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애초에 주희는 각 권의 제목을 일일이 붙이지는 않았다. 대신 어떤 주제로 묶었는지만 대강 밝혔을 뿐이다. 그러나 후대의 학자들은 편의상 편명을 붙여놓았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1)도체道體, 2)위학爲學, 3)치지致知, 4)존양存養, 5)극기克己, 6)가도家道, 7)출처出處, 8)치체治體, 9)치법治法, 10)정사政事, 11)교학校學, 12)경계警戒, 13)변이단辨異端, 14)관성현觀聖賢.

사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대충 제목만 훑어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치지’, ‘존양’, ‘극기’와 같은 용어는 «대학»이나 «맹자»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와 수양에서 시작해서 통치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것까지 방대한 내용을 일괄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책의 이름을 «근사록»이라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너를 소개하면서 밝히기도 했지만 이 책의 제목 «근사록»의 ‘근사近思’는 «논어» 자하子夏의 말에서 따왔다. 이 ‘근사’를 풀이하면 ‘가까운 문제들을 생각함’정도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영역한 윙칫찬(Wing-Thit Chan)은 책 제목을 ‘Reflections on Things at Hand’로 옮기기도 했다.

주희는 서문에서 이 책이 스승이나 동료 없이 홀로 공부하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각 편명을 보면 다루는 주제도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매우 실용적인 책이라는 말. 그러나 요즘 서점가를 채우고 있는 실용서, 자기계발서와 같이 쉬운 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근사록»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라는 점을 절실히 실감하게 된다. 아주 까다롭고 난해한 ‘도道’의 문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를 아십니까? 응..?

고전을 꼼꼼히 읽다 보면 옛 학자들도 요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날 우리가 어렵게 느끼는 것을 옛 학자들 역시 똑같이 어렵다고 느꼈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근사록»의 첫 부분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근사록»이 세상에 나오자 첫 시작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원성이 빗발쳤나 보다. 여조겸이 첫 시작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를 글로 따로 밝히고 있을 정도이니. 책에 대한 불만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가깝고 실제적인 문제를 말한다고 했는데,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했는데 첫 시작이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하다고. 이에 여조겸은 어떻게 말했을까.

«근사록»이 완성되자 어떤 사람은 첫 권에서 음양陰陽과 변화變化, 성명性命에 대해 말한 것이 일반적으로 처음 배우는 사람의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이전에 이런 순서로 편집한 의도를 들은 적이 있다. 후학들이 의리義理의 근원에 대해 비록 성급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대강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도에 관한 내용을 책의 처음에 놓은 것은 그 개념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학문의 목표로 삼을 수 있도록 했을 뿐이다. 나머지 부분에는 공부하는 방법과 날마다 몸소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것들을 단계별로 나누어 실었다.

이 순서에 따라 배우면 낮은 곳에서 시작해서 높은 곳에 오르고,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먼 곳에 이르는 것과 같다. 그러면 이 책을 편집한 뜻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낮고 가까운 곳을 무시하고 높고 먼 곳으로 달려가, 단계를 뛰어넘고 절차를 무시한다면 공허한 데로 빠져 의거할 곳이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찌 가까운 것을 생각한다고(近思) 할 수 있겠는가. 독자는 마땅히 이것을 유념해야 한다.

순희3년(1176) 4월 4일 동래 여조겸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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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旣成 或疑首卷陰陽變化性命之說 大抵非始學者之事
祖謙竊嘗聞次緝之意 後出晩進 於義理之本原 雖未容驟語 苟茫然不識其梗槩 則亦何所底止 列之篇端 特使之知其名義 有所嚮望而已 至於餘卷所載 講學之方 日用躬行之實 具有科級
循是而進 自卑升高 自近及遠 庶幾不失纂集之指 若乃厭卑近而騖高遠 躐等陵節 流於空虛 迄無所依據 則豈所謂近思者耶 覽者宜詳之
淳熙三年四月四日 東萊呂祖謙謹書

첫 시작인 ‘도체道體’는 그 제목부터 우리말로 옮기기가 무척 까다롭다. 먼저 도道가 무엇이냐고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세상의 이치, 법칙, 규범 등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그저 우리가 걷는 길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체體도 마찬가지. 보통 몸으로 풀이되는 이 글자가 여기서는 핵심, 본체, 실질 등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였다. 이와 반대되는 말로는 용用이 있다. ‘체’와 짝을 이루어 풀이, 작용, 쓰임 등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도체’란 도의 본체나 법칙의 핵심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윙칫찬은 이것을 ‘On The Substance of The Way’라고 옮겼다. ‘길의 본질에 대하여’정도가 되려나?

«근사록»이라고 해서 뭔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첫 시작부터 관념적인 이야기를 하다니! 여조겸은 이렇게 난해한 내용을 첫 머리에 배치한 것이 그 개념을 대강이라도 이해하고 학문의 목표로 삼으라는 뜻에서라고 설명한다. 일단 목표는 원대하게. 그러니까 학문을 하는 사람이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바로 도道를 체득하는 일이다. 일찍이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고 하지 않았던가.

예로부터 이 도를 체득한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하였다. 뒤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근사록을 쓰고 엮은 송대 학자들은 학문의 목표를 바로 이 성인이 되는 데 두었다. 흔히 유가 지식인들의 목표가 입신양명立身揚名, 그러니까 출세해서 이름을 날리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어디나 있는 세속적인 지식인의 표상일 뿐이다. 송대 사상사를 주름잡은 위대한 학자들은 쩨쩨하게 부귀영화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초월한 성인이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오늘날 «근사록»을 읽는 독자도 그 목표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인 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원대한 목표를 세웠으면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목표까지 도달하는 과정이다. 주희도 그랬지만 여조겸도 하루아침에 단박 성인이 되는 일은 없다고 보았다. 지난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근사록»의 나머지 부분은 이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배움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조겸은 «중용»의 말을 인용하여 그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원문은 이렇다.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군자의 도를 비유하자면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고, 높은 데에 오를 때에에는 낮은 데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차례와 등급을 뛰어넘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결국엔 공허한 학문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실의 조건을 무시한 이론들의 다툼으로만 그칠 뿐이라는 말이다. 낮고 가까운(卑近) 곳에서 높고 먼(高遠) 곳으로! 이런 정신은 성리학을 공리공담의 학문에 그치지 않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삶의 문제를 고민하고 제도를 만들며 그 비전을 담을 수 있는 조직과 사람을 길러 내는 고민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자, 이것이 바로 «근사록»의 핵심인 ‘근사’의 정신이란다. ‘근사’의 ‘근’이란 바로 ‘원遠’, 높고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할 ‘지금-여기’를 가리킨다. 멋진 비전에서 오늘의 현실을 바꿀 힘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좋은 꿈이, 멋진 꿈이 좋은 삶과 멋진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듯이. 비전을 이루는 힘이란 지금-여기에서 시작하는 고달프고도 담담한 일상의 문제들 속에 있는 것이다.

응답 1개

  1. 청안말하길

    비전을 이루는 힘이란 지금-여기에서 시작하는 고달프고도 담담한 일상의 문제들 속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근사록 1권 도체편은 어렵기도 했지만, 공부를 한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도 했습니다. 마음에 우주를 품고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참 멋진 일이구나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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