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무한독전

자기에 대한 사랑

- 박카스(수유너머R)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저자 김원영은 야한 장애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뼈가 쉽게 부서지는 골형성부전증으로 태어나서 15년 동안을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을 했던 저자는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정체성과 장애인문제를 고민하며 쓴 글들을 인터넷신문 비마이너 등을 통해 게재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슈퍼장애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지체 1급 장애인으로서 서울대를 졸업하고 보란 듯이 성공해서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과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는 대학에 들어가 그러한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님을 실감했다고 한다.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동안 타야 할 대중교통이 필요하고, 기적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이 필요하며, 기적을 만들어내는 동안 먹어야 할 컵라면도 필요하다. 나는 결국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는 꿈과 희망보다 당장 앞에 놓인 계단과 턱을 제거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으로 뛰쳐나온 그 시점의 중증 장애인들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장애인 인권운동을 시작한 그는 이제 슈퍼장애인이 아닌 야한 장애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장애인의 몸에서는 성적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의 몸에 성적매력을 느끼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원영은 ‘나는 야한 장애인이 되겠다’고 말한다.

“나는 중증의 장애나 질병을 가진 몸, 유약하고 매력 없다고 치부되는 몸을 가진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러한 자유를 지향한다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를 위해 우리의 욕망을 과감히 표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어떤 것도 비극적이지 않다는 태도, 억압된 욕망을 거룩하게 내세로 넘기겠다는 태도는 자유가 아니다. 무엇을 욕망하는 것이 자연적 질서에 속하는 이들은 그 욕망을 과감히 억누르고 가치 있는 행위를 할 때 자유로워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욕망하는 것 자체가 자연적 질서에 반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욕망을 과감히 표출하는 것이 곧 세상에서 자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 된다.”

우리는 모두 장애가 있다. 누구는 말을 하는 데 다른사람들보다 더듬을 수 있고, 또 누구는 몸에 부스럼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또 누구는 발가락이 조금 이상한 모양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는 특히나 사람들의 눈에 주목을 받는 장애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장애때문에 다른 이들의 찌푸른 얼굴을 마주하기도해야하며 같이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격리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김원영은 이러한 현실에 자신의 다리를 드러냈다. 나는 그의 행동에 기분 좋은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머릿 속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떠올라서였다. ‘자, 봐. 어떨지는 몰라도 나는 이렇게 섹시하게 내 다리를 계속 드러낼테니까.’ 장애를 장애가 아닌 것으로 만들려는 그의 시도에 나는 진심어린 지지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한 사랑을 하고 싶다

나는 그의 글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 이전에 사랑을 느꼈다. 남 보다 우월해야한다는 강박 속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이러한 우월함 강박의 해방구로써 사랑을 찾는다. 스트레스 가득한 직장에서부터 감정이 메마른 사회, 계속되는 막막함과 두려움 안에서 많은 이들이 삶의 잃어버린 의미를 사랑을 통해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아실현의 동맹으로 맞이하는 상대는 곧 자기 발견을 도와주는 조교나 개인 치료사로 강등된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실망과 스트레스의 최고 조건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상대를 쥐어짜는 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사랑은 나 이면서 다른 것(상대)이 함께 있는 것. 그렇게 함께 있으며 무언가를 만들어 낼 때 피어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평등한 관계에서의 에로스를 긍정한다.

“나는 기꺼이 자동차 문을 열어 비가 오지 않는 곳까지 함께 타고 가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에게 한없는 존경을 표할 것이다. 또는 자신도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면서 이왕이면 함께 비를 맞으며 걷자고 어깨를 감싸는 사람에게는 내 모든 것을 걸어 감사하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서민을 위한다.”, “장애인을 위한다”라면서 타인을 동정하고 일회적인 시혜를 베풀고 떠나버렸던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과 상처를 통해 타인의 상처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오랜 시간 지속적인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우월한 존재 말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 그리고 특별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 상대를 짓누르고 나를 세우는 아집 말고 함께 걸으며 무언가를 만들어가며 서로가 커가는 사랑을 나누고 싶다. 고통과 기다림을 유머와 함께 다룰 줄 아는 그런 관계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

당신의 동력은 무엇입니까?

“꽃동네 같은 곳에 가서 봉사활동 좀 하고 오세요. 그럼 내 삶에 대해 진짜 감사하게 된답니다.”

“만약 세상에 장애인 수용 시설 같은 것이 없었다면 열등감에 시달리는 우리 이십대들은 어디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충고는 커다란 결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열등감은 상대와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존재들에 의존해서, 그 열등감을 상쇄해보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태도는 자신을 그 자체로 충만하게 만들지 못하고, 타인의 존재에 의지에 열등감을 극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타인에 의해 열등감을 경험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타인의 존재를 통해 위안을 얻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위안을 얻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바로 비정상적인 인간을 ‘구경’하는 것이다.”

‘우월해지고 싶다.’ 이 말이 자꾸 내 귓가를 맴돌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무엇이 당신 손에 자꾸만 함께 있는 이에게 칼을 휘두르라고 시키는지. 그것은 자본주의 경쟁사회가 만들어낸 자기 연민, 자기 포기, 열등감에서 생겨난 언어들은 아닌지. 이 말들을 실천으로 옮겼을때 나에게서 생기는 웃음은 경쟁의 짓눌림속에 새어나오는 자족적 웃음은 아닐지. 다시금 나에게 물었을 때 내가 끝내 긍정하고 싶은 것은 함께 있음의 긍정과 그것에 던지는 시도들에서 피어나는 웃음이 아니었을까.
그때의 웃음소리는 거스름이 없는 웃음소리일 것이다. 나는 이 웃음소리들과 함께 하고 싶다.

응답 3개

  1. 좋은 책말하길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읽는 내내 어찌할바를 몰랐어요.

  2. 박카스말하길

    예, 남색으로 표시된 글은 김원영씨의 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책 꼭 읽어보셔요. 발췌한 부분들 말고도 좋은 내용이 많이 담겼습니다.

  3. 소우주말하길

    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을 콕콕 찌르는 문장들이 많네요.
    남색으로 표시된 글들은 김원영씨의 책에서 발췌된 것인지..?
    어쨌든,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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