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장애인야학은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을까?

- 박경석

2008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로는 장애인인구 중 45.2%가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학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2011년 현재는 어떻게 변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예전보다 중증장애인들이 학교 가는 상황이 좀 나아졌기 때문에 45.2%의 수치는 많이 변동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 수많은 장애인인구가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증장애인들이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사회와 단절되고 배제돼 발생한 차별의 문제를 아무리 목 놓아 외쳐도 세상은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나쳐 버렸다. 수조 원의 사교육비를 들여서 내 자식 먼저 좋은 교육 받게 해서 최고의 실력으로 최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 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는 세상이니, 중증장애인들에게 교육예산을 투자하는 것은 일종의 낭비인 것이다. 예산을 투자해보았자 뽑아낼 것이 없으니 대충 넘어가거나 불쌍하니 한 푼 던져준 것 이외에 무슨 가치로 장애인교육에 투자했겠는가.

그것을 보여준 수치가 바로 45.2%인 것이다. 세상이 이야기하는 최고의 실력과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 경쟁을 통해 추구하는 최고의 실력과 가치는 야만적인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가치이다. 그 경쟁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권리와 가치가 남지 않는다. 중증장애인들의 삶은 그냥 버려진 가치들이었다.

이제 중증장애인들은 배우려 한다. 그리고 많은 곳에서 가르치려 한다. 조금 관심이 생기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돈도 생기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도 교육프로그램을 하겠다 하고, 일반 문해 교육기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교육청에서도 평생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진행하려고 귀찮게 설문조사를 하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중증장애인의 교육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기세로 덤벼들지만, 여전히 말치레만 난무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추세 가운데 두렵고 허망한 것이 있다. 과연 장애인야학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교육받지 못한 중증장애인들은 교육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방향과 구체적인 내용이 존재하지 않고 단지 교육프로그램으로만 존재하고 초·중·고등학교 졸업자 숫자만 늘리는 것으로 끝난다면, 장애인야학이라는 존재가 기초부터 허물어져 버릴 것 같다.

장애인야간학교(夜間學校)로 시작했던 야학이 이제 장애인야학(野學)으로 존재하기 위한 투쟁이 진행 중이다. 야학은 들판에 존재하는 학교이다. 그 들판에서, 빼앗긴 자들의 소리가 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그래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행동이 되는 학교가 야학(野學)이어야 한다. 이미 중증장애인들은 기존 학교 제도의 가치에서 삶을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의 학교가 사람을 기계처럼 생산해내려는 1등 위주의 교육경쟁에 편입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우리를 버려서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의 가치를 버리려 한다. 이제 우리는 ‘다른’ 교육을 통해 ‘다른’ 세상을 꿈꾸는 투쟁을 위해 우리는 들판의 공부(野學)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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