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10. 안보 차원의 농정이 절실한 때이다.

- 김융희

– 에너지의 파동이면, 식량 대란은 재난이다.

지금 영동지역은 전례 없는 폭설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물론, 그 피해가 막심한 가운데
군관민이 함께 동원되어 한창 제설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데, 일기예보에선 앞으로
또 많은 눈이 더 내린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이처럼 근래 기상이변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전 지구적으로 매우 심각하여 다방면의
곳곳에 그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농업에 미친 영향은 농작물의 수확량 감소로 이어지면서,
벌써부터 식량대란의 조짐이 보인다는 우려의 소리가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한다.

기상 이변으로 세계적인 곡물수확의 감소로 인한, 국제 곡물가격의 폭등과 함께 수급
불균형에서 오는 앞으로의 식량문제가 매우 심각할 것 같다.
지금까지 석유 자원이 전혀 없는 우리는 에너지 파동으로 인한 많은 어려움을 계속 겪고
있는데, 이제는 식량의 대란까지 우려해야 할 것 같다.
식량 수급의 차질에 의한 피해와 고통은, 에너지 수급과는 또 다른 그 피해가 매우 심각하여,
우리의 생사와도 직결된 문제이다.
이런 중요한 식량사정이 올해 들어 벌써 세계 곡물가격 지수의 상승폭은 50%를 육박하며,
밀과 옥수수의 가격 시세는 일 년 사이에 80% 이상을 뛰었다는 반갑지 않는 통계 수치이다.

침수로 인한 침몰의 위기가 닦치는 데도 전혀 모르고 있는 선박에서, 선박의 구석에 숨어
살고 있는 쥐새끼들이 벌써 그 조짐을 알고 대피를 서두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행여 지금 내가 선박안의 쥐새끼와 같은 조짐의 심정이라면 모두가 비웃을 일이다.
농촌의 농삿꾼 곁에 붙어서 살고 있을 뿐, 어설픈 농부도 못되며 세상을 등지며 살고
있어 신문도 읽지 않으며 별다른 지식도 없는 내가, 감히 지금 있지도 않는 일을 미리 이러궁
저러궁 하면서 나설 수 있는 입장은 결코 아니란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자꾸만 지울 수 없는 불안의 우려가 마음을 맴돌고 있어 답답하며, 때로는 이런
내가 가소롭다는 생각도 한다.

지난 90년대에 몰아닥친 식량위기로 북한에서는 많은 아사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 때 있었던
일이라며 들었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주린 배를 체울 수 없어 묘방을 찾지만
어쩔 수 없는 처지의 극한 상황에서, 여남의 평 정도의 농토라도 있는 사람은 그 좁은 땅을
이용해서 아사지경의 고비를 넘겼다는 이야기였다.
잘 믿기지 않는 일이면서도 상당히 믿음성있는 이의 전언이었으며, 한계 상황에선 충분히 있음직한
일로 생각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처럼 이상 기후로 인한 기상 변화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항상 노출된 식량대란의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살이 중에는 설운 일이 많지만, 그 설운 일 중에도 배곺은
설움이 으뜸이란 말이 있다. 그런 설움이 설움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음 우리는 끝내 목숨을 지탱할 수 없는 것이 배고픔의 설움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절실한 식량에 수급의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조짐에도, 지금까지
잘 지내 왔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염려가 필요 없다면 할 말은 없다.

앞으로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도 식량위기로부터 안전지대는 없으며, 이런 여건에서는 언제나
식량의 무기화가 가능하다. 또한 다른 상품과 달리 국제 곡물시장에서의 식량은 기본적으로
가격 변동이 가장 심한 특징을 갖고 있다.
더욱이나 우리나라는 일본 맥시코와 함께 세계 3대 식량 수입국으로 더욱 불리한 입장이다.
식량 자급율은 30%도 못 미치며,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5%미만이요 주요 식량인 밀 0.3%,
옥수수 0.7%, 콩 9.8%에 불과하다. 이는 식량 정책이 무엇을 어덯게 해야 하는가를 원점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대책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기도 하다.

먹거리의 30%도 채우지 못한 우리의 식량 자급율에서, 유일하게 자급을 웃도는 것이 쌀이다.
그런데 우리의 남아도는 쌀의 량과는 관계없이 그 쌀마저도 WTO의 농업 협정에 의하여
의무 수입량을 계속 늘려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쌀생산 억제책으로 휴경지를 보상하며, 농경지 규제 완화 정책까지 실시한다.
국민의 식량주권과 농정 이념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완전히 무시된 채, 경제 살리기 명목으로
수출편향 정책을 강화하는 등, 개방 농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 현 우리의 농업정책이다.

이런 여건에서나마 안정적 수입이 보장된다면 자급의 문제는 별로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식량의 수급에 문제가 생겨 생사와 직결된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임에도, 어떤 묘안이나
대안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세계시장의 식량문제인 것이다.
구조적 모순은 식량 위기 상황하에서 지금 우리의 남아도는 쌀의 처리문제를 도외시하며
할당량을 계속 늘려가는 것처럼, 곡물 수출국은 자국의 수급을 위해서는 언제나 수출의 문을
걸어 놓을 수 있지만, 수입국은 자국 식량의 과잉상태하에서도 수입을 제한할 수 조차 없는 것이
또한 국제 식량 정책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식량의 무기화는 가공할 위력으로 식량공황을 유발할
가능성이 상존하며, 그 심각성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난 한 해는 특히 심한 기상이변으로 작물 수확이 참 애로가 컸다. 배추를 비롯한 채소에서
과일까지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식량의 수급은 국내 사정에 의존하지만,
식량의 자급율이 매우 취약한 우리에게는 오히려 수입의 여건에 더 민감하여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다. 국제 곡물가격이 뛰면 그 충격은 바로 장바구니 물가에 나타나는 데도 대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세계의 곡물시장을 좌우하는 카킬과 같은 거대 메이저들에
의지하는 것은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너무도 거창하면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를 전혀 문외한이 이러쿵 저러쿵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작년에 조그만 농사를 지으면서 식량을 위한 작물 재배가 자연과 기후 조건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경험했던 나로써, 요즘의 요동치는 기상이변을 보면서 느껴지는
생각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적어본 것이다. 폭설로 인한 불편을 재난이라며 짜증을 내기 보다는
왜 이지경의 전에 없었던 기상이변이 자주 오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그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눈이 많은 맹추위에는 병충해가 줄고 알곡이 여물어 풍년이 온다했다. 금년에는 순조로운
기상여건에 대풍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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