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무한독전

그녀와 사랑 : J에게

- 얌송(수유너머R)

『그녀의 여자』
서영은
문학사상사 (2000)

K는 얼마 전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다. 가녀린 소년의 몸, 중성적인 외모, 쇄골과 목선, 턱 그리고 입술, 눈매가 섹시했다. K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K는 곧 실망했다. 첫눈에 반해 혀끝이 간질거리고 침이 고이게 했던 그는 여자였기다. 왜 하필 그녀는 여자인걸까. 얼굴과 몸, 분위기 모두 완벽히 K의 취향이었기 때문에 그는 침울해 져서 계속 [그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K는 아직 입맛을 다시고 있다. S는 그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을 한다. 완벽한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 첫눈에 반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아무리 K가 게이라고는 하더라도, 과연 그런 상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있을까? 글쎄. 잠자리에 들기 전 약간 배가고파지면 저녁 때 먹다 남긴 밥 한 숟갈처럼 이따금 아쉬운 그녀가 생각나지는 않을까. 관점을 달리 해본다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다 K의 취향인 그녀는, ‘그녀’이기 때문이 좋을 수도 있다. K는 게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고 당당하고 자유롭게 연애를 할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몇 가지 기구들의 도움을 좀 받아 충분히 섹슈얼한 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할 텐데. 왜지? 연애의 대상이 갖춰야할 전제 조건이 있나?

이전까지 사랑이란 힘, 등을 떠미는 힘, 운동의 방향을, 속도를 바꾸는 힘이라 생각했다. 말하자면 게이인 K가 그녀를 만날 수 있도록 확 떠밀어 문턱을 넘어서게 만드는 것. 그런데 왜 하필 그런 것이라 생각 했을까. 아무래도 나는 연애를 글로 배웠나보다. 기억에 의존해 최초의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것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명절 때 할머니 댁 쪽방 한 구석에서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남몰래 훌쩍거리며 그 소설을 읽고 배운 것은 결혼은 하면 안 된다는 것, 실수로 결혼이라도 하면 적어도 아이는 낳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란체스카가 킨케이드와 함께 떠나지 못한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었겠느냐마는 당시 내게 그녀의 발목을 붙든 것은 장기에 들러붙은 악성 종양 같은 가족, 곰팡이가 피듯 금세 소문이 번지는 좁은 시골 동네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처럼 주저앉아서 가슴에 담은 채 편지나 쓰고 있지 않기 위해서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둬야 했다. 무언가 내 등을 떠밀어 준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날아갈 수 있게끔.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과연 어떤 순간이 아무 미련 없이 있던 곳을 박차고 떠나야 할 그 때인지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마냥 전율의 순간을 기다리기만 하다 망부석이 될 수도 있고, 착각해서 혼자 맨땅에 몸을 내던질 수도 있다. 그 순간이란 어떤 순간일까, 무슨 특별한 느낌이라도 있나, 그 순간에 떠밀린 이후의 삶은 어떨까, 혹시 다음번이라는 것도 있을까…….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이상하게 습관적으로 끌리는 자극적 요소들이 있다.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었다든지, 알고 보니 내 남자의 원수는 우리 아빠였네라는 식은 아니고, 기존의 안정적인 상태를 자신의 손으로 다 휘저어 버리고 기뻐하는 것들이다.

『그녀의 여자』에서는 명망도 있고 돈도 좀 있는, 아쉬울 게 하나 없어 보이는 중견 화가 현 여사가 아들 지훈의 여자 친구 소연을 소개 받고 병적으로 그녀에게 빠져든다. 현 여사가 소연을 얻기 위해선 사회적 지위와 체면, 얼마 전 남편이 마치 사고처럼 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사실, 지훈, 자존심 모두를 내던져야 한다. 소연 역시 마찬가지, 앞날이 창창한 20대인 그녀가 중년 여성을 만난다는 건 어쩌면 현 여사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소연은 현 여사와의 만남을 “실제로는 잘생긴 외모에 집안 좋고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장래 바람의 전부이면서, 입술에서는 추상적인 어휘로 위장된 그럴싸한 가치관을 표방하는 나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135)”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결혼을 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생각한다. 만일 현 여사가 남자이기만 했다면 둘의 조합에는 고민도 별다른 걸림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년 재력가와 예쁘고 똑똑한 20대 여성의 결합은 꽤나 흔하지 않은가.(중년 여성과 20대 남성이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이것을 특별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남자를 배제 한 채 섹슈얼한 요소를 끌어안은 그녀들 간의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이렇게 단순히 관습적 금기를 위반하는 설정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환상의 동력이 없다면, 찰나의 쾌감만 줄 뿐 돌이킬 수 없게 된 잔해와 후회만을 남길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쓸데없는 환상이나 충동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신을 억제해 행복과 안정을 얻으라는 것? 내게 소연과 현 여사는 동성애적 사랑을 나누는 두 여자라기 보단 오히려 한 존재를 반으로 쪼개 나란히 놓은 단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여자』는 어느 한 사람의 시선을 따르지 않고 현 여사와 소연, 두 사람의 입술로 동시에 이야기 한다. 그녀들은 분리될 수 없는 욕망과 불안이 아닐까. 때론 예정된 불행으로 추락하고 싶기도 하고, 어떻게든 합리적인 절충안을 찾아 긴장을 즐기고 싶기도 하고, 안전한 곳에서 몸을 사리고 싶기도 하고, 이 모든 걸 동시에 바라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거나, 자책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사랑이란 이름으로 무언가가 대신 결정해주길 바란다.

현 여사는 충실히,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소진시켜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소연에게 공을 들인다. 작업실에 소연을 위한 공간 정(釘)을 만들고, 소연의 오빠가 진 빚을 갚아주고, 원룸을 얻어주고, 마지막엔 전 재산을 그녀에게 남긴다. 파산이라도 하려는 듯 쏟아 붓는 이런 표현 방식은 지문처럼 대상을 가리지 않고 흔적을 남긴다. 지훈과 소연은 그녀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잊으셨어요? 제가 열다섯 살 때 어머니는 저한테도 그렇게 미친 듯이 사랑을 쏟으셨어요. 저는 그 사실을 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했어요. … 어머니는 무엇이든지 가슴에 끌어안는 것을 폭약으로 만들어 버리세요. 그리고 그것이 자기 가슴에서 터지지 않으면 스스로를 자해하세요.(212-213)”

“그래, 그녀는 나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어. 남편의 뒤를 계속 쫓아가며 죽음의 이유를 만들어 온 거야. 그녀는 나를 거쳐 곧장 남편을 향해 달려간 거야. 그러나 그녀가 나에게 남겨 준 죽음의 이유만큼은 내 것이야. 그녀에게 나는 절대라는 환영이었어. 환영이 스러지기 전에 그녀는 육체를 버림으로써, 자신에게서 끌어낸 절대를 저세상으로 이어 놓았어.(341)”

사랑을 하게 될 때면 실은 ‘사랑’보다는 내가 만난 구체적인 누구, 구체적 상황, 사건들, 말과 편지, 기록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그건 비누 냄새는 차라리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에 코를 박고 킁킁 거렸을 때나 나는 것이지, 내 곁에 그에게선 비릿한 냄새가 나고, 비누 냄새란 보통 여자들에게서나 난다는 걸 실감한 이후인 것 같다. 덕분에 나는 ‘그 순간’에서 질문을 바꿔 사랑을 하면 내가 강해지는지 약해지는지를 묻게 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시 강하다는 것과 약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에 대해 강해질 수 있는 나 자신이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그 마음의 우위란, 생각해 보면 참 보잘것없고 어처구니없는 자만심이기도 했다. 그녀보다 덜 초초해하고 덜 불안해한다는 그 차이가, 내 강함의 전부였다. 그녀가 나보다 더 초조해하고 더 불안해하는 것은 그만큼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인데, 사랑의 겨룸에서는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는 걸까.(146)” 이런 소연의 말처럼 사랑하는 중간에 내가 그녀를 덜 사랑할 때 강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현 여사처럼 죽음으로까지 자신으로 밀고 나가는 것? 헤어짐을 발판 삼아 강해지는 것? 여사의 죽음 이후 소연은 “인생의 황금빛 모퉁이를 또 한 번 돌아 생활인으로 돌아온(336)”다. 황금빛 모퉁이란 어디이고, 생활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또 한 번’이란. 아마도 황금빛 모퉁이란 현 여사에게서 사랑을 받던 그 때이고, 생활인으로 돌아온 다는 것은 옛 사랑의 청혼을 받아 결혼을 한다는 의미한다 말하면 실망스러우리라. 그건 꼭 풋내기가 남몰래 강렬한 기억으로 추억하기에 적절한 동성애란 풍랑을 겪고 어른이 되어 현실을 맞이한다는 것과 같을 테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소연의 삶은 현 여사의 죽음 이전, 그녀와 함께 했을 때 존재할 테니.

“지금까지 네가 말한 것들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의 너의 몸을 나한테 보여봐.”
“포즈로써?
“포즈가 아닐수록 좋지. 포즈는 멈춤의 상태이니까,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봐.” (161)

응답 2개

  1. 사비말하길

    꺄-
    얌송의 글을 위클리에서도 읽을 수 있다니 기뻐욤!!

    마지막 글귀는 적어둬야 겠네요.

  2. tibayo85말하길

    자신의 상태를 온전히 드러내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게 사랑이라는 거지요? 상대가 누가 되었든,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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