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몰락한 후에야 보이는 것들

- 은유

뜨거운 커피에서 냉커피로 입맛이 바뀔 즈음이니까, 아마 6월일 겁니다. 우리 위클리수유너머에 ‘사진공감’을 연재하는 임종진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회원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월간 소식지 <날자꾸나 민언련>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는 ‘이달의 회원’ 자격으로 자리에 나왔죠. 갓 퇴사한 자발적 백수였어요. 해직이 아니라 퇴직기자. 10년간 몸담던 <한겨레>에 사표를 냈고 머지않아 캄보디아에 간다했습니다. 기자시절 연을 맺은 장애인학교에 무료사진관 차리고서 사진을 찍어주고 이발을 해준다며 미용기술까지 배우고 있더군요. 우리 업계 용어로 ‘탈주와 횡단’을 단행한 건데, 무엇이 그를 등 떠밀었을까 궁금했어요.

인터뷰에서 그와 나눈 몇 가지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2003년 이라크전쟁이 났을 때 그는 종군기자로 바그다드에 갔습니다. 전운이 감도는 일촉즉발의 상황. 미국이 과연 언제 폭격하느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웠고 관련 기사와 사진을 열심히 송고했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눈에는 다른 게 보였습니다. 어릴 땐 이란과의 전쟁을 청년시절에는 1차 걸프전을 치르며 총성을 견디고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황폐한 삶, 간혹 그 속에서 피어나는 눈물과 웃음과 인정 같은 것들. 카메라가 자꾸 그리로 향했습니다. ‘정작 폭격을 맞을 사람들 얘긴 왜 아무도 하지 않는가?’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고 상품가치가 없어 주목하지 않는 절박한 삶의 현장. 그곳을 임종진은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로 채택합니다.

‘치고 빠지는’ 숙명을 가진 기자의 옷을 벗은 그는 ‘천천히 깊고 느리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앵글에 담아냈습니다. 캄보디아의 어느 철거마을, 폐허와 절망의 풍경보다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이웃에게 닭죽을 끓여 먹여 보내는 일상풍경에 전율하며 셔터를 누릅니다. 그 찰나에 미학적 가치까지 구현해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애당초 그럴 재간이 없다며 스스로를 사진작가가 아닌 사진하는 사람으로 칭합니다. 앞으로 훌륭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삶 자체의 귀함’을 전하는 사연전달자로서 거대담론이 아닌 작은 것들의 가치를 나누고 싶답니다.

임종진에게 사진은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고 기록하는 연필이면서 또 동시에 지우개입니다. 피부색, 이념, 언어, 재산, 장애 등 사람사이를 가르고 구별 짓는 경계를 지우는 거죠. 지우개의 놀라운 효능을 그는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는 <말> <한겨레> 등 진보언론에서 일하며 소위 억압받고 소외된 이웃들과 접할 기회가 많았고 본능처럼 그들을 연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독한 편견과 무지였음을, 나는 적어도 그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수평이 아닌 아래로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어설픈 동정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카메라 프레임에 외부 대상이 아닌 자기 내면이 보이더라며 고백합니다. “나는 계속 무너졌다”고요.

몰락한 후에야 보이는 것들. 사람 사이의 위계가 사라지고, 한 사람에게 주어진 규정이 무효화 되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나누고자 그는 참여연대, 상상마당, 달팽이공방 등에서 사진강좌를 진행합니다. 카메라는 세상과의 접촉면을 늘려줍니다. 타인이 나를 향해 다가옴, 내가 그 다가옴에 응답함,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접촉은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지도 않고 ‘무엇’ 때문에 이루어지지도 않는 급진적인 만남(낭시)입니다. 그래서 목적을 설정하는 순간 앵글은 쉬이 왜곡되어 버리죠. 우리가 함께 있는 궁극적 이유와 목적은 함께 있음 그 자체라는 것. 모든 생명은 그 땅의 최상이었고 그 세월의 최선이라는 것. 임종진의 사진공감이 말하는 ‘삶 자체의 귀함’을 이번주 위클리 수유너머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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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1개

  1. 이경말하길

    글 잘 읽었습니다.
    “나는 적어도 그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수평이 아닌 아래로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어설픈 동정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부분이 참 많이 공감이 됩니다.
    저한테는 동정이라는 단어가 죄책감으로 표현되곤 했었어요.
    이 죄책감이 내가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못했을 때 오는 것이라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거든요..
    블로그에 담아갈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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