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라시나우 리뷰

이집트 민주화 운동

- 육은정

Democracy Now!는 2월 5일자 방송에서 지난 달 25일 시작된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두 시간 동안 특집으로 보도했다. 시위자들은 12일째 카이로의 타르히르 광장에 모여서 무바락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해 나갔다. 또한 알렉산드리아, 마할라 등지에서도 수천명이 연대시위를 벌였다. 한편 폭력진압으로 인해 사망자는 11명, 부상자는 5000명에 이르렀고, 언론 탄압으로 인해 이집트 신문의 한 기자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Democracy Now!는 당시의 분위기와 무바락 정권의 언론 탄압,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시위의 확산, 여성들의 참여, 다른 중동 국가들의 반응 등 이번 사태의 다양한 국면들을 현지 특파원의 생생한 보도와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다뤘다.

이집트 당국은 봉기가 시작된 이래 최소 31억 달러의 경제 손실로 고통 받고 있는 상태라고 발표했다. 카이로를 거치는 모든 비즈니스들이 막히고 음식 공급이 바닥나고 있으며 이집트 경제부 장관은 이집트 경제가 정지 상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 경제는 하루에 3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바라크는 이 점을 이용, 경제가 붕괴되어 대규모 시위가 약화되길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한편 알 자지라와 알 아라비야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NDP(National democratic party)의 수장직을 사퇴할 것이라 밝혔다고 보도했다.

군대가 탱크 등 군사무기를 동원해 타흐리르 광장에 들어가는 입구를 막는 등, 강력한 저지를 펼치고 있지만 시위대는 오히려 “우리는 무바라크가 물러날 때까지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고 하며 의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의 요구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무바라크가 NDP에서 물러난다지만 이것은 작전상 후퇴 전략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민중들도 이를 알고 있다. 사실 지금 시위는 정부가 민중들의 요구에 얼마나 느리게 응답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 것이다.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넘쳐나는 현장 분위기

무바라크의 무력 진압에도 불구하고 타르히르 광장의 분위기는 매우 활기찼다. 다양한 정치적 토론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면서 해방과 연대의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광장의 분위기는 매우 활기찹니다. 저는 아침부터 어제 자정 넘어서까지 그곳에 있었어요. 여전히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를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곳 분위기는 정말 대단합니다. 어제 우리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액션이라고 외쳤습니다. 지난 8일 동안 모든 종류의 집단들과 운동들이 그곳에서 서로 관계를 맺었고 유동적인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비전을 우리에게 열광적으로 말해주었고, 다른 이들과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열린 자세로 정치, 정부 시스템에 대해서 토론하고, 자유와 공정한 투표를 바탕으로 원하는 것들에 대해 토론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광장에 간다면,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작은 수 백 개의 원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광장에 서 있었을 때, 사람들은 우리에게 ‘와서 우리와 함께 이야기해요. 우리 모두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곧 우리도 합류했죠. 그들 중에는 무슬림 병사도 있었고, 요리사도 있었고, 간호사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국가에 바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타르히르 광장에서 의견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있습니다. 놀라울 따름이죠.” (아흐다프 수에프 이집트 출신 소설가)

“그곳은 정말 해방된 공간입니다. 사람들은 타히르를 떠나지 않으려 합니다. 그곳은 매우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를 나눈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히르 광장에 머무르는 이유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해방 광장이라 불리는 곳을 해방하는 것의 상징성에 대해, 그 공간에서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 연대에 대해,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에 대해 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나라에서 보고 싶은 미래였고, 그가 살고 싶은 이집트의 모습이었습니다. 한 젊은 여성은 지난 십일 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백만 이집트인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고무시켰고 그녀로 하여금 처음으로 이 곳으로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한 남성은 처음으로 자유를 맛보았다고 했습니다.” (안잘리 카마트 특파원)

무바라크의 퇴진은 요구의 일부일 뿐

한편, 이날 무바라크의 NDP당 대표직 사임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만족하지 않고 자유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를 더욱 강력하게 주장했다.

“호스미 무바라크가 NDP당 대표직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이곳에도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무바라크가 물러나길 원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어제 시위자들은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자신들이 원하는 수많은 요구안이 적힌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대통령의 사임은 그 중 한가지일 뿐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가혹한 긴급조치법 중단과 과도기 정부 수립, 자유롭고 공정적인 선거를 보장하도록 헌법 수정, 그리고 지난 십일 간 있었던 폭력과 죽음에 대한 기소에 관한 요구가 있었습니다. 한 시민은 ‘지난 삼십년간의 (무바라크가 범한)범죄들을 범죄들을 용서한다 하더라도, 지난 십일 간 그가 저지른 일을 어떻게 잊을 것인가?’라고 했습니다.” (안잘리 카마트)

“무바라크의 NDP의 수장에 물러난다는 발표가 당 조직이 와해되는 시작인 것인지, 단지 배를 갈아타는(조직만 바뀌는) 위약 효과인지는 현재로서는 말하기 힘들다”(아흐다프 수에프)

거세지는 언론 탄압, 외국인 리포터 칼에 맞아

시위의 확산과 함께 무바라크 정권의 언론 탄압도 거세지고 있다. 타르히르 광장 안에 있거나 진입하려는 백명 이상의 저널리스트들이 심각한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이집트 기자의 사망에 이어 스웨덴 방송 SVT의 리포터 버트 선스트롬이 칼에 맞았다.

“지금 타르히르 광장에서는 저널리스트로 보이는 사람은 모두 엄청난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 저널리스트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저 역시 광장에 들어오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저는 제 카메라를 숨겨서 결국 들어오는 데 성공했지만, 촬영을 하는 동안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NDP의 요원들이 광장 안을 돌아다니면서 휴대폰으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을 찍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시민과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세 사람에게 발각되어 찍혔습니다. 대부분의 시위자들은 리포터들에게 매우 친절하고 자신들의 이야기가 전세계로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만, 이러한 위협이 평화적인 시위의 진행을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광장에 있는 시민들은 이집트 공영 방송의 보도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는데, 해외와 나라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이 방송이 정부의 어용 방송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르히르 광장 밖의 사람들은 광장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진실한 그림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영 방송은 시위자들을 이란이나 이스라엘의 스파이들로 매도하는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들도 시위에 참가하지 않거나 단지 일상적 질서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시위자들의 중요 요구안 중 하나는 독립적인 매체입니다. 광장에는 이미 미디어 텐트가 세워져서 그곳에서 시위자들과 그들 중 다치거나 공격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전세계로 퍼뜨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안잘리 카마트)

여성들도 시위에 활발히 참여해

주류 매체에서는 시위에 참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는 수천명의 여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있다. 타르히르 광장은 남성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이집트 사회의 모든 계층의 남녀노소가 이집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면서 상호작용하는 장이다. 지난 1월 18일에는 26세 이집트 여성 활동가 아스마 마흐포즈가 시민들에게 25일 타르히르 광장에 모이자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개제했다.

“희망은 단지 당신이 없다고 말할 때에만 사라질 뿐입니다” 아스마 마흐포즈 페이스북 영상
“4명의 이집트인이 30년 동안 견뎌야 했던 굴욕, 가난, 부패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분신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가 튀니지와 같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 정의, 명예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오늘 4명 중 한 명이 죽었습니다…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합니다. 여자인 저는 타흐리르 광장에 간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고,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와 함께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세 명의 남자와 폭동 진압 경찰의 무장한 차 세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그들은 우리에게 분신한 사람들은 사이코패스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이코패스라면, 왜 국회 건물 앞에서 분신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아주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비디오를 만들었습니다. 1월 25일에 타흐리르 광장에 모입시다.우리가 여전히 명예로운 인간이라면, 우리가 이 땅에서 존엄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25일에 광장에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여서 우리의 권리, 우리의 기본적인 인권을 주장해야 합니다…현 정부는 완전히 부패했습니다. 분신한 사람들은 치안 권력은 두려워했을지언정,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살한다는 것이 상상이 가십니까?
당신이 당신 자신을 남자라고 생각한다면, 25일 광장으로 오세요. 여성이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저항하러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명예와 남자다움으로 무장해서 25일 광장으로 오세요. 단지 한 줌의 사람들만 모일 것이기 때문에 모이는 것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그들에게 말할 거예요. ‘당신은 대통령이나, 거리에서 우리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찰과 마찬가지로 배신자입니다.’ 당신의 참여가 변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웃, 동료, 친구, 가족들에게 함께 하자고 말하세요…당신이 집에 있으면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만 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국가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될 거에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집에 앉아 있는 동안에 거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리로 나오세요. 문자를 보내세요. 인터넷에 글을 올리세요. 사람들에게 알리세요…분신하는 대신에, 우리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합시다. 그것이 세상을 바꿀 거예요.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희망은 단지 당신이 없다고 말할 때에만 사라질 뿐입니다.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정부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신 이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신이 말씀하시길,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꾸기 전까지는 사람들의 어떤 상황도 변화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더 이상 당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와 함께 당신의 권리, 나의 권리, 우리 가족의 권리를 주장합시다. 나는 25일 광장에 갈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부패도 더 상의 이 정권도 없다고 외칠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광장에 60~70만 명이 모인 것은 처음입니다. 성적인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광장에 있는 모든 젊은 남자들은 저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해줬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진일보입니다. 특히 여성들이 양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말이죠.”(아스마 마흐포즈)

“저는 죽임을 당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오바마 정부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무바라크가 해답을 찾을 자격이 있다는 발언을 그만두시오. 우리는 무바라크에게서 해답을 원치 않습니다. 무바라크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이 무바라크가 여전히 앉아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는 앉아서 이야기할 자격이 없습니다.”(셀마 알 타르지 타르히르 광장의 한 여인)

중동 전역에서 연대시위 확산 일로

한편, 중동 전역에서 연대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요르단, 이란, 터키, 레바논, 말레이시아에서 수천명이 거리 집회를 벌였고, 튀니지에서는 수백명이 이집트 대사관 앞에 모였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이집트 대사관에 수십명이 모여 무바라크 정권의 언론 탄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것은 아랍 세계의 길고 어두운 밤의 종결입니다. 우리는 수십년간 전제정치, 수탈정치, 절대군주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끝이 없어 보였습니다. 튀니지인들 덕분에, 약 6주 전쯤 자신의 몸을 불사른 한 사람 덕분에 갑자기 자유에 대한, 쇠락한 아랍 질서의 종말에 대한 열망의 전염이 일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물론 이것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아주 난잡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터져나온 열정은 다시 병 속에 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랍 세계에서 아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는 뭔가 전염성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해방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염됩니다. 아랍에서는 30세 이하 인구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3억 정도 되지요. 그들은 자유주의 국가를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기회의 평등, 언론의 자유 등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나머지 세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있고, 이런 방식으로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도약의 시작입니다. 전염성이 있는 기쁨입니다. 한 친구가 나에게 말하기를, ‘지금껏 이집트인이라는 것이 이렇게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또 한 튀니지인이 말하길, ‘우리는 우리가 이 행진을 시작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가 아랍 전체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이 세계의 최악의 것들의 집합체인 이 끔찍한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라시드 칼리디 콜럼비아 대학 아랍연구과 교수)

미 정치계 ․ 언론, 무바라크 퇴진 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정권 장악 예측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민주화 물결을 ‘바이러스’라고 칭한 메케인 현 애리조나 상원의원이자 전 대통령 후보를 필두로 미국 우파 정치계와 언론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귀환’이라는 시나리오를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메케인을 포함하여 많은 우파들이 ‘이슬람 도깨비’론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체제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무슬림들이 우리를 다 집어 삼키리라는 시나리오입니다. 이런 시나리오들이 최근 미국의 미디어와 정치계에서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완전한 거짓말입니다. 미국은 그런 방식으로 아랍 세계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비록 수십년간 그래왔더라도 말입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정치에 이슬람적 요소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체제에서 이슬람주의자들보다 세속적 반대자들을 분해하는 데 더 주력해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슬람주의자들을 도깨비로 매도함으로써 공포정치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존재에 찬성합니다…따라서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은 단지 민주주의가 덫에 걸려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누구의 집에든 올 수 있고, 어디서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권력을 휘두르는 뿌리 깊은 경찰 국가가 소멸될 수 있느냐입니다.”(라시드 칼리디)

“이곳은 이집트이지 이란이 아닙니다. 지금 무슬림 형제단도 광장에 있습니다. 그들은 광장에 있는 사람들의 7~10%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광장에서의 상황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도가 아니고 좌파인 우리들 역시 그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내 옆에 않아 있던 무슬림 형제단 남자는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내에게 자신이 어떻게 기도하는 것을 원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씻을 수 있도록 물을 부어 달라고 물이 든 병을 주기도 했습니다. 지나가는 이는 기독교인이었고,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이것이 현재 이집트의 모습입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군요. 내가 무슬림 형제단인 그 남자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 턱수염 때문에 날 쳐다보는군요.” 그는 웃었습니다. “나는 턱수염이 있는 채로 태어나지 않았어요. 나는 단지 면도기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없을 뿐입니다. 이 정권이 물러날 때,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면도기를 살 수 있습니다.” 이건 하나의 유머이면서 광장의 정신이죠.”(아흐다프 수이프)

이집트 혁명이 두려운 또다른 경찰국가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수십년간 중동의 유일한 민주 국가 행세를 해 온 이스라엘과 이를 묵인해 온 팔레스타인은 이집트의 시위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결국 같은 무바라크 라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바라크 퇴진에서 더 나아가 경찰국가 체제의 해체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수십년간의 타락한 아랍 시대로부터 이득을 본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 아라비아 등 걸프 만의 국가들은 법적 정당성을 결여한 연약한 체제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의존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었는데, 이 사실이 이스라엘의 상대적 우월성과 그로 인한 지배력을 정당화해 주었기 때문이죠.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독재적으로 이들을 응징하고, ‘우리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체제다’고 하면서 그들로부터 자신을 차별화해왔습니다. 게다가 이 정부들은 많은 조약에 의해 이스라엘에 묶여 있으면서 이스라엘의 중동 지역에 대한 지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군대는 최소 규모를 유지하며 시나이에 군대를 보낼 수 없도록 조약이 맺어져 있는 식이죠. 요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질서는 모래 위에 쌓은 것이지만 수십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지배자들은 그들이 이집트와 함께 구축한 체제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가자를 포위한 것은 미국과 유럽이 지원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협력 사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구축한 체제가 무너지려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서(알 자지라와 가디언에서 발표된 팔레스타인 정부의 유출 협상 문서)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불법 점거를 묵인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제4차 제네바 협약을 깨고 수십만명을 예루살렘으로 이주시켰는데, 이는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 흡수하려는 식민지적 정책입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를 인정해 줬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런 정부의 태도를 반대합니다. 팔레스타인 정부가 라말라에서 열린 이집트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를 막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무바라크 라인입니다. 메케인, 무바라크, 이탈리아의 벌루스코니와 아부 마젠은 모두 한 패인거지요. 라말라에서 시위가 계속해서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흐름이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경찰 국가체제가 처음으로 공포에 떨 이유를 가지게 된 거지요.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요르단, 예멘, 이라크 같은 곳에서는 효과가 있었던 반면, 시리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라크 수상은 그의 봉급을 반으로 삭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직인 상태에서 수십만 달러의 봉급을 받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요. 팔레스타인도 결국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라시드 칼리디)

이집트-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잇는 청년 운동

두 정부의 입장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안보 권력에 연대하여 대항하는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90%이상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집트의 30대 이하 청년들의 운동과 연결되고 있다.

조엘 베이닌(스탠포드 대학 교수) 이것은 사실 좌우의 스펙트럼을 넘어 이집트 문화의 어두운 국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적인 저항에 팔레스타인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는 많은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아리비아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아리비아어를 잘 구사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카리오에 와서 아라비아어를 공부하기를 원하고 카리오 사람들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제가 카리오에 있는 미국 대학에서 중동학 센터에 책임자로 일하고 있을 때, 저는 그들을 많이 만났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인들과 대화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이집트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했었죠.
2~3주 전에, 이스라엘 군대 입대를 거부한 이유로 감옥에 가 있는 한 친구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는 제게 그의 친구들이 카리오에 있는 미국 대학에 그가 말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대학은 어떤 이스라엘인도 주인/진행자(host)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가와 전혀 상관없이요. 그가 이스라엘 군대 입대를 거부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정권이 시스템적으로 지적/정치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행위를 할 사람들의 능력을 해치고 있습니다. 아흐다프 수에프씨가 묘사해준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대화는 개인적인 사람들의 집 벽을 넘어선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것입니다. 공적인 정치 문화는 제노포이아(외국인혐오증)에 의해 지배되어 왔습니다. 모든 종류의 공포나 음모 이론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돋우며 매우 좁은 정치적 문화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이제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라쉬드 카리디 맞습니다. 안보는 공포의 기후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붕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스라엘의 태도를 몇 가지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정상화는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을 막으려는 독재 정권에 의해 강요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집트 시민 사회는 불평등한 규정으로 협상되고 이행되어온 평화 조약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군대는 시나이(Sinai)에 들어갈 수 없지만, 네게브(Negev)에 이스라엘 군대가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평화 조약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군대는 평화 조약에 있어 그 크기에 제약이 있지만, 이스라엘 군대에는 제약이 없습니다. 따라서 많은 이집트인들은 정상화에 대한 생각을 거부합니다. 무바라크 정권 때 그의 전임자에 의해서 이 조약은 협상되었습니다. 무바라크는 이 불평등하고 복종적인 관계의 기둥이었다고 할 수 있죠.

조엘 베이닌 몇 년 전 제 유대인 친구가 카리오를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안티 시오니스트입니다. 그녀가 저희 집에 머물렀을 때, 저희 어머니는 의아해하셨습니다. 유대인이면서 반시온주의자라고? 저는 저희 어머님께 미국과 이스라엘에 그녀와 같은 사람이 많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중동 사람들은 진보적인 유대인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미국과 이스라엘에 인종주의에 대항해 팔레스타인들과 함께 연대하는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인종주의를 끝낼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무슬림, 기독교인들이 중동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은 가능합니다.

분열된 카이로

정부의 공포 정치로 인해 타르히르 광장 안과 밖으로 나뉜 카이로

“카이로는 지금 타르히르 광장과 나머지 카이로로 나뉘고 있습니다. 타르히르 광장에서는 통행금지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오후 1시였던 통금은 현재 오후 7시로 늦춰졌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곳은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한편 타르히르 광장 바깥에서는 통금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걸어다니는 것은 특히 더 공포와 위협이 따른다. NDP에서 풀어 놓은 폭력배들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리와 통로를 지키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 카이로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위협적인 조치는 시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공포에 떤 나머지 외부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마치 시민들이 스스로 경찰의 역할을 맡으려는 것 같습니다. 무바라크 정부의 공포를 조장하는 정치 선전 때문에 카이로가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타르히르 안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와는 대조적입니다.”(안잘리 카마트)

1월 25일의 씨앗 : 튀니지, 소셜 네트워크, 그리고 ‘글로벌 경제’

이번 이집트 민주화 운동은 십수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총파업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을 불가피하게 만든 글로벌 경제체제로의 편입은 역설적으로 투쟁에 대한 자신감을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튀니지 효과와 소셜 미디어의 영향이 주목받고 있는데, 사실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움직임이 십수년 전부터 있어 왔다는 것입니다. 2000년에 있었던 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시민운동, 미국의 이라크 침입을 반대하는 운동, 2006년 봄에 있었던 사법부 독립 지지운동, 그리고 가장 중요한 1998년에 시작된 2백만 이상의 노동자들의 3000회 이상의 파업을 비롯한 집단적 행동 등 이번 사건의 기반은 오랫동안 닦여져 왔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이집트인들은 국가 장치에 대해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국가 장치는 사실상 매우 위협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경제적 요구들을 달성시키면서 투쟁하면 실제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정부는 80년대나 90년대처럼 이러한 집단 행동을 억압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해외 투자가들에게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보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12일간 벌어진 일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이러한 누적된 경험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조엘 베이닌)

“사람들은 작년에 있었던, 온 나라를 정지시켰던 총파업을 잊고 있습니다. 파업이 시작되던 날 국내 노동 연합이 만들어졌고, 지난 몇 년간 매우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산업체들이 공장들로 가득 찬 자유 무역 지대들을 세웠고, 중국에서 많은 투자가 들어왔습니다.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이 협력한 군수 산업체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산업적, 제조업적 기반이 이집트에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글로벌 경제는 끔찍한 노동 환경을 조성했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이 조직화될 수 있는 구조 또한 창조했습니다.”(폴 아마르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응답 3개

  1. 독로강말하길

    독제가 있는 곳에서는 반란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 독제 밑에 인권을 잃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 용감한 청년들과 시민들이 일어나네요! 이 사실이 저 북한땅에도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저 북한땅의 용감한 청년들과 시민들에게 전해져서 용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나도한마디말하길

    여성 인권 탄압이 절망적이었던 이 나라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려는 것일까요? 국제사회의 지지가 매우 중요할 듯..앞으로 기대가 되네요!

  3. 말하길

    와, 대단하군요. 주류매체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이집트 내부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민주화는 우리 87년과는 전혀 다릅니다. 선거로 쉽게 봉합될 것 같지 않습니다. 노동운동도 강력하고, 여성운동도 세고, 사회주의적 무슬림 세력과 반-시오니즘 유대인과의 연대도 모색되고 있네요. 단순한 시민혁명이 아닌 듯, 계속되는 이집트, 타아가 중동 사회의 혁명에 촉각을 곧두세워야 할 듯. 배울 게 무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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