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CCTV

- 김민수(청년유니온)

건강상의 이유로 종로3가 커피숍 매장에서의 야간 근무를 그만 두고, 빈둥빈둥 거리던 나는 매력적인 파트타임 구인광고를 발견했다. 내가 일하는 청년유니온 사무실 바로 옆에 새로 생긴 프렌차이즈 커피숍이였다. 마침 돈벌이도 필요했던 차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재빨리 연락했다. 기왕이면 경력이 있는 친구를 원하는 사업주 입장에서도 적당한 녀석이 굴러 들어온 셈이니, 근로계약은 바로 성사 되었다. 이 근로계약으로 나의 커피숍 이력이 한 줄 늘어났다.

이 매장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3주 정도 지났었나..? 수시로 탈골 되는 어깨에 대한 MRI 촬영 때문에 결근 한 다음 날이였다. 전 날 촬영으로 몸이 곤혹스럽긴 했지만,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여 매장 업무를 보고 있었다. 시계바늘이 12시 반을 가리키자, 늘 그렇듯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의 폭풍 같은 주문이 이어졌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두고 ‘피크타임’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정점에 이르는 시간대라고 해석하면 적당하다. 사실, 직장인 대상으로 장사하는 매장은 이 피크타임이 하루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는 달리 말해서, 파트타이머와 매니저들은 이 시간대에 죽어난다는 소리이다. 커피를 손으로 뽑는 지, 입으로 뽑는 지 헷갈리기 시작해야 정상이다. 이런 시간대에 블랜딩 음료(얼음과 함께 갈아져 슬러시 처럼 제조되는 음료)를 주문하는 분들은.. 이런 표현 곤란하지만 정말 밉다. 요즘엔 커피숍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분들도 많아, 이 시간에 급하게 베이커리를 만들다가 오븐에 화상을 입기도 십상이다. 음료와 베이커리 제조에만 신경 쓰고 일하면 좀 나을텐데, 어느새 싱크대를 가득 채운 식기들을 보고 있자면 대뇌 중추신경이 가열된다. 나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고무장갑을 껴들었다.

전화벨이 울린 것은, 내가 설거지를 마치기 직전이였다. 아직 피크타임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짜증스러운 벨이 울렸고, 매니저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00카페 000지점, 매니저 000입니다.”

솔직함이라는 속성이 인류의 미덕이라면, 커피숍 본사에서 내려오는 전화업무 지침은 이러한 미덕에 역행한다. 바빠 죽겠는데 감사는 얼어 죽을.. 또, 수화기 들고 때리는 첫 인사를 저렇게 길게 때리려니 피곤하다. 아무튼 매니저는 본사의 매뉴얼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또박또박 전화를 받았다.

“거기, 지금 알바생 있니?”

까칠한 목소리에 다짜고짜 반말을 구사하는 이 분은 필히 ‘사장의 어머니’, 즉 사모님이다. 그나저나 알바생? 이 백주대낮에 사모님이 찾는 알바생이라면 나밖에 없다. 지금 나와 일하고 있는 나머지 2명은 알바생이라는 하찮은 칭호를 달기엔 직함이 높은 매니저들이다.

“네. 알바생 출근했어요.”

불쌍한 우리의 매니저는 짜증이 한껏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전 날 결근 한 파트타이머가 출근을 잘했나 확인해보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신경을 돌렸다. 그러나 수화기를 나에게 넘기라는 주문에 이르러서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일 잘하고 있다는데 꼭 목소리 까지 확인을 해야 하는 건가? 매니저의 짜증은 나에게 넘어왔고, 수화기를 든 나는 ‘네~’하며 빈정 담은 음성을 들려드렸다.

“어? 알바생 맞니? 목소리만 들으니 잘 모르겠는데?”

순간 욕지기로 진동하려는 나의 성대가 이성의 명령을 못 이겨 작동을 멈추었다. 인간 음성의 미세한 주파수 변화를 전공하는 교수라도 데려다가 자문을 구해야 지금 전화를 받고 있는 놈이 ‘알바생’이라는 사실을 믿을 것 같다.

“잘 모르겠네. 알바생, 거기 옆에 있는 CCTV에 얼굴 내밀어 봐.”

요즘은 커피숍 뿐만 아니라 웬만한 오픈매장은 직원들을 감시하기 위한 CCTV가 기본이다. 녹화는 물론이고 실시간으로 사장의 집이나 스마트폰으로 화면이 전송되는 시스템이니,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은 틀린 셈이다. 사모님이 말하는 CCTV란 바로 이것이다. 돈 털어가지 말라고 상냥하게 금전함 위에 설치 된 CCTV에 얼굴을 들이밀라는 주문에 마지못해 응했다.

“아.. 맞네.. 알바생 진짜로 왔네…”

‘파트타이머가 정상 출근했다는 사실에 진한 아쉬움을 내비친다니? 출근을 하지 말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수화기 너머로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의 아드님 되시는, 사장님의 웃음소리이다. “푸하핫. 내가 이겼어. 맞지? 왔다니까?”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래, 알바생 출근했네. 내가 졌어. 우리 아들한테 10만 원 뺏기게 생겼네.”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다정함이 넘치는 우리의 사장님 모자(母子)는 내가 출근을 했다, 혹은 하지 않았다에 10만 원 짜리 내기를 진행한 것이다. 전 날 결근한 파트타이머가 곱게 출근했을 리 없다에 10만 원을 건 우리의 사모님은 현대 문명의 걸작 CCTV까지 동원하여 나의 존재를 최종적으로 확인하였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CCTV가 두 모자의 즐거운 내기의 완성도를 높여 준 셈이다. -씹어 먹을.

CCTV 따위에 농락당한 것도 퍽이나 우울했지만, 두 모자가 순간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 베팅한 금액이, 나의 1주일 치 주급이라는 생각에 미쳐서는 -퍽 미칠 지경이였다.

응답 5개

  1. 촘촘말하길

    헐…………………………… 대. 박.

    절로 육두문자의 파도가 목구멍을 넘실게리게 만드는 상황………………..대체 어떻게 참으셨나요?! ………;;;;;;;;

  2. 안티고네말하길

    아…ㅆ!!!!!!!!!!!
    예전에 친구가 만났던 의처증 수준의 남자가
    친구들이랑 저녁 먹는다는데, 주변에 다른 남자 있는지 없는지
    화상통화로 한바퀴 돌려보라고 했다던 얘기보다
    더 열받는 얘기는 처음이네요…

  3. 매이엄마말하길

    이런 제길! 저것들은 지들이 올림푸스 산정의 신들이라도 되는줄 아는 모양이지? 저런 교만을 떨어대는 인간들은 신들의 시험에 자동 낙찰되어, 욥의 고난이 됐든 뭐가 됐든 실컷 괴롭힘을 당하기를….

  4. 욕하면 안되는데… ㅡㅡ;

    욕 아니고는 뭐라 할 말이 없네… 저열하게 노는 인간들이란.. 어쩔 수 없군여

  5. 은유말하길

    아휴. 속상해.. ㅠㅠ 미치겠네요. 대뇌중추신경 가열되네.. 사장님 모자의 모자라고 천박한 행태가 TV드라마에 나오는 억지스런 설정이 아니군요. (그나저나 민수님 몸관리 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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