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항저우 만두 르뽀

- 홍진

만두 테이스팅 여행을 떠나자

와인의 깊은 맛은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와인 잔 깊숙이 코를 박고 벌름벌름 킁킁거리기도 하고, 애인에게도 써 본적 없는 낯 간지러운 수식어로 그 비밀을 끄집어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주류세(죽어! 죽어버려!)가 많이 붙는 한국에서 평민들에게 와인은 일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평상시에는 좀 더 싼 음식들을 파헤쳐 보는 것도 좋겠다. 종로구 샤또 김밥천당의 이천원짜리 햄김밥, 단무지에서 나는 시큼한 아로마향과 매일매일 밥알갱이의 빈티지. 싸구려 음식에도 영혼은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중 어떤 음식은 충분히 몰입할 만한 가치가 있다.

지난 춘절 연휴에는 만두가 먹고 싶어 홀홀 항저우로 떠났다. 입에서는 아이들의 동요가 저도 몰래 흘러나온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만두를 좋아해~♬”
남프랑스의 포도밭 사이를 가볍게 지나는 자전거처럼 만두 테이스팅 여행이 시작된다.

신펑 新丰

신펑 옌안루점은 서호 옆 큰길 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우선 주력 메뉴를 살펴보자. 새우젓으로 살짝 간을 한 훈툰(4위안. 1위안=약170원)은 후루룩 한 입 먹으면 눈이 감긴다. 안에 육즙이 찰랑거리는 새우 소롱포(6위안)는 한 방울이 아까워 조심조심 쪽쪽 빨아 먹는다. 인민의 아침식사 하구만두(10개 1.5위안)는 아침 8시면 동이 난다. 초록색 채소로 만든 소가 가득 차있는 뜨거운 찐만두(1.5위안)는 마약이다, 마약.

남루한 차림의 아저씨 둘이 품에서 싸구려 술 한 병을 주섬주섬 꺼내선 만두 한판을 아주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고 있다. 빈자리를 찾는 바글바글한 사람들은 아랑곳없다. 시끄러운 가게 한 가운데의 조용한 주인공이다. 작은 승리. 짜잔!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새해 아침에 다시 신펑을 찾았다. 혹시나 했는데 문을 열었다. 거리는 한산하지만 신펑은 집에서 만둣국을 먹지 못한 많은 사람들로 빼곡하다. 바삐 식탁을 치우고 있는 언니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여 본다.
“새해 아침인데도 문을 열었네요.”
“쳇, 그냥 쭈우우-욱 연다구, 여기는.”
미안한 마음 보다는 흡족한 마음이 더 커서 흉악하게 웃으며 이를 쑤신다.

신펑이 위치한 사거리에는 고급 서양 음식점과 버거킹 등이 늘어서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같이 섞여 있는 게 좋다. 지대도 비쌀 텐데, 이렇게 싼 가격으로 잘 버티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다. 아니 이렇게 잘 팔리면 의외로 돈을 잘 벌려나. 엄청난 맛의 비밀은 식재료의 빠른 회전도 한 몫 할 것이다.

야오부더 咬不得와 양탕반점 羊汤饭店

이번엔 100년 된 군만두 집 야오부더를 찾아간다. 설명에는 탕포 汤包 만두의 조상이라고 되어있다. 청나라 때부터 이어온 만두 가게다. 땡그란 통새우 군만두(12위안)와 말갛게 투명한 고향미주(7위안)를 시킨다. 육즙이 가득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가는 입천장이 훌떡 벗겨질 만큼 뜨거운 만두와 한국의 동동주 비슷한 차갑고 달큰, 청량한 쌀 술이 잘 어울려 어느 틈에 이미 얼근히 취해 있다. 하도 맛있어서 오후에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또 갔는데 새우 군만두는 이미 동이 났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종업원의 얼굴에 미안함은 없고 교만함이 가득하다. 내가 일해서 유지되는 훌륭한 가게니까. 라고 생각한다면 좋다.

‘깨물 수 없는’이라는 재치있는 이름을 가진 야오부더에서 나와 20미터를 내려가면 이번엔 100년 된 양 탕 집이 나온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툭하면 백년이란다. 훌륭한 점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큰 가게들의 메인 음식들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소박한 가격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가게의 소중한 자존심이다. 뽀얗게 끓여 낸 양 탕(3위안), 양고기 만두(12위안)를 시킨다. 투박한 모양의 만두와 진한 국물이 오랜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대나무에 꽂은 고전적인 양꼬치에 곁들여 붉은 소흥주를 한잔 하니 취하면 취할수록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다. 100년의 기억을 머금은 밥집 안의 공간이 흐릿해지고 얼근히 취한 무송이 칼춤을 추고 있다. 서호를 바라보고 있는 무송의 무덤은 항저우시의 짭짤한 수입원이다.

이름 없는 면관

만두를 먹다 지치면 국수를 먹으러 간다. 인터넷에서 찾은 항주미식공략杭州美食攻略 1부, ‘평민의 왈츠平民华尔兹’ 편에 소개된 ‘이름이 없는 노상의 국수집’을 찾아내기 위해, 국수집이 있다는 쉐쓰루學士路를 얼마나 왔다 갔다 했던가. 혹시 여기? 부푼 가슴을 안고 들어간 가게에서 거침없는 조미료 맛으로 승부한 근본 없는 국수에 분노하며 나오기도 했었지.
어렵사리 발견한 작은 노점의 간이 의자에 앉아 기사에서 극찬한 5위안짜리 쉐차이뉴로우미엔 雪菜牛肉面(갓이 잘게 썰려 들어간 고기국수)를 시킨다. 조미료를 쓰지 않은 담백한 국물이 개운하게 속을 풀어준다. 할아버지 한 분이 노상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후루룩 잡숫고 계시는 짜파게티 색깔의 맛깔나 보이는 비빔면은 겨우 3위안인데 아까 간식으로 먹은 만두 두 판 때문에 도저히 배가 불러서 시킬 수 없다. 며칠 전, 조미료 국수에 격분했던 짝꿍의 얼굴에도 비로소 보살처럼 온화한 미소가 잔잔히 번진다. 꺼윽~

페라리와 자전거

만두와 술을 먹다 정신을 차려 보니 며칠이 지나 있다. 돌아오기 전 날엔 공용 자전거를 빌렸다. 항주는 훌륭한 공용 자전거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많은 수의 인민들이 자연스럽게 공용 자전거를 이용한다. 도시 곳곳에 (버스 정류장 정도의 빈도로) 자전거 보관소가 있어서 아무데서나 집어타고, 다시 아무데나 반납하면 되는데, 1시간은 공짜, 두 시간은 1위안이다. 자전거로 호수 주변을 돌고 있노라면, 곳곳에서 칼춤을 추거나 이름 모를 무공을 연마하는 어르신들을 보게 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호숫가에 앉아 보온병에 든 차를 호호 불어가며 마시고 있다.

사실 항주는 화려한 관광지다. 번드르르한 호텔과 명품점, 수입차 가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한 발자국만 안쪽으로 들어서면 굽이굽이 이어지는 뒷골목에 싸고, 오래된 음식점들이 가득하다. 장만옥이 즐겨 찾았다던 값 비싼 레스토랑과 우리의 만두가게가 공존한다. 그래서, 호텔과 비싼 음식점들 사이로도 항주 인민들의 삶은 유유자적, 흘러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무럭무럭, 어디서건 느긋하게 김을 피워 올리는 노점의 만두판과, 비록 돈 한 푼 없을 때조차 도시 어디로건 데려다주는 공용 자전거가 있는데다가, 한겨울에조차 너무나 아름다운 서호를 마음껏 산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응답 1개

  1. cman말하길

    아~~~~!
    잘 먹고 잘 마시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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