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무한독전

사랑의 기술, 어려우면서도 필연적인

- 이상미

흔히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판타스틱한 기대를 하곤 한다. 자신을 좋아하고 아껴주는 상대를 만나면 지친 세상살이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에 들뜬다. 전혀 남남이었던 상대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어쩌면 부모보다)가까워지는 사이가 되는 경험은 분명 강렬하다. 하지만 실제로 연애를 시작할 때, 사랑의 양상은 기대했던 바와 매우 다르게 전개된다. 로맨틱한 감성으로 충만할 줄 알았던 연애는 점차 서로 다른 생활습관과 가치관을 지닌 남녀의 무한 신경전으로 변질된다. 처음 사귈 때는 살짝 벗겨진 머리도 안쓰러웠는데 나중에는 코 주변의 넓어지는 모공만 봐도 거슬린다. 게다가 가장 친밀하다고 생각되는 사이이기 때문에, 회사나 다른 권위적인 인간관계에서 눌러왔던 감정까지도 여과 없이 표출시킨다(사실 연인은 샌드백 대용이 아니다). 결국 행복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한 편의 파란만장 막장 드라마가 된다.

사랑은 두 사람만의 이기적인 환상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여부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해주지 않으면 쉽게 화를 내곤 한다. 상대방은 내 사랑의 환상을 끊임없이 제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기적인 자아는 종종 상대에게 터무니없는 환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두 사람의 관계설정 자체부터 문제임을 지적한다. 사랑이 참을 수 없는 고독감으로부터의 피난처라는 것, 그리하여 사랑과 결혼을 통해 세계에 대항하는 두 사람만의 동맹을 굳건히 결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러한 관계설정은 세계와 대립되는 두 사람의 이기주의다. 이렇게 되면 사랑은 실질적인 ‘관계’가 아닌 두 사람만의 유토피아를 상정하는 ‘관념’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사랑은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지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런 상상을 수동적으로 충족시키는 행위는 더더욱 아니다.

사랑에 대한 기술

훌륭한 작업 멘트를 사랑의 기술로 오인하는 건 좀 곤란하다

프롬은 사랑을 합리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기술(Art)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사랑도 잘 하는 방법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을 위해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보호와 책임과 존경, 그리고 지식이다. 보호는 사랑을 느끼는 상대방을 아끼고 돌보는 행위이며, 책임은 다른 존재의 요구에 ‘응답할 준비’가 되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역량이다. 존경은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자 관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마음.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과 일체화된다는 것이지 이용 대상으로써 그와 일체화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된 세 덕목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지식’이다. 상대방을 존경하려면 그에 대해 잘 알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보호와 책임은 상대방에 대한 지식 없이는 맹목적일 따름이다. 사랑을 하려면 그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사랑의 환상에 대해 심취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대한 실상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상대방의 실장을 파악하려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나 자신과 상대방을 파악하는 시도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사람은 벗기면 벗길수록 계속 벗겨지는 양파껍질과 같으니까. “우리의 동료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수수께끼인 것처럼,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언제나 수수께끼다.”
사랑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행위를 통해 사랑의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사랑의 행위 속으로 뛰어들어 상대방과 나를 경험하고, 그 행위를 통해 사랑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얻게 된다. 프롬은 지식을 통해 인간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때에만, 사랑으로 인간의 궁극적인 본질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의 ‘주는’ 즐거움

선물을 줄 때는 그 선물의 미래 따위 생각하지 말자

앞서 프롬이 언급한 사랑의 덕목은 결국 사랑을 능동적으로 ‘준다’는 것과 연결된다. 보호와 존경과 책임과 지식 모두 자신이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양상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나처럼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위인이 아닌)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주는 행위를 통해 희열을 느낀다. 사랑을 상품 경제에서의 물물교환과 같은 원리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주는 행위에 대한 이해타산을 따진다(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이 정도쯤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사랑을 주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는 행위 속에서 그의 능동적인 활동성이 표현된다. 자신을 능동적으로 표현하게 되므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즐겁게 된다. “그는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를 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야기된 것은 그에게 되돌아온다.”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합리적인 이성을 통해 무언가를 제대로 줄줄 아는 법. 그것이야말로 사랑에 필요한 진정한 기술이다.

사랑의 기술 활용법

어느 아기는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무술부터 익힌다(응?)

무림고수들은 달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자신이 배운 무술 이론을 직접 실행해 본다. 아이 또한 걸음마를 떼기 위해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몸으로 익힌다. 사랑의 기술을 익히고 활용하는 것, 이것은 부단한 인내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익힐 때 필요한 덕목에 대해서도 명확히 적어놓는다. 바로 훈련과 정신집중, 인내, 그리고 최고의 관심이다. 먼저 훈련에 대한 것부터 살펴보자. 현대인들은 업무 에 대해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제외한 ‘훈련’에 대해서는 매우 무관심하다. 그들은(나를 포함해)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매우 놀고 싶어 하며 긴장을 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러한 훈련 없이는 삶의 중심을 잃고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프롬은 경고한다. 그 다음 덕목으로 언급되는 것은 ‘정신집중’이다. 사랑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를 배우든지 간에, 정신집중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자기 훈련 이상으로 정신집중 또한 현대인의 문화에서는 매우 드물다(혹시 이 글을 읽는 분도 한쪽에서는 TV를 틀고 음악을 들으면서 사람들과 잡담을 나눌지 모를 일이다). 세 번째 덕목인 인내 또한 기술 달성을 위한 필수 요소다. 단기간에 성과를 일궈내려다 보면 결코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언급될 덕목은 기술 습득에 대한 ‘최고의 관심’이다. 그 기술이 최고의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저 사랑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만 보이는 애호가의 수준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덕목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우리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때로는 그 기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일들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검도로 치자면 대련을 하기 전에 발로 몸을 운용하는 연습부터 해야 하는 식이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숙달시키려면 자기 자신이 기술 훈련의 도구가 되어 삶 전체를 이 기술에 바치거나 이 기술과 관련시켜야 한다. 사랑의 달인이 되려면 삶의 모든 국면을 통틀어 훈련과 정신 집중, 인내를 실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랑의 기술을 습득하면서 자신을 홀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랑의 기술은, 신기하게도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면 습득할 수 없는 삶의 기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는 이유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기술을 익히는 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회사만 빠져나오면 무기력증에 걸리는 사람이며, 권위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느낀 무력감과 엇나간 감정을 남친에게 여과 없이 발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다시 말하지만 애인은 샌드백 용도로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상대방도 미숙하게 대처한 면이 있지만, 그보다는 사랑에 대한 내 자신의 무능력함이 더 크게 와 닿았다. 프롬의 책을 읽은 후에도 변하지 않는 내 습관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규격화된 삶에서의 무력감에 휘둘리는 나에게는 운 좋게 찾아온 사랑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연애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기계적이고 관습적인 일상 속에서 삶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의 기술을 제대로 습득하려면 아직 갈 길이 까마득 하다.

응답 2개

  1. cman말하길

    기술이라는 단어가 거슬렸습니다. 사랑이라는 다소 따뜻한 단어와 달리 기술이라는 용어는 조금은 건조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한데도 마땅한 용어가 생각 나질 않습니다. 사랑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자칫 넘치면 힘들고 부족하면 서운해 하기 쉬워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겠습니다. 전 여전히 힘 들고 있구요. 잘 정리된 글 고맙습니다.

  2. 러블리형말하길

    사랑을 위해 필요한 덕목 =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라.. 곱씹어 볼만하군요~ 사랑의 기술이 삶의 기술인가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