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작은 일에 보다 관심을.

- 김융희

춥고 긴 겨울철이 지루하고 답답하여 배낭을 들러메고 등산길을 나섰다. 상계역에서 내려
동내를 관통하는 좁은 골목길을 거쳐 불암산에 오른다. 골목길이 끝나면서 약간의 경사진
얕은 산자락을 오르는 길이다. 지난 해 심었던 작물들 흔적이 아직도 구석 구석 남아있다.
배추, 고추, 가지, 상추, 시금치등을, 잘 해야 한 두평씩 인근의 주민들이 심심풀이로 취미삼아,
두루 심었든 것 같다.

도시 주변의 산자락, 빈 땅이 있는 곳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경관이다. 고추대, 가지나무
지지대가 그데로인 채, 오밀 조밀한 재밋는 정경이다. 지난 혹한에 아직도 녹지 않는 눈속의
노출된 흙들이 꽁꽁 얼어 있어 더욱 스산하다. 유달리 한 곳이 흙을 파헤쳐 벌써 퇴비까지
뿌려둔 자투리가 눈에 뜨인다. 꽁꽁 언 땅을 저리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긴 혹한을 지내려니 얼마나 답답했으면, 힘든 일도 마다지 않고 저리했을까 생각하니 훤히
짐작이 간다. 아마 나이가 많지 않는, 아니면 나이가 들었어도 고분치 않는 좀 괄괄한 성격의
노인일 듯 싶다. 집안에 있으려니 답답한데 갈 곳은 마땅치 않고, 가까운 노인정에는 좁상
들과 어울려본들 별로 재미가 없을 것이니, 꽁꽁 얼어 굳은 땅에 억지를 부려본 것이 분명할
듯 싶다.

그 노인은 젊어서는 시골의 농사꾼으로 살았을 것이다. 벌써 할머니는 하늘나라에 먼저 갔고,
몸은 예전 같지가 않다. 주위는 자꾸 외로워지고, 예기치 않는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다.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의지할 곳이란 자식밖에 또 있겠는가. 마침 자식들은 장성하여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변두리에 집도 작만해 살고 있다. 이런 부모를 둔 자식들, 불편한 부모를 외면할
자식은 없다. 아무리 어렵고 바빠도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이런 일을 몇 차례 겪다보면 자식들은 업무를 제치고 자리를 비우기도 쉽지 않지만, 늘 걱정에
불안으로 마음이 편치를 않다. 그래도 자식된 도리요 무난한 방법은 부모를 직접 모시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면, 함께 모여 이 문제를 의논하자며 형제들이
모이고, 부부는 방법을 찾아 의논하게 된다.

합의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부부 사이의, 친정이면 남편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시가쪽이면
아네의 눈치를 살펴야 하며, 형제들도 각자 이유를 데면서 합의가 쉬 이뤄지지 않는다.
여러 이견들로 심한 갈등과 집안 싸움도 없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나 생활에 여유가 있고,
집이라도 넓은 가정이면 결정이 한결 쉽겠지만, 그런 가정이 얼마나 되며, 그런 여유있는
가정에서는 굳이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아도 길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가정이 더 많은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로 문제와 고통을 겪고 있는 주위의 많은 가정을 나는 보아왔다. 고향에 잘 아는 분은
본성이 착하고 성실하여, 젊어선 열심히 농사지으며 가정이 화목하게 잘 살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를 여의고, 자신도 건강을 잃어가면서 서울의 자식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 때문에 가정싸움으로 분위기가 흐려지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는, 다녀오겠다며
고향에 내려와 농약을 마셔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서울에서 살 때였었다. 비교적 생활도 여유있는 이웃집에, 어머니가 함께 얹혀 살았다. 보자니
할머니는 일을 할 수 없는 늙은 나이로 갈 곳도 분명치 않는데, ,아침을 들면 식구들보다
먼저 외출해서 종일 밖에 있다가 꼭 식구들이 있어야 집을 들어섰다. 낮에는 홀로 집에 있는
법이 없다. 어떤 때는 집에 도착해서도 늦도록 문이 잠겨있으면, 주위를 방황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다. 이런 할머니가 딱해 보여 집에라도 들라면 정색을 하며
매우 당황해 하기도 한다.

젊었을 때는 고생을 안했을 외모에 교양도 있어 보였다. 이웃집 남자는 교직에 있으며, 여자는
부동산업을 한다고 들었지만, 이웃과 교류가 전혀 없어 정확히는 주위에서도 잘 모른다.
할머니도 일체 함구하면서 절대 노출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자기로
인한 어떤 좋지 않는 영향이 자식들에게 끼칠가 보아, 조신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음이
느껴진다.

분명하리라 생각되는 것은 아들의 친 어머니이다. 그 분의 성격에 자기 자식이 아니면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분위기에 버틸 분이 아니다. 집을 틀어쥐고 있는 며누리가 노인을
싫어하면서 못믿어워 한 것이다. 본인이 갈 곳은 없고, 자기로 인한 가정 분위기를 조심하며,
더구나 이웃에게 아들의 끼칠 평판을 생각하여 일체 함구로 감내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원체 고생을 모르고 살았고,, 남 앞에 조심성 밖에 모르는 예의바른 할머니이시다.

등산을 하면서 등산 이야기가 아닌 엉뚱한 생각으로, 완전히 삼천포길로 빠졌다. 장수로 인한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아무리 노인들의 사회문제가 부각되었기로, 문외한인 내가 노인문제를
왈가 왈부할 처지는 아니다. 다만 나도 한 노인이 되어 살고 있는, 남의 일이 아님을 생각할 때,
외면할 수 만은 없다는 생각으로 등산길에서 만난 텃밭들을 보면서 생각하다 보니 엉뚱한 길이다.

결코 남에게 의지하지 말자. 가능한, 외롭고 어렵더라도 시골 집을 지키면서 살아라. 움직일 수
있으면 계속 꼼지락거려라. 평생을 익혔던 일로, 간단한 채소를 재배하는 것 정도는,
늘 꼼지락거리면서 능력껏 먹작거리를 생산하라. 그리고 손수 가꾼 작물은 자식들이나 주위에
몽땅 나누어 줘라. 필요 없으면 그냥 썩혀도 좋다. 심고 가꾸는 정성이 돈은 안 되더라도
건강에는 분명 많은 도움이 된다. 심심하면 저자거리 노점에서 팔기는 하되, 돈에 집착하지는
말라. 그냥 노는 땅을 이용하여 꼼지락거림에 만족하라.

국가에서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하라. 보조금이래야 20여만원 정도면 족하리라
생각한다. 지금의 복지예산도 허리가 휘는데 돈이 어데 있느냐고? 예산 타령일 것이다.
그러나 노인들의 의료비 지원을 생각하면 결코 믿지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매일 보면, 시골
사람들 나들이의 대부분이 병원가는 길이요, 극히 일부가 복지관에 가는 노인들이다. 노인들이
채마밭에 붙어 부지런히 꼼지락거림은 참살이 건강이요, 바람직스러운 건강보장법이다.

시골의 지천으로 노는땅을 경작해서 생산품을 얻고, 여기서 생산된 채소는 몸에도 건강에도
좋은 전국민의 웨빙식품이다. 신토불이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수입 채소나 식품에 비교가 안된다.
또 금년의 배추 파동을 생각해 보라. 그것 뿐인가. 중국 등지에서 김치등 먹거리로 들어온
수입액이 한 해에 얼마인가? 이는 시골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도시의 빈터도 농촌과
같은 개념으로 이용해야 한다. 고용 창출에 이 보다 큰 공헌은 없다.

두 번째의 경우는 앞에서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할 수 있는한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 가정에 문제가 있음의 어쩔수 없는 일이라며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도 앞의 문제와 연관시킬 때 가능하리란 생각이다. 앞의 제도가 잘 이행되면
도시의 노인인구는 상당히 줄 것이다. 그러면 도시의 지금 복지시설만 잘 활용해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땅을 놀리면 보조금을 주는 제도가 아닌 조그만 자투리라도 이용케 하고, 그들에게 혜택을
주라. 지극히 당연한 정도가 완전히 외곡된 우리들의 삶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지금도 큐바의 아바나를 들른 많은 사람들은 자투리 땅을 이용한 개미군단의 생산이 어떤
삶을 만드는가를 보고 경이와 찬탄을 아끼지 않는다.(아바나의 생태도시로 도심텃밭가꾸기
소개는 다음에 별도로 미룬다)

성장 위주의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생각을 갖고는 결코 참살이 삶의 복지를 이룰 수 없다.
도시 근처의 빈터를 줄이거나 없에는 방법은 노인의 복지정책과 더불어 진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당위는 분명히 밝히고 싶다. 식량 자급율이 1/3도 안되는 나라에서 유휴지
보상을 실시한 것은 너무도 잘 못된 것임을, 국민 각자가 충분히 인식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알맹이도 없는 일로 이러쿵 저러쿵 많은 말에 민망스럽다. 그러나 좀더 체계적 연구로 이론을
잘 정리하면 바람직스러운 유익한 길이 분명 있으리라 믿는다. 성장이 우선이 아닌 복지가
우리들 삶의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한다. 생각을 바꿔보자. 작은 일에 보다 관심을 갖자.
실없는 소리로 또 지천이 쏟아질 것 같다. 그러나 제발 미친소리도 들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응답 1개

  1. 김정미말하길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양으로 이사오고 근처에 수리산이 있는데 미루다가 지난주 금요일과 이번주 금요일에 올라 보았습니다. 혼자의 산행이라 심심함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찬 바람을 쏘이며 머리를 맑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다 노인들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산에 올 시간없이 다 일터에 나갔는지.. 할일없이 젊은게 돈벌이도 안하고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닌지… 지나고 마주치는 사람들로 인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작은 것에 관심을 갖고 사랑을 주어야 하는데 자꾸만 다른 곳에 눈을 주고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봄바람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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