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오키나와와 연대의 온도차, 마을은 마을을 들을 수 있을까? -오키나와를 듣는다(沖縄を聞く)에 붙여

- 신지영

손잡기의 즐거움과 어려움

“네가 양손으로 친구들 손을 꼭 잡고는 막 뛰어가더라구. 그래서 안심했지.”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던 날 큰삼촌은, 맞벌이 부부였던 나의 부모님을 대신해, 사회로 첫 발을 딛는 조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것이다. 양손으로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유치원으로 뛰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큰삼촌은 매우 안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친구의 손을 무턱대고 꽉 움켜잡고 숨이 찰 때까지 함께 뛰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다지 좋지만도 않은 듯이 느껴진다. 악력도 조절해야 하고 잡은 손의 온도차이도 민감하게 느껴야 한다. 나에게는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주는 여러 명의 사회적 삼촌(?)들이 있지만 언제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할지 손을 잡고 어디로 가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을 짊어져야 할 순간들과 자주 만난다. 그럼에도 언제건 과감히 손을 덥썩 잡거나 두 어깨에 짐을 턱 짊어질 수 있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이른바 “연대”의 어려움과 기쁨에 대한 질문이 어느새 내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하나의 마을은 다른 마을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혹은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가? 등등.

최근 “쥐낙서” 재판에 도움이 될 의견서를 일본의 친구, 선생님, 활동가들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다. 이런 전달자 역할은 꽤 자주 하는 일이지만, 그럴 때 최소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연대를 위한 준비운동” 같은 것도 있다. 의견서를 부탁할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을지 모르는 정치적 상황들을 살펴보고, 안부라도 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것이다. 의견서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답신을 하려면, 그 친구의 안부를 물어야 하고, 그런 친구들의 안부란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그들이 활동하는 정치적 상황과 늘 긴밀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의견서를 부탁하는 덕택에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안부를 묻는 덕택에 정치적인 상황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기울일 수 있으며, 그 별개의 사건들을 하나의 평면 속에서 겹쳐놓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으로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전달자’인 나는, 양쪽의 친구들이 내게 부여해주는 그러한 정치적 요청들이 고맙다.

이번 의견서 중에는 오키나와 운동을 연구하고 활동하는 친구가 보내준 서신도 있었다. 오키나와 집회에서 만나면 돌아가는 길에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친구다. 그 친구에게 답장을 쓰려고 오키나와의 최근 기사를 검색하다가, “아뿔싸” 했다. 몇 가지 바쁜 일로 이번엔 상황을 충분히 살펴보지 못하고 의견서 요청 메일을 보냈었는데, 내가 요청서를 보낸 바로 그 시기쯤에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2월 20일에는 오키나와 다카에(高江)로 미군 헬리포트(헬기 정차장)를 이설하는 데 항의하는 시위 도중 2명이 체포당했으며, 26일에는 고등학교 무상화 방침에서 조선학교만이 배제된 것에 항의하는 서명을 요청하고 있었다. 한 두 마디 안부라도 건넸다면 좋았을 것을…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혼자 조바심쳤다. 물론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다. 공부하고 생각하고 쉴 시간과 여유를 갖는 것은 지치지 않고 활동하고 글쓰기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시야에는 늘 맹점이 생긴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그 맹점을 줄이려는 노력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마을이 지닌 내재적인 시선이, 그 마을 내부로 게토화되는 것을 피해, 다른 마을의 내재적인 시선과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잘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 듣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2월 20일, 2월 26일, 3월 9일. 그리고 온도차

내가 의견서를 부탁하고 있을 때 일본의 몇 가지 마을들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이러하다. 2월 20일 도쿄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오키나와(沖縄)의 다카에(高江)에 헬리포트(헬기 정차장) 건설공사에 항의하던 시위대가 무력으로 진압당해 그 중 2명이 체포되었다. 다카에라는 곳에는 4년 전 미군 헬리포트 건설공사가 착공되었지만, 다행히 주민들의 반대로 거의 진행되지 못한 채였다. 그러던 중 작년 말부터 갑자기 공사가 강행되었다. 올해 2월에는 오키나와에서 연좌농성 중이던 참가자를 무력으로 진압해 부상을 입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도쿄에서도 「오키나와를 짓밟지 말라! 긴급행동실행 위원회」주최로 미국 대사관 앞에서 항의 데모가 진행되던 중 체포되었던 것이다.

참여자들에 따르면 항의 행동은 아카사카(赤坂) 경찰의 허가도 받아 이루어진 평화로운 의사표현이었음에도, 경찰은 갑자기 경비체제를 강화하고, “해산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시위대 중 한명은 머리채를 잡혀 강제로 끌려서 체포 당했고, 경찰로부터 “이유 따위는 나중에 갖다 붙이면 된다”는 폭언을 듣는 등 진압과정이 매우 폭력적이었다고 한다.(영상:http://www.youtube.com/watch?v=OnwiaVSQ1ig) 집회 주최측은 이러한 탄압이 다카에의 상황이 주목받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띠고 있다고 하면서 국제적 연대와 지지를 호소했다. 이 편지는 몇 번의 ‘전달’을 거쳐 발신인을 만나본 적도 없는 내 메일함에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이 편지 끝 부분에는 “체포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이야기를 퍼뜨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다행히 3월 3일에 두 명 모두 석방되었지만 현재 불기소 처분을 얻어내기 위한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다카에의 상황은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 상황은 블로그에 계속 게재된다. 영어 블로그도 있으므로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blog:http://d.hatena.ne.jp/ametaiQ/ 영어판:http://d.hatena.ne.jp/ametaiQ/20110224 ->화면을 밑으로 내리면 영어가 나옴.)

26일에는 일본 전국의 고등학교가 무상화되는 과정에서 재일 조선인 학교만 배제되었던 것에 항의하는 전국의 대학 교원들이 중심이 된 집회가 열렸고, 공동 성명서가 일본 정부에 전달되었다. 한국에서는 3월 9일 <쥐낙서>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다. 또 내가 모르는 많은 일들이 한국의 작은 마을들에서, 일본의 작은 마을들에서, 세계의 작은 마을들에서, 마을 속의 보이지 않는 마을들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부당한 폭력들이 하나의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전달될 때 생기는 온도차에 대해서이다. 이는 단지 국경의 문제가 아니다. 작년 초 하토야마 정권이 “후텐마 기지의 현외(県外)이전” 이라는 공약을 배신하고, 미군기지를 오키나와 현 안에서 여기저기로 돌려가면서 이전시킬 계획을 시작하자 오키나와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당시 도쿄에서도 항의에 동참하여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때 만났던 오키나와 태생으로 도쿄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친구는 자신이 도쿄에서 느끼는 온도차에 대해서 말했다. 대부분의 도쿄 사람들은 오키나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무관심하며,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온도가 너무 차가와 함께 분노를 나눌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도쿄의 사람들은 쉽게 연대를 말하지만, 그 연대가 오키나와인에 의해서 거절당할 것이라곤 생각해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대를 요구하고 거부하는 선택권이 마치 자신들에게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야 말로, 그가 말하는 온도차의 근원, 차별의 근원과 통하는 것이리라. 또한 ‘일본’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위계화되어 온 도쿄와 오키나와의 관계이자, 오키나와 안에서도 다시 반복되는 위계화된 권력관계일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분노와 피곤이 뒤섞인 ‘온도차’라는 말로 표현했다.

거부당한 연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의 쾌락’

오키나와 해리포트 관련기사(도쿄신문 2011.3.1)

연대는 거부될 경우가 훨씬 더 많고 만남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하토야마 정권에게 배신당한 오키나와인들의 구호는 “미군기지를 현밖으로”였다. “오키나와 현의 바깥”이라는 것은 특정 지역을 염두해 둔 것은 아니었다. 일미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싫은 것들은 모조리 오키나와에 몰아넣어 버린 일본 중심부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오키나와인들의 “미군 기지의 현 밖 이전”이라는 할때, 그 말을 오키나와인들이 오키나와 현 바깥이면 미군기지가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이해해선 결코 안 된다. 그들만큼 민군기지가 야기하는 고통을 잘 아는 사람들도 없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는 그 말이 지닌 무게감이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것으로 남았다. 그 “현 밖”이라는 표현이 수사적으로나마 세계의 어딘가를 가리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오키나와인이 아닌 나는 무조건 찬성하고 지지와 연대를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도 미군기지 문제는 심각하며 만약 그 “현 밖”이 한국이 된다면 어쩌나… 하는 식으로 생각은 흘러갔고, 대추리가 생각나고, 그랬다. 연대가 ‘슬픔과 분노’를 통해서 이루어질 때, 그 연대는 거부당하거나, 연대하는 약자들 사이에 또 다른 싸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슬픔과 분노로 점철된 마을은 ‘최고의 악’을 설정함과 동시에, ‘최고의 슬픔’을 그 마을의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연대해야 할 다른 마을과 누가 더 무거운 슬픔을 갖고 있는지 하면서 슬픔의 무게를 재거나 각각의 이익을 놓고 경쟁하면서, 자신들이 고통 받았던 권력을 다시 한번 더 처참하게 반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대의 쾌락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니가와 간(谷川雁)은 「정치적 전위와 서클」이라는 글에서 대중들이 발견한 연대의 쾌락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른바 전위당들은 ‘계급연대’를 부르짖을 때 “이해의 일치”라는 점에 기반해 대중을 설득한다. 그리고 “개인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집단의 큰 이익에 붙는 것”을 “의(義)”라고 말한다. 다니가와 간은 이러한 전위당이 주장하는 연대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한다. “개인의 이익”을 출발점으로 하는 한 연대는 “일종의 기능집단에 불과한 것”이 된다. 따라서 개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정의를 접속시키는 것에는 늘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그는 대중의 연대법에 지지를 표한다. 대중이 선택했던 것은 “이익도 정의도 아니고 연대의 쾌락”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체제에서 소외된 대중의 재산이며, 대중은 그 감각의 전통을 하급 공동체의 저변에서 계속해서 유지해왔”다. 일본의 대중은 여기에서 비로소 “계급적인 연대의식을 우리의 것으로 할 자연적인 발생조건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谷川雁 著, 岩崎稔・米谷匡史編, 「政治的前衛とサークル」,『谷川雁セレクション1ー工作者の論理と背理』, 日本経済評論社、2009) 슬픔의 무게를 경쟁하는 이익집단 간의 연대가 아니라 “연대의 쾌락”을 함께 만들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내겐 아직 답이 없고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오키나와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도 못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친구들 덕분에 허덕거리면서 상황을 겨우 살펴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온다면, 그 순간을 감각적으로 알고 손을 번쩍 내밀거나, 불쑥 끼어든 손을 덥썩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오키나와 집회에서 만난 친구들의 말이, 그리고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느낀 몇 가지 인상들이 내가 공부하고 글 쓰고 평범하게 생활하는 순간순간에서 들리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오키나와인들이 느끼는 피곤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깨어진 오키나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말라리아섬으로 주민들이 이주했던 해안

첫째로 오키나와를 처음 방문했던 2008년에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오키나와 안에는 오키나와라고 불리지 않는 작은 섬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그 섬들은 오키나와 본토와 본토 이외의 작은 섬으로 위계화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 안에 도쿄와 오키나와가 있듯이, 오키나와 안의 본토와 작은 섬들이 그 위계질서를 반복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해 오키나와는 야에야마 열도를 비롯한 수많은 섬과 작은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는 산호로 이루어진 마을도 있다. 둘째로 오키나와를 둘러싼 바닷길을 보면, 오키나와는 일본이라는 땅덩어리보다 타이완과 가깝다. 토우진하카(唐人墓)는 오키나와에 왔던 타이완 이주노동자 마을에 있는 무덤을 지칭한다. 셋째로 오키나와 본토에는 일본의 그 어느 곳보다 잡다한 아메리카 상상으로 가득찬 “국제거리”가 있고, 미군기지와 자위대가 함께 주둔하고 있으며, 관광 택시아저씨들은 오키나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넷째로 오키나와는 천혜의 관광지이지만, 그곳의 자연은 결코 아름답다고만 말할 수 없는 어떤 괴기함을 동반한다. 이시가키 섬의 서쪽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는 고급 별장단지가 들어서 질펀하게 음식을 먹는 놀이판이 벌어지곤 한다.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식민지인 것이다. 이리오모테섬에 가면 깜짝놀랄 만큼 아름다운 바위들과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다가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정부 명령에 의해 오키나와인들이 말라리아 섬으로 강제 이주당해 무참히 죽어갔던 곳이다. 그곳의 바닷물과 모래에는 전염병의 섬으로 강제 이주당했던 사람들의 시체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등등.

오키나와인들에게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이 상황들, 오키나와 안에 내면화되어 나타나는 위계질서들, 오키나와인들이 느끼는 피로, 이것들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이상이 깨어져 버렸을 때, 그 깨어진 거울을 갖고 계속 싸워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다.

일본군에 의해 말라리아 섬으로 주민들이 이주했다는 기록이 있는 비석

“오키나와를 듣는다.”

신간 오키나와를 듣는다 표지

깨어진 오키나와 이미지, 오키나와인의 피로와 같은 말들은, 사실 내 깊숙이에서 나온 말들은 아니다. 이런 저런 말들로 바꾸어 보아도 역시 뭔가 석연치 못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다니가와는 오키나와에서 했던 강연에서 오키나와인의 얼굴에 서린 피로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오키나와는 도쿄, 간사이, 큐슈와 지나치게 사귀고 있다. 무언가 심하게 피로해져 있다는 것이 멀리서부터도 느껴진다. 예전엔 피곤해져 있을 때야말로 반짝 빛났던 피부 밑 결정 조각이 마멸(磨滅)되어 있다. 오키나와는 친구들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친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谷川雁 著, 岩崎稔・米谷匡史編, 「からまつ林からの挨拶」,『谷川雁セレクション2ー原点の幻視者』, 日本経済評論社、2009, 翻訳:申知瑛). 한국의 어떤 마을들이 오키나와의 새로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쨌든 “어떤 그”는 “연대의 거부”라는 경험을 한 적이 있던 하와이와 오키나와 사이에서 의견서를 전달하며 번역하고 있다. 또 다른 “어떤 그들”이 마을과 마을 사이를, 마을 속 마을과 마을 속 마을들을 계속해서 연결하고 있다. 이것은 “주고받는 행위”라기 보다는 “끊임없이 건네지는 행위”에 가깝다. 이 행위들이 일종의 네트워크 마을로 구성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끊임없이 듣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이번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듣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오키나와에 대해 쓴 신간 “오키나와를 듣는다”(沖縄を聞く)(新城郁夫、みすず書房、2010)의 모티프이다. 이 책의 맺음은 미군에게 죽느니 일본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죽는 것이 윤리로서 강요당했던 사건, 즉 ‘공동체’라는 윤리로 아버지가 부인을, 부인이 아이를 서로 죽이도록 강요당했던 “집단자결”이라는 처참한 사건 속에서 들려왔던 한마디 외침에 대해서 들려준다. 집단자결의 체험자 한명은 이렇게 증언한다. “엄마 죽지마!”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남기로 했다고. 이 책은 미국과 일본 정부에 저항하면서도 오키나와인 남성 사이에서 반복되는 젠더/섹슈얼리티적 식민지화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그러나 내 식으로 바꿔 말하자면 자기가 속한 공동체 내부에 있는 ‘타자’의 소리를 듣고, 그 말이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그 타자의 소리가 “삶에 대한 욕망”과 “함께라는 욕망”이라는 너무나 당연해서 잊혀 지기 쉬운 원리를 말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 오키나와인을 계몽시켜 말하도록 하거나(오키나와가 말한다), 오키나와인을 대상으로 삼아 관찰해서 말하거나(오키나와를 말한다) 하는 것이 아니라, “오키나와를 듣는다”. 이 복수의 웅성거리는 소리 앞에서 우리의 눈과 입은, 우리가 믿고 있던 주체성은, 뭉그러지고, 우리는 스스로 타자가 되어 타자와 만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친밀성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나는 이 글에서 수없이 ‘마을’이란 단어를 쓰고 있지만, 내게는 마을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연대를 말하지만 연대만큼 거부당하기 쉬운 것이 없듯이. 그렇지만 연대의 쾌락은 분명히 존재한다. 친구들로부터 의견서를 받아 읽고 번역하고 그것이 힘이 되리라 믿으면서 전달할 때 느끼는 그 벅참을 어떻게 쾌락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의 쥐낙서가 오키나와의 연좌농성과 겹쳐져서 들릴 순간들을 상상하면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해 본다.

“오늘도 오키나와로부터 요청들이 도착하고 있다. 그 요청을 어떻게 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키나와를 듣는 시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응답 2개

  1. 낙타말하길

    cman님, 공감해 주셔서 고마워요.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 오키나와에 가보고 참으로 느긋한 강렬함 같은 걸 느꼈어요. ^^ 어떤 폭력의 흔적도 앗아가 버릴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이요. 그래서 그들은 분노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cman 님이 갖고 계신 분노하는 힘이 저에게도 자극을 줍니다. 고마워요.

  2. cman말하길

    끊이지 않는 폭력의 흔적들을 도처에서 볼 때마다 무력함에 숨죽이곤 합니다. 오키나와의 상처가 이렇게 큰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몰상식적인 폭력과 일방통행에는 더 화가 납니다. 비극적 상황에 우선순위는 없겠지만 더 자세하게 알고 더 구체적으로 행동할려고 노력하고 싶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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