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카페

젊은 날, 친구를 만나자

- 안티고네

지난 번에 이어 <성균관 스캔들>로 조금 더 수다를 떨어볼까 한다. 이 드라마는 정조시대 성균관을 배경으로 한 학원로맨스물이다. 따라서 <성균관 스캔들>을 끌고 나가는 힘은 드라마 속에서 정조가 애타게 외치는 화성 천도나 금등지사가 아니라 ‘잘금 4인방’-복습합시다. 가랑 이선준, 대물 김윤식, 걸오 문재신, 여림 구용하-을 비롯한 성균관 유생들 간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러브라인이다. 특히 이 잘금 4인방에 <커피프린스 1호점>처럼 남자로 오해받는 멤버 한명이 끼어 있다는 게 관전 포인트. 중요한 순간마다 우정과 사랑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당사자들 스스로도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를 헷갈려 하는 풋풋한 러브라인 엮임이 사극 <성균관 스캔들>의 묘미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진 않건만, 당대 최고 권력자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이선준은 항상 원치않는 과도한 혜택을 받기 일쑤다. ‘좌상 대감의 외아들’이란 조건 때문에 원칙에 어긋난 편의를 누리고 싶지 않은 그는, 그래서 항상 딱딱한 얼굴로 원칙과 법도를 외친다. 하지만 이런 이선준을 주변 사람들은 늘 융통성 없는 녀석, 인정머리 없는 녀석이라고 오해하고 떠나간다. 이런 일들은 반복되기 마련이고 어느새 또래집단과 외따로 노는데 익숙해진 이선준에게, 하늘같은 성균관 선진들-선배들, 여림과 걸오-이 일러주는 귀한 말씀이 있다. “너처럼 똑똑해서 ‘혼자서도 잘해요’인 놈, 부잣집 아드님으로 과외 선생 붙여서 공부해도 충분히 대과에 합격할 수 있는 녀석에게 성균관이 필요한 이유는 딱 하나 뿐이다. 성균관은 또래들이랑 패거리 짓고 다니라고 있는 곳이다.”

인연을 만드는 능력, 이거야말로 피 끓는 청춘에게 가장 중요하다. 누구를 벗으로 사귈지, 어떻게 사귈지에 대한 것만큼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배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걸오사형과 여림사형의 말씀은 나중에 출사하여 큰 뜻을 펼칠 때 신뢰하며 함께 할 수 있는 벗을 만드는 과정이야 말로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진짜 이유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젊은이들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한 <성균관 스캔들>에서 ‘잘금 4인방’의 얽히고 설킨 우정이 성숙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다. 이선준이 그리도 존경하던 아버지의 말씀 뒤에 처음으로 토를 다는 순간이 바로 그의 동방생들, 그의 벗들을 옹호하는 장면이다. 내가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결정의 기준이 되어주는 이, 서로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게 너무 많은 내 벗들. 나를 알아봐 주고 내가 알아본 호적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사실 나를 허술하게 보는 것과 다름 없기에. 1등 엄친아 이선준은 가난한 양반이라서 유독 백성들을 향한 마음이 애틋한 김윤식의 시각,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행동하는 문재신의 용기, 그리고 성균관의 지낭(智囊) 구용하의 세상 사는 지혜를 배운다. 서로에게 배울 게 있고 그걸로 경쟁할 수 있는 이들의 우정은 그래서 튼튼하다. 실제로 이 드라마가 끝날 무렵, 즉 스무번의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성균관 스캔들>은 각 회를 몇 강이라고 부른다-, 이선준은 ‘마음을 나눈 진정한 벗들을 만났다’고 고백한다.

<성균관 스캔들>은 여기에 ‘김윤식이 사실 여자였다’는 복선을 깔려 있다. 이선준은 약혼녀보다도 남자(라고 알고 있는) 김윤식에게 더 끌리는 자신이 남색은 아닌가 죽을만큼 고민한다. 하지만 나중에 김윤식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동안 왜 자기를 속였으며, 여자의 몸으로 어디 감히 성균관에 들어와 강상의 질서를 어지럽혔냐고 크게 문제삼지 않고 비교적 쿨하게 받아들인다. (오, 커피프린스1호점의 공유보다 훨 쿨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로의 재주를 알아보고 인정한데다 함께 많은 일을 겪으며 쌓아온 이들의 사랑은 첫눈에 반하는 신데렐라식 이성간의 사랑보다 훨씬 단단하다. 물론 여기에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깔려있는 것 같긴 하지만. 동성애는 지나치게 쿨하고 문란하다는 오해의 정반대인, 동성애 관계를 지나치게 깊은 정신적 우정처럼 그리는 것 말이다. 뭐, 내가 하고픈 말은 사실 사랑이냐 우정이냐, 이성애냐 동성애냐를 그렇게 무 자르듯 나누는 것이 별로 의미 없어 보인다는 거다. 벗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이 인(仁)이라는 해석처럼. 사람을 사귀고 사랑하는 과정이야말로 계속해서 그를 공부하는 것 그리고 그와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김윤식의 말처럼 내가 판단 내릴 수 없을 때 다른 이의 판단이 아마 가장 옳고 좋은 것이리라 믿을 수 있는 것, 그와 함께라면 무한히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분 좋은 설레임, 이런 우정 이런 사랑이 켜켜이 쌓인 관계를 만들어 보자. 되도록이면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부터.

응답 3개

  1. 단단말하길

    크~! 마지막 문장 죽여요~^^

  2. tibayo85말하길

    글 중에
    “서로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게 너무 많은 내 벗들.”은 애정을
    뜻하는 말이겠지요^^ ‘성스’에서 배우는 ‘공부이야기’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 안티고네말하길

      재밌게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워낙 드라마 홀릭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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