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박혜숙 풍경지기 고등학교 교사 – 학교 밖으로 행군하라

- 은유

남산골, 개나리꽃보다 먼저 그가 왔다. 사뿐사뿐 비둘기걸음으로. 커다란 배낭 매고 주렁주렁 선물꾸러미 들고 수유너머를 찾았다. 첫 방문이 아니다. 슬며시 혹은 우르르 여러 차례 들렀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울산에서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선생님’으로 통한다. 공식용어로는 풍경지기 박혜숙. 올해로 15년차 교사, 독서모임 <풍경>을 8년째 이끈다.

풍경이 낳은 아이들이 400여 명. 아이들과 매달 책을 읽고 토론한다. 방학이면 떠난다. 저자와의 만남은 덤이다. 조국, 홍세화 강연장을 찾아가고 우석훈, 고미숙을 초청해 생얼을 대면한다. 책장에서 날아간 앎의 씨앗이 풍요로운 인연의 꽃밭을 피워냈고 울산에서 시작된 풍경소리가 맑고 향기롭게 울려 퍼졌으니, 이름대로 뜻을 이뤘다. 드물고 귀한 실천. 지난 수년간의 풍경 활동을 정리한 문서에 그는 이런 제목을 달았다. ‘교사와 학생이 길 위에서 벗이 되다’

교사, 책을 들다

‘발령 초기에 나는 일 년, 이년 만에 아이들을 바꿀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게 허황된 꿈을 꾸지 않는다. 지금까지 16-17년 동안 다른 삶을 살아오던 아이들이 나와 잠시 인연을 맺을 뿐이다.’

해탈한 중견교사가 초임시절의 방황을 회상한다. 그는 1997년 실업계고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수업시간은 전쟁터였다. 어려운 교과서, 학습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 열정만 앞서는 교사 이 삼박자는 항상 엇박자를 만들어냈다” 그러길 3년이 지난 즈음 가까스로 돌파구를 찾았다. 국어교사 2명이 새로 부임한 것이다. 그들과 의기투합해 국어교과연구모임을 만들었다. 공부한 내용을 수업에 적용했다. 그러자 가르치는 일에 점점 재미가 붙었다.

자신감을 얻은 박혜숙은 울산국어교사모임을 꾸렸다. 연이어 수학, 과학, 사회 등 다른 교과 선생님과의 독서모임도 만들었다. 공립학교라서 발령이 나더라도 구성원들이 모임에는 빠짐없이 나올 정도로 학습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책이 인연을 오래도록 그리고 꽁꽁 묶어주었다. 그가 매월 참가하는 교사독서모임이 서너 개. 지금껏 존속하는 장수모임이다. 책과 사람에게서 힘을 기른 그는, 본능처럼 아이들을 떠올린다. 아이들 마음에 풍경 하나 달아주는 상상에 빠진다.

책, 아이들을 만나다

‘내 자신이 동료 교사들과,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독서교육’이란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04년 겨울, 고1부터 내리 3년을 가르친 아이들이 수능시험을 치른 즈음이다. 박혜숙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책 읽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방과 후에 모여라” “에이~ 그런 걸 누가해요.” 깔깔 웃던 아이들. 그러나 예상 밖에 십여 명이 찾아왔다. 이것이 풍경의 시작이다. 책을 사랑한 선생님의 사심 가득한 ‘사조직’이 무려 공립학교에서 눈사람처럼 뚝딱 탄생했다.

“풍경은 사조직이에요(웃음). 비공식 동아리로 운영하죠. 학교의 공식 동아리였으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학교 행정절차에 따라 매년 애들을 뽑고 어떤 결과를 내야하고요. 또 공립학교니까 내가 학교를 떠나면 끊어지거나 다른 선생님이 맡아서 동아리의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학교를 옮기면 거기서 아이들을 모아요. 교사 중심의 동아리죠.”

박혜숙은 주 1회 아이들과 만나서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영화를 보고 토론했다. 활동내용과 운영방법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결정했다. 무엇보다 동아리 운영의 속도조절이 가능했다. 자유롭고 여유롭게. 여의치 않으면 한 해는 쉬어갔다. 새로운 아이들을 뽑을 때 이것만은 꼭 지켰다. “아이들과 친해진 다음 모집했다.” 지금까지 신정고등학교에서 풍경 1기 2기, 울산중앙고등학교에서 풍경 3기 4기를 배출했다. 현재 재직중인 다운고등학교에서 풍경5기가 활동한다.

아이들, 사람을 만나다

‘풍경 아이들은 처음에 이 모임을 한 달에 한 번 모여 독서토론을 하는, 단순한 모임 정도로 인식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임을 ‘공동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2008년부터 2년 동안 활동한 풍경 4기의 경우엔 한 달에 한 번의 만남이 2년에 걸쳐 이어졌다.’

풍경은 문턱 없는 동아리다. 풍경지기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빛과 바람이 드나들어야 꽃씨가 날아들고 퍼져가지 않겠는가. 풍경모임에는 책에 관심 있는 사람 누구나 올 수 있다. 재학생 졸업생 구분없다. 공익근무를 위해 울산에 내려와 있는 풍경 1기 선배가 참석한 적도 있다. 다른 학교 학생, 다른 학교 교사까지도 자유로이 참석하도록 모이을 알리고 배려했다. 그런데 ‘교사중심의 동아리’로 운영되다 보니 풍경아이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부족했다. 아이들 스스로 뭔가 해볼 기회가 없었음을 반성한 그는 좋은 때를 엿보았다.

그 무렵 <사제동행 독서토론 동아리 공모신청>소식이 들렸다. 풍경동아리 이름으로 혹시나 응모했는데 뜻밖에 당선됐다. 아이들과 지원금의 쓰임을 두고 의논하던 중 풍경이 직접 강연회를 열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이들은 섭외팀, 홍보팀, 행사준비팀 등으로 나누어 강연회 준비를 했다. ‘초청하고 싶은 강사’를 투표로 결정했다.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이 뽑혔다. 아이들은 우석훈에게 와주십사 간곡한 이메일을 쓰고, 영상 편지를 만들고, 토론거리를 정리한 두툼한 글을 보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답장이 오고 며칠 후 우석훈도 왔다. 울산의 어느 고등학생들에게로.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내가 읽은 책의 저자를 직접 만나다니!”

길, 생각을 틔우다

‘내가 인문학을 배우고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것은 필사적이었다. 내가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강의를 들으러 다니거나, 무엇인가 깨우쳐서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건 분명 새로움이었다. 학교와는 달랐다. 그들은 열정이 보였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나와는 달리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기에 저렇게 사는 게, 웃으며 사는 게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상상으로 여는 인문학’ 참석자 풍경 4기 학생의 글

한 때 자퇴를 고민하던 한 아이가 인문학 강의를 듣고 쓴 글이다. 그 아이는 인문학에 촉발 받아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박혜숙의 소신이자 보람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스승이 될 수 없다면, 나를 매개로 해서 나의 스승을 아이들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게 하자고 생각했죠. 그것만 남은 거 같아요. 아이들에게 인생의 롤모델이 될 만한 좋은 사람들 많이 소개시켜준 거요.”

박혜숙은 저자와의 만남 외에도 학교 밖 다른 세상을 보여주려 애썼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도 그렇게 인연이 닿았다. 40대 이후 삶을 고민하던 그는 고미숙의 <아무도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었다. 함께 공부하며 살아가는 지식공동체가 진짜 가능하구나! 막연한 꿈들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눈앞이 환해지고 가슴이 설렜다. 2008년 1월 겨울방학 때 울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지식공동체의 현장, 수유너머에서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강연을 듣고 세미나에 참석했다. 수유너머에 다녀간 이후로도 대안적 배움의 현장을 찾아서 틈틈이 행군은 계속됐다. 부산 인디고 서원으로 울산대 강연장으로, 전국 방방곡곡 풍경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나아갔다.

풍경지기, 학교에 틈을 내다

‘고독한 저격수’(우석훈)였던 아이들이 조금씩 옆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곳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려 발돋움한다. 나는 ‘고독한 저격수’에게 총을 쥐어주는 교사가 아닌, 땀을 닦아 줄 손수건을 쥐어주기 위한 고민을 시작한다…길 위의 시간들이 쌓여 ‘무력의 포위망’을 넘어설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아주 느리게 길을 찾아가고 있다.’

박혜숙은 고등학교 현직 교사다. 발밑의 현실은 치열하다. 교실에서는 언어1등급이란 목적수행을 위해 아이들을 몰아가야 한다. 마음의 양식으로 삼아야할 독서기록 마저 입시에 이용된다. 어찌하겠는가. 전쟁터 같은 학교에서 풍경소리 울리는 산사를 꿈꾸면서도 늘 바윗덩이 묵직하게 맘을 짓누를 터. 박혜숙은 견디는 중이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저자 엄기호 선생님이 왔을 때 그런 질문이 나왔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입시를 거부하라?(웃음) 계속 입시고민 속에 살아가나?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지켜보고는 있는데 할 말은 없어요. 학교 안에서 틈새, 공간을 열어가는 것밖에는…….”

교직생활 15년, 박혜숙은 이런저런 뒤척임으로 감옥 같은 학교 벽면에 작은 균열을 냈다. 희미한 빛이 들던 틈새가 넓어져 길이 보인다. 그 길에서 아이들과 걷고 묻고 보고 숨을 쉰다. 한해 두해 걷다보니 학교의 외연이 우주적으로 넓어졌다. 이제 풍경지기와 아이들에게는 배움이 일어나는 장소, 그곳이 바로 학교다. 건물 안과 밖의 경계가 무화되고, 시작과 끝을 갖지 않는 공부를 하며, 스승이 친구가 되고 친구가 스승이 되어 주는 그런 멋진 학교.

응답 1개

  1. 해피말하길

    ‘박혜숙은 견디는 중이다’에서 왜 눈물이 핑 도는지…
    백수 주제에…. 그래도 만나면 밥 한번 꼭 사드리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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