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연예인

- 김민수(청년유니온)

일요일 안방독점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 새로운 멤버가 영입 되었다. 배우 엄태웅이 그 주인공이다. 적잖이 당황스럽고 놀라운 캐스팅이었다. 나는 김c의 하차 이후 무게중심축의 부재로 제법 혼란스러웠던 1박2일에, 신선한 바람을 넣어 줄 케릭터라 생각했다. 엄태웅이 합류하는 첫 방송, 나는 정말 오랜만에 1박2일을 본방 사수했다. 엄포쓰의 첫 등장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다분히 궁금했으리라…

폭풍 저녁식사와 양치를 마친 뒤, 소파의 쿠션 각을 설정하여 무릎과 어깨의 각도를 조절한다. 살포시 전원 버튼이 누른 뒤 TV 수신 파열음이 들리면 곧장 숫자 0과 7을 연타한다. 동시에, 다른 손은 방바닥에 떨어져 있던 남은 과자 봉지를 향해 음속으로 뻗는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일련의 동작들은 구직과 실업을 전전하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의 필수 교양과목이다. TV화면의 포커스가 돌아오자, 엄태웅의 자택 앞이다. 강호동의 설레발 깨방정이 끝날 즈음 분위기를 파악해보니, 새벽나절에 엄태웅의 집으로 잠입하여, 무방비 상태의 영화배우를 혼돈에서 구제하고 야생의 정신으로 무장시키는 계획인 것 같다. 한마디로 ‘주거침입 작전’. 대한민국 검사들에게 예능감이 조금만 더 부족했더라면 1박2일 기소 들어갔으리라. 아무튼 카메라 앵글을 통해 모조리 노출 된 집안과, 호피무늬 속옷바람의 엄포쓰를 지켜보며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연예인에게는 보호 받아야 할 프라이버시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연예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찰은, 차라리 양반이다.

연예 활동과 프라이버시의 균형이라는 고찰을 잠깐 내리깔던 나는, 프라이버시의 침해를 고민하는 것은 차라리 점잖은 축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우리는 동방신기 노예계약설과 카라 해체설을 기억한다. 연예가와 세간을 뜨겁게 달궜던 이슈가 아니던가? 재주를 부리는 곰의 인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곰이 재주를 부릴 때마다 인간에게 돈이 들어온다면, 곰이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고 가능한 많이 재주를 부리게 하는 것이 ‘합리적 경제인’들이 활동하는 시장의 원리다. 물론 죽지 않을 만큼만 먹였다가는 연예계의 생리 상 문제가 생길 것이 틀림 없으므로, 비루한 대중들이 충분히 부러워 할 만큼의 부(富)는 곰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래도 어떠한가. 그 정도 투자가 아깝지 않을 만큼 재주를 굴리면 되는데…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14시간 노동으로 착취 당하는 생산라인 종사자와, 더 많은 행사를 뛰기 위해 화장실 다녀 올 시간이 보장 되지 못하는 특급 연예인 사이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무리수인가?

연예인이 누리는 부와 명성을 감안하면, 프라이버시 침해나 인정사정 없는 아이돌 굴리기 따위는 별 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 법 하다. 연예인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포기한 기회비용이라고 결론 지어버리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가?

“날 가지고 놀고 넘 불결하고 비참해. 미칠 것 같고 죽여버리고 싶어. 2007년 중반경부터 지금까지 00일보 회장부터… 감독, 피디 순서대로. 몇 명을… 오빠에게 말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만 해도 스무 명이 넘잖아. 감독, 피디들은 기본 당연 코스 이런 식이고… 김 사장이 말… 스타가 만들어지기 위한 기본적인 일이란 식….”

2주기를 맞은 장자연 씨의 슬픈 죽음에 먼저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편지가 조작이네, 자신들의 성역을 음해하기 위한 고도의 수작이네…하는 이빨까기 늘어 놓는, 인간거죽 뒤집어 쓴 개새끼들은 조용히 묵념하길 요청한다. 편지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연예인을 꿈꾸는 지망생의 성상납은 이성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논리적 추론을 완성할 수 있는 팩트 아니던가? 수요(연예가)와 공급(연예지망생)이 불균형을 이룰 때,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을 가동하여 공급재의 가격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인간의 존엄성과 성적 자결권, 성과 사랑의 양립 따위를 의무교육 과정에서 수료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행패를 정의와 상식이라는 공공의 힘으로 제어하지 않는 이 야만의 국경에서, 공급 가격의 저하는 극단적인 양상을 띄게 된다. -‘몸을 제공하여 자신의 가격을 낮춘다.’

꼴에 국정을 다스린다는 넥타이들에게 묻는다.

수 천 만원에 육박하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토크바에 취직했다가 성상납으로 이어지는 커리큘럼에 진입하는 대학생과, 연예인을 꿈꾸다 인간의 존엄을 유린 당한 채 죽음으로서 실존을 지켜 낸 연예지망생이 공존하는 이 나라는, 대체 무엇인가?

당신들, 지금 밥이 넘어가는가?

응답 4개

  1. 조르바말하길

    정말. 글이 촌철살인이네요. 진정 세상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글을 쓸줄 아는 민수님이 부러워요. 저는 매일 밤 12시 넘어 퇴근하는 제 자신의 현실에 대해서만 분노하는 것 같습니다.

    분노할 뇌가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 같아 슬픕니다

  2. 아아말하길

    연예인들 숙소라던가 침실을 급습하는 것 많이 써먹던 아이템이라 별 신선하게 느끼진 않았는데 리얼리티있게 연출되었나 보군요. 팬들의 관음증에도 편승한 방송생리가 아닌가 싶어요. 사생활침해 정도되면 카메라가 멈추던가 방송이 되질 않았겠죠. 워낙 선망되고 경쟁이 치열한 방송가라 화려한 이면의 그늘을 간과하면 안되겠죠. 지망생들도 일반인들도. 원래 그런 곳 아냐하는 심리도 패배의식일지 배제일지 도덕불감증일지… 그럴수록 비극은 되풀이될텐데.

  3. 말하길

    매번 느끼지만 어쩜 이리도 글을 잘 쓰는지요. 맛갈스런 표현, 적시적소의 욕지기,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더러운 손….권력의 손….짤라버려…

  4. someday말하길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호에 글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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