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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日記. 3월 15일, 맑음.

- 김융희

지구가 잦은 재난으로 요동치고 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는 화산재로 하늘길이 막히고,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곳곳을 휩쓸면서 지구촌을 온통 혼돈세계로 만들고 있다. 큰 충격은 거리에 비례하는 듯 싶다. 북구, 동남아, 오세아니아등의 대재난때는 지금처럼 가슴이 통통거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로 지척인 코앞에서 발생한 일본의 참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마치 나의 일처럼, 가슴이 콩당거리며 사뭇 질리는 마음이다. 참으로 상상을 초월한 대재앙에 온 새계가 요동치고 있다. 제발 그만 멈춰 주었음 좋겠다.

그런데 인제는 지진이나 쓰나미의 공포보다는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로 인한 방사능피해의 염려로, 온 지구가 완전히 공포에 휩쓸리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재해의 광범위한 위력에 결코 우리도 안전치 못할 것 같다. 그토록 기술을 뽐내며 말끔하게 지어진 웅장한 건물들이 자연의 위력앞에 속수무책, 마치 장난감처럼 허물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들 마음은 참담하다. 결국엔 인간의 기술이 만들어 놓은 문명이 자연앞에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어쩌면 계획된 창조 자연의 수순인 듯 싶은 생각을 지울수 없다. 이번 재난으로 우리들이 깊이 새겨봐야할 대목이다.

이화여대 ECC관에서 <한일영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 꽃샘 추위가 한겨울 맹추위를 넘보는데, 바람마저 거세어 몹시 을시년스런 날씨이다. 이런 저런 대소사의 시끌시끌한 심사로, 아늑푹신한 곳에서 영화나 몇 편 보자며 차라리 나들이를 나섰다. 봄의 길목에서 캠퍼스도, 젊은이들의 옷차림도 아직은 봄이 멀기만 하다. 축제는 벌써 육일 째로 접어들어 내일이면 끝나는 날이다. 시작과 더불어 예기치 못한 일본의 돌발 사태로, 상황에 맞춰 모든 부대행사는 생략되고 영화 상영만의 진행이고보니, 영화제의 상영관인 ‘아트하우스모모’의 분위기는 약간 한산하다.

2관에서 1시 30분에 상영한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95분)를 관람했다.

제일교포 작가 ‘양석일’의 소설 <택시 광시곡>을 각색한 코믹 드라마이다. 도쿄의 심야 운전자로 먹고 사는, 일본명 다다오라 불리는 재일 한국인 강충남은, 동창의 운영 택시회사에서 시간이나 채우는 처지로, 아동 바동 살아가는 동창과 동료들, 하지만 충남의 관심사는 오로지 여자를 꼬시는 일이다. 일본 여자는 엄마가 반대하고, 한국 여성들은 한량 취급을 당해 실패이다. 그는 필리핀 여성으로 엄마 술집 접대부로 일하는 ‘코니’ 여인을 거짓말, 동정표로 환심사기를 계속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결국 무조건 집으로 처들어가 동거를 하는 동안, 택시회사는 동창인 사장이 사기를 당해 야쿠샤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몰리고… 90년대의 도쿄의 혼란상, 남북관계의 이념 갈등, 재일 교포의 현실적 곤경과 삶의 양태들이 코믹하게 얽혀 엎치락거리며 거칠게 진행된다.

이어 4시부터 우리는 제일동포인 ‘오미보’ 감독의 “엄마 시집보내기”(110분)를 계속 관람했다. ‘미야자키 아오이’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나이 많은 엄마의 갑작스런 결혼 선언에 25세의 딸 츠기고의 충격으로 모녀간의 갈등을 빚으며 벌어진 이야기이다.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엄마와 딸의 관계가, 어느날 결혼을 선언한 엄마로 인해 갑자기 무너진다.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온 사랑의 관계가 결국 실망과 배신감으로 갈등하며 험악한 분노로까지 변하게 된다. 그러나 시한부 삶의 어머니에 대한 곡절을 알게된 가족들은….

주연 ‘미야자키 아오이’ ‘오타키 시노부’의 섬세한 감정 연기로 전형적 일본식 가족이야기다. 일본 전통가옥 실내의 오밀조밀한 장면들, 우리로써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연인과 이웃인 정형외과 의사, 집주인이 한 식구들로 이루어내는 유사 가족들의 관계가 흥미롭다. 특히 모녀와 극중 인물들의 갈등이 우애와 화해의 해피엔딩 마무리는, 오늘처럼 우울했던 마음을 달래는 관람이 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처음 스케쥴대로면 미리 정해둔 곳에서 저녁을 들기로 되있다. 그런데 한 편의 영화를 더 보고 싶다고 한다. 한 시간여의 여유로는 정해진 곳까지 갈 수 없어, 부근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젊은이들의 터전인 이곳 음식은 온통 조미료 범벅에 달고 자극적인 음식 뿐이다. 나는 남따라 적당히 주문하고, 가져온 막걸리를 꺼냈다. 반주로 한 잔씩 따르는 술잔을 단주를 핑계로 한사코 사양한 분이 있다. 시도 곳도 없이 지천으로 듣는 말, 술꾼치고 단주결심 한 번쯤 안해본 사람 있나! 그러려니하며 넘기려는데 단주 화제가 계속된다. 나에게는 마치 막걸리에 어떤 하자라도 있어 단주를 단행한 것처럼 들렸다. 술에대한 불평은 언제나 자기탓은 없고 모두가 술탓이다. 술이면 다 술인가. 결코 막걸리는 탓거리가 없는 완벽식품이다. 그런 막걸리를 왜 시비냐며 내가 진짜 시비를 했다. 이목이 내게 쏠린다.

아차, 내 실수다. 수 틀린 음식의 기호가 엉뚱하게 곁으로 튀었다. 듣고보니, 단주의 사연이 술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동료를 떠올리기가 싫어서 있는 일이다. 남의 일이지만 굳이 이야기를 한다면, 막거리를 그렇게 좋아했던 동료가 근래 스스로 생을 포기했단다. 그래서 영원히 떠난 친구를 막걸리만 보면 더욱 사무쳐와서 아예 동료들이 막걸리를 끊자고 했다는 사연이다. 듣고 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으면서, 내 꼴이 더욱 처량해진다.

2011년 3월 15일의 하루가 이렇게 엎치락거리며 지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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