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실습생

- 김민수(청년유니온)

“치위생사 인력난 ‘심각’···치과에서 파격적 대우”
“치위생사 구인난, 주5일근무+야간근무無 ‘파격조건 제시’”

올 초에 올라 온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치위생사 자격을 갖춘 인력들이 턱없이 부족하여, 치과들이 애를 먹는다나 보다. 그 잘난 시장원리를 다시 한 번 끄적여 봐야겠다. 수요는 많은 데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니, 가격이 치솟는다. 주5일 근무에, 야간근무 배제라는, 치위생사에 대한 파격적인 가격(근로조건)이 형성된다. 풉. 노동권에 대한 개념이 박약한 한국사회에서 저런 조건들은 대단한 파격인가 보다. 헤드라인만 인용해 놓고 가타부타 하는 것도 우습지만, 사족을 달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 주 5일 근무의 개념이 도입 된 역사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여성근로자(치위생사의 상당 수가 여성임을 감안한다.)에 대한 보호의 취지로 여성에 대한 야간 근로는 법률에 근거하여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당연한 권리’가 ‘파격조건’이 되어버리는 야만에 찬사를 보낸다. GDP 2만 불이 선사하는 알량하고 눈꼽 만한 트리클다운이라도 없었더라면, 이 야만의 국경은 몇 번이고 뒤집어 졌으리라. 박정희 가카 만세. -썩을.

헤드라인 비꼬기는 이 쯤에서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치위생사 이야기를 조금 해봐야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치위생사 실습생’의 이야기이다. A는 모 대학의 치위생학과 2학년 학생이다. 원래는 학생인데, 2학년 교육과정의 대부분이 병원실습이라 지금은 실습생이다. 뭔가 말이 이상한데 아무튼 그렇다. 2학년 1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치과가 달려있는 종합병원들을 전전긍긍하며 실습생 생활을 하고 있다. a 병원에서 한 달, b 병원에서 한 달, 그리고 이 과정이 끝나면 c 병원에서 한 달… 이런 식이다. 여러 병원의 실습과정을 겪어보라는 대학의 배려(?) 덕분에, A는 서울 고시촌 투어를 하고 있다. 기원 전에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집을 옮겨 다녔는데, 2011년을 사는 청춘은 실습병원 따라다니면서 집을 옮겨 다닌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

실습생 라이프의 수박 겉만 핥았는데도 실소가 나오는 데, 안으로 들어가면 가관이다. 말이 좋아 ‘실습생’이지, 이건 뭐 월급 없는 동네북 신세이다. 교과서에서 학습한 내용을 실습과정을 통해 몸소 체득 시킨다는 본연의 목적이 민망하다. ‘실습생은, 병원에서의 근로관계가 형성되어 관리. 감독 하에 놓여있는 노동자와 동급, 혹은 그 미만으로 취급한다.’는 권능을 누가 부여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상이 그렇다. 개뿔 월급도 안 주는 것들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온갖 잡일은 다 시킨다. 그래도 어찌하랴. 조만간 직딩 라이프를 함께하게 될 지도 모르는 병원에서 내리는 지시이니, 기라면 기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뭐. 부당한 대우에는 당당히 맞서라는 교과서적인 충고는 정중히 사양한다. 당당히 맞서는 일이 말처럼 쉬웠으면 청년유니온은 세상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무임금 동네북으로 사정없이 굴리는 것도 억울한데, 임금 받는 동네북보다 열약한 조건은, 새삼 더 억울하다. 병원 내에 실습생을 위해 확보 된 공간이 없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휴게공간도 마땅치 않아, 작은 회의실 한 켠을 차지해 노곤한 몸을 쉬게 한다. 그나마 회의실이라도 확보되면 다행이다. 회의실을 확보할 수 없는 날이면 커튼이 쳐져 있는 복도 끝에 주저앉은 채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고 중얼거리며 자존감의 추락을 경험한다. 밥은 어떻게 하냐고? 꼴에 식대랍시고 2000원 주긴 한다. 푸핫. 덕분에 2000원 짜리 편의점 ‘식사’를 거듭하며 영양불균형 다이어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시설노동자들은 하루 식대로 300원 받았다는 데, 병원 자본은 참으로 인간미가 넘치는 축이다.

후. 여기까지 끄적이면서도 열이 뻗치는데, 마지막으로 대학 등록금 이야기를 꺼내려니 환장하겠다. A가 재학 중인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은 450만 원 선. 사회정의에 반하는 금액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평균이니 일단 넘어가주자. 문제는 이 등록금이 병원실습 과정과 결합하여 등장한다. 등록금이라는 녀석을 적당히 분해해보면 태반이 ‘수업료’이다. 학교에서 마련한 시설에서 책 보고, 공부하고, 학교에서 채용한 교원의 강의를 듣는 금액이라는 등록금의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헌데 우리의 ‘대학님’은 대부분의 교과과정이 외부 실습으로 이루어지는 학기에도 등록금의 조절 없이 액면가 그대로 받아 잡수신다. ‘이게 뭐가 문제야?’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다분히 문제이다. 실습생에 대한 대학 수업료의 일괄적용에 대한 문제의식을 넘어가면, 병원과 대학 간의 커넥션에 대한 의문 또한 발생한다. 대학은 수업료에 대한 조절 없이 교과과정을 병원에 위임하며, 병원은 실습이라는 미명 아래,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근로자’를 무상으로 확보한다. (다시 말해, 무임금 동네북을 확보한다.)

얼씨구 신난다~ 누이좋고 매부좋다~ 풍악을 울려라~ 대학은 학생한테 삥 뜯고, 병원은 실습생에게 노동력 뜯고~ 문제는 학생과 실습생이 동일인물이라는 거~ ㅋㅋㅋㅋㅋㅋㅋ

니들 지금 장난하냐?

응답 1개

  1. 4월말하길

    실습생, 인턴, 진짜 욕나오는 제도다. 메뉴펙쳐 시대의 견습공은 그래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확실하게 땡겨주기나 했지만, 오늘날은 말이 좋아 견습생이지, 날로 회쳐 먹으려는 수작이다. 치과 실습생의 실상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마지막 대학과 병원의 짜고치는 고스톱, 치가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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