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두만강

- 황진미

<두만강>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화면에 담아온 조선족 감독 장률의 6번째 영화이다. 영화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인접한 조선족 마을을 배경으로 소년의 눈에 비친 탈북의 문제를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얼어붙은 두만강에 한 소년(창호)이 시체놀이를 한다. 이는 탈북자들의 주검이 발견되는 흉흉한 공기에 반응하는 소년의 몸짓이다. 창호는 마을 폐건물에서 마주친 탈북소년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함께 공을 차다 정진과 친해진다. 정진은 창호 네에서 밥을 먹고, 먹을 것을 가지다 다시 두만강을 넘어 아픈 동생을 돌본다. 어느 날 밤 창호 집에 탈북자가 찾아와 애원하자 누나는 온정을 베푼다. 그러나 탈북자는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TV방송을 보다 격앙되어 말 못하는 누나를 성폭행한다. 마을에는 탈북자들로 인한 피해들이 늘어간다. 탈북자들을 동정하던 인심도 변하여, “굶다보면 애비 애미도 팔아먹는다”며 경계하고, 촌장은 장려금을 준다며 신고를 권장한다. 창호역시 누나가 탈북자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고는 정진과 탈북소년들을 때린다. 누나의 배려로 둘의 우정은 회복되지만, 창호의 다른 친구는 탈북행위를 도운 혐의로 체포된 아버지를 석방시키기 위해 정진을 밀고한다. 창호는 정진의 체포를 막기 위해 지붕에서 뛰어내리고, 그 순간 중절수술을 받던 누나는 말문이 트여 “창호야”를 외친다.

1. 친북과 반북의 소모적 논쟁을 벗어나 탈북자 문제를 바라보기

80년대 초부터 식량배급이 줄어들던 북한은 87년 미국의 경제제제와 동구권 붕괴로 심각한 식량난을 맞는다. 90년대 중반의 홍수피해는 기아사태로 이어져, 탈북러시가 벌어진다. 2000년대 들어서선 남한으로의 유입도 가파르게 상승하여, 현재 한해 3천명이 입국한다. 이를 배경으로 <국경의 남쪽>, <크로싱>, <경계>, <댄스타운>, <처음만난 사람들>, <무산일기>, <배낭을 맨 소년>, <의형제>, <태풍> 등의 탈북자를 다룬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 영화들 대게 남한사회의 탈북자들을 그린다. (예외적으로 <경계>는 몽골의 탈북자를, <태풍>은 동남아의 탈북자를 그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남한사회의 탈북자 수가 2만 명인데 비해, 재외 탈북민수는 5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대다수는 중국 길림성에 집중되어 있다. <두만강>은 가장 흔한 탈북자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으며, 남한사회의 (친북과 반북 사이, 탈북자 문제를 남북한 정부관계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논점을 벗어나 국제적 안목에서 사유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두만강>에서 ‘두만강’은 국경이자, 국경이 아니다. 노인들은 과거에 두만강을 건너 온 사람들이다. 할아버지는 두만강 가에 묻어 달라 말씀하시고, 치매 할머니는 자꾸만 도강한다. 이들의 정서는 “두만강 푸른 물에~”하는 “쓸쓸한” 노래가 대변한다. 마을 사람들은 탈북자들을 인류애와 동포애로 대한다. 굶은 친구에게 쌀을 퍼주었다고 말해도 나무라지 않고, 염소를 훔쳤다며 탈북소년들을 때리는 아이들에게 “염소가 뭐라고 사람을 때리누?”하고 나무란다. 이는 아직 덜 자본주의화 된, 덜 각박한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두만강은 “장백산 줄기줄기~ 압록강 굽이굽이~”하는 “힘 있는” 노래로 대변되듯, 김일성이 넘었다는 ‘민족의 강’이기도 하다. 탈북남성이 북한 TV방송에 폭력적으로 돌변하여 누나를 성폭행하는 것은 국가체제의 피해남성이 억눌린 공격성을 성적으로 풀려는 욕망의 발현이다. 이것은 두만강 양안에 공히 존재하는 가부장적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정진은 “계집애가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하고, 촌장은 좁은 마을에서 버젓이 시앗을 둔다. 성폭행 사건에 대한 남매의 반응은 흥미롭다. 소년(남성)은 가해자와 정진을 탈북자라는 한 묶음으로 이해하여, 정진과 다른 탈북자를 때린다. 그러나 직접적 피해자인 누나(여성)는 개별로 사고하며 정진을 여전히 따뜻이 대한다. 남성적 인식은 이쪽과 저쪽을 경계 짓고, 폭력으로 관철하는 국가체계를 이룬다. 중국정부는 1982년에 가입한 유엔난민지위협약에도 불구하고 2001년부터 탈북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신고 포상제를 실시하여 한해 약 5천 명의 탈북자를 북한으로 강제송환 한다. 중국은 이들이 정치적 난민이 아닌 경제적 이주민으로 보호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송환될 경우 과도한 박해가 가해질 게 명백한 상태에서 사실상의 난민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여론이다.

2.밥을 찾아 강을 건너고, 일을 찾아 바다를 건너고

영화 속 마을에는 남한으로 일하러 간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창호어머니도 한국에 있고, 친구의 삼촌부부는 한국에서 일하다 창고에 불이나 죽었다.(이천냉동창고화재사건?) 우체국 여직원도 한국에 갔다 왔으며, 두부방 아주머니도 한국행을 준비 중이다. 한국행 이주노동은 <황해>, <푸른 강은 흘러라>, <파이란>, <댄서의 순정> 등에도 나와 있듯이 조선족 사회의 보편적 광경이다. 2007년 ‘방문 취업제’ 도입이후, 한국 내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수는 전체 이주노동자의 절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 <두만강>은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이 너무 힘들고, 죽을 수도 있으며, 약값도 비싸고, 비자를 사려면 빚을 내어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도 잘 보여준다. 가게 앞에서 낮술을 마시는 남자들이나 명태 말리기를 요긴한 수입원으로 반기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일자리가 없다. 북한 주민은 밥을 찾아 ‘두만강’을 넘고, 조선족은 일을 찾아 ‘황해’를 넘는 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일상적 풍경이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건조한 리얼리즘을 고수하던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작은 판타지 하나를 선사한다. 영화는 치매에 걸려 강의 저쪽으로 자꾸만 건너가던 동네할머니의 기억을 따라 누나가 연필로 그린 다리위로, 할머니가 천천히 건너는 모습을 길게 비추며 끝난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이어진 가느다란 연필 선 같은 다리를 따라, 할머니 지나가신다. 꿈길을 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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