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진의 사진공감

기억 그리고 치유

- 임종진

태풍 <루사>가 강원도를 비롯한 우리네 땅 곳곳을 덮쳤던 때.

지난 2002년 초가을.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정리.

심귀자 할머니는 송두리째 사라져 폐허가 된 집 앞에서 하염없이 어딘가를 바라봅니다.

눈 둘 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눈 둘 곳이 없기에.

쪼그라든 가슴을 부여잡고 마냥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합니다.

복구작업에 나선 동네 아저씨들은 계곡물에 휩쓸려온 나뭇가지를 모아 군불을 지폈습니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불꽃의 여운 속에서.

할머니는 가슴에 스며든 이른 추위를 가만히 달래줍니다.

10여년이 다 된 오래전 9월의 어느 하루.

바다건너 이웃나라의 지금 하루들과 다를 일이 없습니다.

상처는 시간이 달래줄 수도 있겠지만

기억은 소리없이 가슴 한켠에 머물러 떠날 줄을 모릅니다.

이제 치유의 물결이 밀려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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