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좌담> 노들야학은 무엇을 꿈꿀 수 있는가?

- 박정수(수유너머R)

3월 17일 노들야학 거울방에서 노들야학의 교장, 교사, 상근 활동가들과 만나 노들야학이 꿈꾸는 세상과 대안교육의 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참석자는 장애인 언론의 미래 <비마이너> 편집 부국장이자 <노들바람> 편집장인 유미, 노들야학 사무국장이자 교사모임 대표이며 결혼식 사회의 달인인 심정구, 노들장애인 자립생활센터 4년 경력의 훈남 현수, 설명이 필요 없는 장판계의 두목, 정부에게는 독사지만 노들에서는 지렁이인 박경석 교장샘, <야학21> <야학운동사: 자유를 향한 여정>의 저자이며 야학교사 경력 17년의 오래된 노들신입교사 천성호, 그리고 6년 동안 노들야학 교사로서, 3년 동안 사무국장으로 활약하다 작년 한 해 휴직하고 컴백한 홍은전이다.

노들야학은 다르다

경석: 장애인 야학이 모두 노들 같지는 않습니다. 시설이나 복지관, 야간학교 등 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관은 많지만 노들야학처럼 싸우면서 배우는 야학(野學)은 없습니다. 노들은 장애인활동가들이 장애인운동주체를 길러내기 위해 만든 야학입니다. 사회에서 비가시화된 장애인을 시설과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야학을 만들었습니다. 93년 구의동 정립회관 내 교육관 3층 교실 두 개로 처음 시작할 때 정립전자공장의 장애인 중 90%가 초등학교도 못 나왔습니다. 그만큼 교육에 대한 갈망이 큽니다. 2007년 12월 31일 정립회관에서 쫓겨났습니다. 정립회관 민주화투쟁에 참여했다는 이유였죠, 우리는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을 치고 장애성인의 배움터 확보를 위한 농성을 했고 농성 중에도 야학을 이어갔죠. 80일 동안의 투쟁한 결과 지금의 대학로 유리건물에 둥지를 틀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1년 예산이 몇십 만원밖에 안 됐어요. 한글과 숫자도 가르치고 검정고시 공부도 했지만 수업보다는 술 먹는 데 더 열심이었죠. 장애인의 의식화가 목적인지라 집회 데리고 가려고 무지 애썼죠. 주로 술로 꼬셨는데, 열 번 술 사 주면 한 번 나갈까 말까 했죠. 그렇게 술 마시고 싸우면서 정이 쌓였고 그 끈끈한 인연으로 노들은 여물어갔죠. 노들야학의 투쟁력은 대단하지만 그건 숫자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평균 열 댓 명 정도가 투쟁에 참여하지만, 절실함과 깡으로 지하철도 막고 한강대교도 막고 버스도 막았습니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때마다 우리 장애인들은 한 평생 이렇게 꽉 막힌 삶을 살았다고, 이게 이 사회의 진실이라고 대꾸했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제도적 개선도 많이 이뤄냈습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장애인콜택시, 활동보조, 자립주택,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 예산 등 야학 처음 할 때와 비교하면 실로 혁명적인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싸움만 한 건 아닙니다. 싸움의 동력은 교육이니까. 처음엔 교사들이 자주 교체됐습니다. 자원봉사 하는 마음으로 왔다가 떠나곤 했죠. 투쟁을 하면서 텃새 교사들이 많아졌습니다. 장애성인교육의 의미를 투쟁 속에서 깨닫기 때문이죠. 투쟁이 없는 야학은 오래 못갈 뿐더러 별 의미도 없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싸운 결과 장애성인 교육 프로그램도 늘고 야간학교에 대한 지원도 늘었습니다. 경기도만 해도 10개 야학에 연간 1억 8천만원이 지원됩니다. 이런 제도적 지원도 우리가 싸워 따낸 것이지만, 지속적인 싸움 없이 제도적 지원에 안주하면 변질되고 맙니다. 1+1=2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뭘 위해서 싸우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꿔갈지 아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夜學’에서 ‘野學’으로 바꿨습니다. 자본과 권력이 판치는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 다른 가치를 꿈꾸는 ‘들판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나는 저들과 무엇을 꿈꾸었을까?

은전: 다른 세상을 꿈꾸는 야학, 공감합니다. 2001년부터 횟수로 10년 노들에서 활동하다가 작년 한 해 휴직했습니다. 왜 휴직했냐고요? 지친 몸에 회의가 밀려왔습니다. 장애인과 함께 만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있었고 그 꿈에 대한 확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확신이 조금씩 약해지는 절 발견했습니다. 제도적 개선은 많이 이뤄졌는데, 매번 새로운 장애물이 생기고, 그걸 넘으면 또 새로운 벽에 부딪히고. 무엇보다 야학에서 장애인 학생들의 눈을 피하는 저 자신이 싫었습니다.

정수: 왜 눈을 피하는데요?

은전: 활동보조 시킬까 봐.

정수: 아~

유미: 노들에 있는 교사나 센터 활동가들 대부분이 그런데. 처음엔 즐겁게 활동보조 하지만 오래되면 활동보조 시킬까봐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안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바쁘고 힘들 때.

정수: 그럴 때 죄책감이 드나요?

은전: 죄책감이라기보다는 그냥 제가 기능적인 존재가 되는 것 같아서 힘들었어요. 내가 저 사람들과 무엇을 하려고 한 걸까? 하는 의문에 시달렸죠.

정수: 주로 어떤 마음으로 야학 교사를 하게 되나요? 봉사심? 정구 샘은 어떻게 야학교사가 되셨어요?

정구: 봉사심 때문인 사람도 있고 다른 이유도 있고, 다양하죠. 저는 대학 다닐 때부터 야학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선배 소개로 와 보니 장애성인 야학이더군요. 인연이다 싶었죠. 6년째 노들야학 교사로 있습니다. 지금은 ‘나이’의 굴레로 여기 있는지 몰라요. 이 나이 먹어서 어디를 가겠어요? 예나 지금이나 가능성과 한계가 공존하는 공간에 대한 도전의식이 저를 이곳에 있게 한 것 같아요. 중증장애인의 교육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하고 싶은. 교육을 통해 장애인의 삶과 세상이 얼마만큼 바뀔까? 세상을 바꾸는 데 장애인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까 실험하고 싶다고 할까.

장애인교육의 장애들

정수: 은전 선생님, 장애성인에게 문해 교육이나 검정고시 교육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구조적인 차별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장애성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 그 이상이 있다면?

은전: 처음에 청솔반에서 한글을 가르쳤어요. 정작 수업하는 것보다 수업 외적인 게 더 힘들었어요. 중증장애인이라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는 게 장난 아니예요. 물리적인 이동보다 더 힘든 건 정신적인 이동이예요. 오래 동안 사회로부터 격리된 생활을 해 오신 분들이라 야학으로 나오는 데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요. 결심을 하더라도 가족들의 반대를 넘어야 하죠. 한 언니는 가족들한테 맞고 와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분들은 언니가 집에서 책 펴는 것 자체를 싫어했어요.

정수: 장애인 가족들은 왜 야학 가는 걸 반대하나요?

은전: 외출하려면 씻겨야 하고, 늦게 오면 문 열어줘야 하고, 귀찮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어떤 부모님은 야학 나가면 시설 보내버리겠다고 하기도 했어요. 당신네들도 장애인가족과의 삶이 버거운 거죠. 악전고투 끝에 야학에 오면 또 자신의 장애와 싸워야 해요. 비장애인을 위한 교과 내용을 장애인에게 가르치다보니 매 번 장애에 부딪치죠. 좀 전에 말한 언니한테 한글 자모를 가르치는데 집에 가서 들으라고 카세트 테이프에 ‘가, 나, 다…하’ 발음을 녹음해서 드렸어요. 하지만 언니는 혼자서 카세트를 누르지 못했죠. ‘가’에서 ‘하’까지 가르치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 못했어요. 그래도 지체장애인은 진전이 보여요. 하지만 지적, 정신장애인은 아는 것 같은데 딴 소리 하고, 일부러 아는 척 하기도 하고, 의사소통 자체가 힘들어요.

유미: 제가 가르친 한 언니는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모르셔요. 그 언니네 집이 이사를 갔을 때 전철 타고 야학은 와야 하는데 새로운 전철역 이름을 인식시키는 데 애먹었어요. 아예 글자를 통으로 외우게 했죠. 이게 ‘혜’ 자고, 이게 ‘화’ 자다. 이런 식으로. 전철역 이름보고 야학 찾아오는 데 한 달 걸렸어요.

장애인야학에서 뭘 배울까

정수: 말씀 들으니까 중증장애인의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군요. 몸으로 하는 공부, 삶을 바꾸는 공부란 게 꼭 그런 경우군요. 말씀 듣기 전에는 정규교과 위주의 수업내용과는 다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뭐든지 배운다는 것,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지닌 수행적 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구: 그렇기도 하지만,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비장애인을 위한 교과내용과 수업방식을 그대로 가져가면 재활교육의 한계에 갇히기 쉽습니다. 언어장애가 있는 장애인에게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가르치는 것, 물론 의미는 있지만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놓고 비장애인을 위한 소통능력만 향상시키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의 삶을 위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발명해야 합니다. 저는 노들야학 교사들과 정기적으로 교육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6개월 정도 됐는데 2주에 한 번 모여서 수업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 텍스트 사용의 문제점, 관계형성의 문제점을 전방위로 토론하고 함께 해결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장애인교육의 역사를 이해하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책읽기 모임도 하고 있습니다.

경석: 재활과 자립 담론은 문제가 많습니다. 예전에 한 유명한 장애활동가는 동료 장애인들에게 매일 휠체어 타고 산에 오르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처럼 자립적인 체력과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런데 일전에 만났을 때는 팍삭 늙고 기운이 하나도 없더군요. 요즘도 산에 오르냐고 했더니, 힘들어서 못한다고 하더군요. 젊어서 기운을 너무 많이 쓴 거예요. 장애인이 배워할 것은 ‘혼자’ 사는 능력이 아니라 ‘함께’ 사는 능력입니다.

은전: 전동 휠체어가 처음 보급될 때 어떤 학생은 거부했어요. 얼마 안 남은 근력마저 퇴화될까 두렵다면서.

정수: 사람 잡는 정상성이군요. 머리 굳어질까봐 컴퓨터 안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네요.

성호: 자립, 재활논리를 넘어서는 장애인교육 좋죠. 문제는 어떻게 야학 구성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장애해방담론을 생산하는 야학을 지향하지만 그렇지 않은 교사들도 많아요. 야학 교사를 정규교과를 보충해주는 자원봉사자 정도로 여기는 교사들도 많거든요. 학생들 중에도 검정고시 봐서 대학 가고 잘 먹고 잘 사는 꿈을 가진 사람들 꽤 있죠.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장애해방교육으로 이끌 것인가 하는 거죠.

은전: 노들야학에도 수업에 관한 실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정규교과 외에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를 읽는 등 자기 수업 안에서 풀어가려고 한 노력도 많았고, 연구수업을 통한 공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실험들이 축적되지 못한 점이 아쉬워요. 교사나 상근자들의 노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의식이 부족한 탓도 있습니다. 민구 샘처럼 야학교사의 삶을 자신의 미래로 개척하는 교사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야학이 검정고시 준비만 하는 곳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 전체에 관한 공부를 하는 곳이라 여기는 학생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노들야학은 인문학의 현장이 될 수 있을까

정수: 검정고시에 대한 욕구가 정말 큰가요?

유미: 마흔 살이 넘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분도 계세요. 못 배운 한을 풀겠다는 보상심리가 강하세요. 특수학교를 졸업하고도 검정고시 준비하는 분도 있고, 대학 가서 멋진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많아요. 하지만 검정고시 수업 내용이 장애인의 삶과 유리된 내용이 많아요. 여느 중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교과목 수업은 재미없고 힘들기도 하고요. 국어수업을 할 때 교과서에 나오는 <강아지똥>이란 동화를 함께 읽은 적이 있는데, 글쎄요, 저는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찾아간 글이었는데 학생분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하찮은 거라도 쓸모가 있다’거나 ‘아름다운 희생’을 말하는 것도 좀 그렇고, ‘어린이’한테 하는 동화 말투가 시설이나 사회에서 ‘애’ 취급 당하는 장애성인들에게는 듣기 거북하죠. 나이 서른이 넘어서 애 취급 당하는 기분, 그거 영 아니거든요. 글자를 익히는 훈련은 할 수 있는데, 이게 장애인의 삶에 다가가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정규교과 외에 제가 좋아하는 책도 넣고, 장애인의 삶에 다가가는 텍스트 고민을 많이 해요. 수업하면서 제가 느낀 장애인의 삶은 세상에 대한 원한과 자기부정으로 응어리져 있어요. 활동보조 없는 일요일엔 24시간 기저귀만 차고 있어야 하는 자신에 대한 저주,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쪽에 또아리를 틀고 있죠. 그런 사람들한테 1+1=2나 <강아지똥>을 가르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세계부정과 자기긍정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니체의 철학을 야학정규수업에 넣자고 강력 제안했죠. 3년 동안 수유너머와 인문학 강좌도 하고 집중세미나도 했는데 정작 장애인 학생의 인문학 공부는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고병권 샘을 불수레반 국어교사로 초빙했죠. 반대도 많았어요. 그냥 특별 활동으로 하는 게 어떠냐는 사람도 있었고. 제가 고집을 부려서 결국 하게 됐죠.

정수: 뭐가 다르던가요?

유미: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요. 사실 전에는 그냥 때우다 가는 수업이라는 느낌이 많았는데 굉장히 집중하시더라고요. 처음엔 거부감도 많이 드러냈어요. 인문학 싫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고, 하지만 한 학기 끝나고 나서는 대부분 좋다고 하셔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특히 ‘호식’형의 변화가 놀라워요. 한글 공부를 오래 하셨는데, 한글을 아직도 다 못 뗐어요. 그래서 공부에 진도가 안 나가고, 자괴감 같은 게 컸어요. 그런데 요즘에 본인이 나서서 읽을거리를 찾으세요. 눈으로 못 읽으니까 귀로 들으려고 파일을 구하러 다니죠. 철학 수업 텍스트 파일을 달라거나 수업 내용을 녹음해 달라거나 할 때가 많아요. 재작년인가 이진경 샘이 맑스 강의할 때 모든 질문을 혼자 맞춰서 ‘맑스 호식’이라고 불렸는데 요즘엔 ‘니체 호식’, ‘루신 호식’, ‘스피노자 호식’이 되고 있죠. 고병권 샘, 이수영 샘에 이어 손기태 샘이 스피노자를 가르치는데 재미있어 하세요. 루신 집중세미나 때 루신의 글을 스피노자식으로 멋지게 해석하기도 했죠. “세계 바깥에 신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 읽으면 정말 화낼 글이네” 라고.

성호: 예전부터 인문학 수업은 있었어요. 위대한 지적 전통을 가르치려고 노력해 왔죠. 좀더 장애인들의 삶에 와 닿는 인문학 수업이면 좋겠어요. 장애인과 일상적인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이고 일회적으로 이뤄지는 인문학 강좌는 별 도움이 안 돼요.

정수: 공감합니다. 지난 주에 수유너머N이 주최한 ‘불온한 인문학’ 심포지움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인문학은 불온해야 한다, 불온하려면 현장과 결합해야 한다. 인문학을 가지고 현장에 출장하는 게 아니라, 인문학의 현장을 발견해야 한다’는. 노들야학을 인문학의 현장으로 만들기 위해 수유+너머와 노들과의 접촉면을 더욱 깊게 넓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장: 목표를 정하고 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찾아야 합니다. 장애인야학의 방향은 자본주의와는 다른 삶의 가치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교육 내용을 바꾸자는 게 아닙니다. 문해교육이나 검정고시 준비 안하면 당장 교육청에서 감사 나오겠죠. 그게 무서운 게 아니라, 현재의 조건에서 실천방향을 뚜렷이 하자는 겁니다.

비장애인도 함께 꿈꾸는 다른 세상

정수: 교육 얘기는 그만 하고 운동 얘기로 넘어가죠. 노들야학은 정말 잘 싸웁니다. 장애인 이동권, 탈시설, 주거권, 활동보조, 장애등급심사 등 장애인학생의 생활에 직결되는 모든 문제를 의제화 하고 귀신처럼 달라붙어 권리를 따냅니다. 나아가 권리쟁취 이후의 싸움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령,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는 따 냈지만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관계가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로 변질되지 않게 하는 싸움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실제로 갈등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현수: 활동보조인 권리 찾기 모임도 있고, 노들식구들 중에도 활동보조인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단 활동보조 임금이 너무 적고(시급 6천원) 4대보험 가입률이 낮은 점 등 기본적인 처우가 열악한 것이 문제입니다. 심각한 불안정 노동을 하고 있는 거지요. 활동보조인의 노동권도 문제지만, 장애인과의 일상적인 관계 맺음도 변해야 할 게 많죠. 장애인의 서비스 선택권이 자칫 사용자의 해고 권리로 변질될 수도 있고. 하지만 문제만 있는 건 아닙니다. 활동보조 경험이 장애인의 눈으로 우리 사회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적지 않은 활동보조인이 장애운동의 활동가로 변모합니다.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과의 공동생활로 사회화의 경험을 많이 합니다. 모든 인간은 서로 결합된 신체로 서로가 서로의 활동보조인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결합된 신체가 새로운 삶의 모체가 되어야 합니다.

경석: 처음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를 요구했을 때 정부 관료가 그러더군요. “당신네들이 요구하는 것은 개인 비서다. 장애인에게 개인 비서를 얻어 줄 만큼 돈이 넘치지 않는다.” 라고. 결국 ‘비서’ 제도를 따냈죠. 활동보조 서비스는 실로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혁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 제도적 조건 안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고 변화되는 혁명이 계속될 겁니다. 가령, 활동보조인은 동성 파견이 원칙인데, 성적 지향이 동성인 경우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정수: 활동보조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경석: 지금도 정부 주도하에 시행되고 있습니다. 형식적이고 보수적이지만.

은전: 지정된 교육단체가 보수적인 곳이 많아요. 장애를 자활과 시혜의 관점으로 보는 교육 내용을 접할 때 황당하죠.

정수: 너무 많은 시간을 뺏은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현수: 장애인을 위한 교육도 중요한 문제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피교육자의 입장에서 벗어나는 경험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아요. 몇년 전부터 노들 학생이 비장애인 학교에 가서 장애인권 교육을 하는데, 비장애인 학생들의 의식 변화에도 도움이 되지만 장애인학생들이 직접 가르치는 입장이 됨으로써 장애문제에 대한 고민과 직접적인 행동을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합니다.

정수: 지난 세미나 때 읽은 루신의 글이 생각나네요. ‘스승도 배워야 스승이 된다.’ 학생이 스승이 되고, 스승이 학생으로서 배우는 노들, 풍성하게 여물리라 믿습니다.

응답 1개

  1. Halla Kim말하길

    Beautiful people, working towards making our community a good and beautiful place to live in. Thanks a 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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