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나는 왜 너를 보고 있는가

- 홍진

첫 번째 뉴스

3월 14일 오후 후난성 湖南省 치둥현 祁东县 의 한 지방정부 회의에서 졸고 있던 공무원 세 명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공무원의 자질을 비난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리자 다음날인 15일 저녁 치둥현 위원회는 3명에 대한 조사 후 바로 ‘면직’을 결정. 16일 당사자들에게 통보하였다.

내가 하고, 너는 본다. 라는 회의 구조에서 정식 발언권도 없이 뒷줄에 앉아 버티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영화 맨인블랙이었다면 또랑또랑하게 앉아 가끔 필기를 끄적이는 수상한 말단 공무원들을 외계인으로 체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발언권이 있는 화자, 중앙 회의 테이블의 간부 정도 되면 심하게 졸리지도 않거니와 적어도 사진 한 장으로 짤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오늘도 곤히 자고 있을 한국의 몇몇 국회의원들처럼.

내가 찍은 너의 사진은 인터넷에 올라가는 순간 꽃이 되었다. 직접적인 정치 참여의 방법 없이 공무원들에게 그저 휘둘리기만 하던 중국 인민들에게 있어 조는 공무원들은 분노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에는 어떤 종류의 권력이 묻어있을까? 세 명의 밥줄을 곱게 끊었으니 공격은 성공한 것일까? 이 애매한 기분을 수동적인 권력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표현해 본다. 인민들은 말단 공무원이 졸아서 화가 났을까, 아니면 이제는 결코 손에 닿을 수 없는 추상적인 무언가가 되어버린 정치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인 걸까.

두 번째 뉴스

우한 武汉 시정부는 3월 7일부터 11일까지 시내에서 신호 위반, 쓰레기투기, 무단횡단, 주차 위반한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른바 교양 없는 시민 不文明市民 명단에는 이름, 나이, 차번호, 몇 시에,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지가 현장 사진과 함께 공개되었다. 시정부는 시내 치안 유지와 시민들의 교양의식 함양을 위해 매주 1회 이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아마도 자신이 신문에 날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을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다. ‘힘없는 (경)범죄자들의 사진’ 시리즈는 어쩌면 우리가 단죄하기 힘든, 진짜 나쁜 사람들을 조롱하는 감 좋은 예술 행위가 아닐까? 라고 잠시 의심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우한시의 발표는 진심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이 사진들이 좋아서 10초 더 바라본다. 사진에 들어가 있는 인민들이, 화염병 던지는 모습이 조간 신문에 적나라하게 찍혀 나온 대학생 선배들처럼, 약간은 쑥쓰러운 마음으로 멋쩍게 웃고 즐겼으면 좋겠다. ‘멀쩡한 길을 다 막아 놓으니까 넘어가지!’ 우리의 발걸음을 일일이 지정하려는 어처구니 없는 근대의 공격 앞에서 우리 소박한 범죄자들의 대륙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아무튼, 교양 없는 시민 명단은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너무 적나라하게 발생하는 인권침해 덕에 이에 대한 경각심과 자성의 목소리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세 번째 뉴스

난닝 南宁 시의 한 성형외과는 3월 18일 집도했던 여성의 가슴확대수술을 생중계했다. 약 30분의 이 동영상에는 여성의 얼굴과 신상명세가 공개되고 마취, 자르기, 보형물 삽입 등 수술의 전 과정이 손톱만한 부분 모자이크, 그리고 의사와 아나운서의 친근한? 해설과 함께 전시된다. 비난이 쏟아지자, 병원 측은 ‘성형수술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을 없애고 시민들에게 올바른 성형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신체 변형은 자신의 자유. 신상 공개도 개인의 선택. 소신 있는 작품 활동도 사전 주의를 포함하는 한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여러 구구한 입장들에 모두 앞서 이 기획은 섬뜩하리만치 노골적이다. 이 무서운 고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멀쩡한 사람들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소비자로 만드는 동종업계 의사나, 아픈 곳은 없는 자본주의형 예비 환자들 뿐이 아닐까.

망치 형님을 가두는 나의 범죄적 시선

중국의 만리장성 방화벽(Great Firewall)은 트위터와 유튜브, 페이스북을 포함한 모든 외국의 유해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고, 자국 내 검색엔진에도 천안문 사태 같은 역사적인 단어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시각각의 국제 뉴스에 대해 수많은 금칙어를 설정해 놓고 있다. 그렇게 엄중한 통제 하에서도 이처럼 많은 영상과 사진들이 올라오고 전시되며 나름대로 시끌벅적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다. 그러나, 권력의 통제 안에서 전시되는 기이한 즐거움들은 뭔가 답답하다.

무차별적인 ‘전시’가 포함하는 개개인에 대한 폭력이 우선 문제겠지만, 이왕 폭력을 행사한다면 화끈하게 테러리즘으로 달려가도 좋으련만, 우리의 시선들은 결국 수줍은, 혹은 비겁한 관음의 수준에서 멈추고 만다. 내가 넘어야 할 선. 혹은 인터넷의 한계와 탈주?

한 달 전 중국에서 유행했던 한 동영상이 있다. 한 초라한 행색의 남자가 어수룩하게 은행 한복판에 들어간 후(에야) 주섬주섬 복면을 꺼내 쓰고는 품에서 (총이 아닌) 망치를 꺼내 창구의 유리를 하염없이 내려치는 동영상이다.

http://www.tudou.com/programs/view/2ZfhtaW06NQ/

‘망치형아’ 라고 불리는 이 동영상을 보며 혹자는 그의 얼빠진 행동을 비웃고, 나는 그 조용하게 이어지는 하염없는 절박함에 타르코프스키의 롱테이크를 떠올리며 싸구려 감동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차이는 없다. 우리 스스로가 CCTV가 되어 누군가의 삶을 훔쳐 본 것 뿐이다. 영상 말미의 위기 상황에서 퍼뜩, 나의 시선이 그에게 힘든 연기를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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