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무한독전

무한독전 두번째이야기, 놀이 – <백수산행기>

- 화통

<백수산행기>, 김서정 지음, 부키 펴냄

‘제목이 이게 뭐람’ <백수산행기>라는 표제에 피식 웃음이 났다. 게다가 뚱뚱하고 짧은 남자 캐릭터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진 표지를 보니 절로 손길이 갔다. 그 ‘찌질함’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당시 나 또한 산을 다니는 백수였다.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 한 번씩 평일 아침에 서울 시내 산을 다녔다. 남들은 정장입고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비좁은 버스를 탈 때, 혼자서 등산복을 입고 서울 외곽으로 가는 텅 빈 버스에 앉았다. 기분이 꽤 묘했다. 어색하기도 하면서 괜한 쾌감이 느껴졌달까.

그래서 궁금했다. 선배 백수의 등산 노하우가. 내 등산과 그의 등산이 어떻게 다를지 알고 싶었다. 책 속의 그는 자칭 ‘지배계급(집에계급)’. 아내와 자녀가 있는 40대 실직가장이자 20대에 비해 27 킬로그램이나 쪘다.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던 그는 어느 날 산에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집에서 뒹굴다가 든 결심이었다.

불혹의 나이에 나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몸뿐 아니라 마음도 헤매고 있었다. 어떤 이는 30대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40대에 대통령이 되기도 하는데, 나는 내가 일해 온 분야에서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한 채 물러나야 했다. 아니 회사에 손해만 잔뜩 끼친 채 물러나야 했기에 그 패배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내 분야에서 재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무렵 문득 북한산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운명처럼, 도둑처럼, 연인처럼, 분신처럼, 또 다른 삶처럼 내 안에 북한산이 쓱 비집고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보통 머릿속에 고민이 가득 들어차면 술집을 기웃거리거나 버스 여행을 하곤 했는데, 그때는 정말 귀신에 홀린 듯이 북한산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첫 등산은 이러했다. 등산 배낭 대신 까만 봉지를 손에 쥐었다. 물과 김밥, 오이가 담긴 봉지였다. 40분 걸린다는 도착지점을 2시간 만에 도착했다. 땀범벅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니 살 2킬로그램이 빠져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감격시켰던 건, 오랜만에 맛본 성취감이었다. ‘내가 뭔가를 해냈다!’

하지만 책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당시 그의 등산기보다 내 진짜 등산이 더 재미있었다. 네발로 산을 기어 홀로 산을 올라간 그에 비해 나는 ‘힘들면 내려오니즘’ 등산을 했다. 함께 산을 가는 친구들과 정상 정복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공유했고 쉬엄쉬엄 산을 올라갔다. 등산 하다 만난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평일에 산에 오는 게 기특하다’라며 음식 나눠주었다. 젊다는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인 ‘놀이’로써 산을 오르던 참이라 그의 이야기가 덜 공감되었다.

그러다보니 책은 끝까지 보지 못했고, 백수 등산 6개월만에 취업을 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에 바쁘다보니 행복했던 평일 등산의 기억까지 잊어버렸다. 직장인인양 살아가던 때, 다시 이 책이 생각났다. 술과 업무로 ‘저질체력’으로 오랜만에 산을 올라 헐떡일 때도 이 책을 떠올리면 괜스레 위로가 되었다.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오른 어느 날, 퇴근해서 <백수산행기>를 뒤적였다. 대리만족이 되었다. 바라만 보던 진흥왕 비봉 정상에 가볍게 손을 댔다는 백수 아저씨의 북한산 ‘극복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꾸준한 북한산 등산으로 살도 20킬로그램 가까이 빠졌고 담배도 끊었다. 몸의 변화는 모든 것을 불러왔다. 자기 안에 갇혀있던 한 사람이 산을 오르며 자기와 다시 만나고 이웃과도 교류하며 관계를 확장시켜나간다. 타자와의 접속은 자기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나가는 힘을 만들어낸다. 백수라는 자괴감에 벗어나 삶의 열정을 찾으니 일자리도 들어왔다. 어느새 그는 아래와 같은 경지까지 오른다.

내가 “어디가 길인가요?”라고 물을 때마다 그들은 늘 “가면 길이죠.”라고 대답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니 북한산 길을 훤히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산에 처음부터 길이 있던 것이 아니고, 사람이 오르려다 보니 길이 생겼고, 가기 힘든 길도 장비를 쓰든 쓰지 않든 누군가가 가고 나니 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산 전체가 하나의 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길이라는 것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두려움에 떨면서도 익혔다. 그런데 그 길을 익혔더니 또 다른 길이 떡 하니 펼쳐졌고, 다시 다른 길을 또 익히고 보니 길은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든 길은 늘 있었고, 그 길을 찾기 위해 무슨 운명처럼 또 부지런히 산에 몸을 맡겨야했다. 이렇게 길을 가야만 전에 내가 갔던 길에 대한 구구한 변명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정리의 시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책장을 덮으니, 소소하고 사소한 백수시절 등산을 다시 할 이유와 용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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