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노란들판에 오면

- 박정수(수유너머R)

지난 3월 19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막힌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시설에서 탈출하여 노들야학 총학생회장이 된 상연씨와 노들학생 정란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결혼식 기획은 식장 세팅부터 신혼여행 활동보조까지 노들식구들이 맡아 했습니다. 양가 부모님 자리에는 다른 노들학생의 부모님과 ‘장판’(장애인운동판)의 ‘어른’들이 앉아 있고, 주례사 대신 친한 분들의 덕담과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박김영희 샘의 덕담이 기억에 남습니다. “상연군은 세상에서 가장 빨리 휠체어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고 정란양은 가장 느리게 가는 사람이었답니다. 근데 언젠가부터 상연군은 휠체어를 느리고 몰고 있었고 정란양은 상연군의 뒤를 따라가느라 얼굴이 벌개지며 열심히 그렇게 서로 맞추며 걸어가고 있더랍니다. 그게 저들의 사랑법입니다.”

봄 햇살만큼이나 따뜻한 ‘시와’의 노래가 퍼지자 공원에 나들이 온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그들은 엄청난 파격을 목격하게 됩니다. 투쟁의 결기를 몸짓으로 표현하는 몸짓패 ‘선언’이 축하 공연을 했습니다. 집회장에서의 결기 서린 몸짓 그대로. 근데, 놀랍게도,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결혼식은 일종의 결의대회다”라는 멘트로 하객들의 공감에 화룡정점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박준’씨가 ‘장애해방가’를 부르자 식장은 팔뚝질이 난무하는 집회장으로 변했습니다. “결혼은 투쟁이다”는 멘트 역시 박장대소와 함께 결혼의 본질을 꿰뚫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결혼식이다’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구경하고 섰던 행인들을 불러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장판 식구들이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고, 노들 상근자 커플의 활동보조를 받으며 신혼여행을 떠나기까지 상연과 정란의 결혼식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결혼문화가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상연과 정란은 여느 사람들처럼 결혼식을 해서 기뻐했고 우리는 여느 결혼식과 너무 달라 기뻐했습니다. 작년부터 노들야학 학생, 교사, 활동가들과 푸코, 루신 세미나를 해 왔지만 상연, 정란의 결혼식을 보고서야 노들야학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夜學이 아니라 野學, 학교가 아니라 공동체임을.

노들장애인야학은 노란 들판의 꿈을 갖고 93년 8월 8일에 태어났습니다. 처음은 5, 6명의 교사와 5명도 되지 않는 학생, 교실 두 개가 전부였습니다. 장애인의 인구 중 49.5%가 초등학교 이하의 교육을 받았다는 차별의 무게를 덜고자 시작한 노들 장애인야간학교가 지금은 학생 40여명, 교사 20여명, 월, 화, 금요일 밤마다 검정고시 수업을 진행하고, 수요일 밤에는 인문학 세미나, 목요일엔 미술, 음악대, 영화반(노들 씨네마떼끄) 특활수업을 하는 도심 한복판 100평 규모의 노들야학으로 성장했습니다. 노들에서는 야학뿐만 아니라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극단 ‘판’, 장애인 언론의 신기원 ‘비마이너’, 현수막공장 ‘노란들판’이 함께 모여 노란들판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루신의 말처럼, 노들의 꿈은 미래의 꿈이 아니라 현재의 꿈입니다. 노들은 장애해방의 미래에 대한 꿈으로 현재의 자신을 고문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겪는 일상의 고통을 싸움으로 해방시키며 여물어 왔습니다. 1999년 노들학생이 혜화역에서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했습니다. 그때부터 장애인 이동권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전철을 막고, 도로를 막고, 버스를 막아 세웠습니다. 처절한 싸움으로 장애인콜택시, 저상버스, 전철역 엘리베이터를 얻어냈습니다. 2009년 6월 상연씨가 있던 베데스다 요양원의 장애인들이 시설을 탈출해 마로니에 공원에서 탈시설 자립생활을 외치며 62일간 농성을 했습니다. 노들야학은 그들과 함께 인권위와 마로니에 공원을 집 삼아 싸웠고 탈시설장애인들은 노들야학에 왔습니다. 이후 노들은 탈시설장애인들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야학이 있고, 자립생활센터가 있고, 자립주택이 있고, 작업장이 있고, 문화 예술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함께 싸우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들야학은 탈시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한 모든 조건들에 대한 고민을 투쟁으로 외화시켰습니다. 장애인이 살 집을 요구하고 자립생활이 가능하도록 활동보조 서비스를 요구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소득을 요구했습니다. 싸우면서 공부하는 노들야학은 교육이 삶과 분리된 게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싸움의 기술도 늘었습니다. 처절함으로만 싸우지 않습니다. 장애등급제를 반대할 때 한우처럼 등급표를 매달고서 히죽히죽 웃는 사진이 지탄을 받았나 봅니다. 등급제 자체가 웃기기도 하고 등급 매겨진 자신의 삶이 웃기기도 하지만, 싸움이 즐거워서 웃은 겁니다. 일상용품으로 만든 악기를 두들기며 각설이패처럼 돌아다니는 노들악단은 싸움이 곧 축제이자 정서적 해방임을 보여줍니다. 노들야학의 집회장은 처절함과 분노, 개그와 풍자가 어우러진 카니발 같습니다.

노들야학은 장애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비장애인 교사들과 자립센터, 비마이너 활동가들의 삶터이며 배움터입니다. 노들야학은 행사도 많고 일도 많습니다. 중증장애인과 함께 하는 행사는 여느 행사보다 서 너 배의 노고와 섬세함이 요구됩니다. 장소 섭외하는 것부터 활동 보조하는 것까지 중증장애인의 처지와 리듬을 고려하려면 엄청난 인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지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기막힌 삶의 기술들을 배웁니다. 나와 다른 속도에 발맞추기, 다른 신체, 다른 언어, 다른 정서, 다른 사유의 리듬에 공감하기, 노들친구들은 참 인간다운 삶의 능력자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래서 즐겁습니다.

응답 1개

  1. 어깨꿈말하길

    선생님…
    글을 잘읽었습니다.
    노들의 꿈은 미래의 꿈이 아니라
    현재의 꿈이라는 말….
    가슴에 넣고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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