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3호] 에일리언과 함께 살기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에일리언과 함께 살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누대로 이어진 이 상투적인 질문 따위는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하고 말았다. 아무리 지적인 사람도 연애를 하면 상투적이 된다. 애기 목소리를 흉내 내게 되고, 온갖 유치한 감정놀이와 판타지에 몰입하게 된다. 자식과의 초기 관계는 확실히 연애 관계이다. 판타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렬한 연애관계다.

어느 날 어린이 집에서 매이를 데려오는데, 매이를 무척이나 귀여워라 하는 선생이 신발을 신키면서 “선생님이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감히, 내 옆에서. 자신 있다 이거지?’ 매이는 0.5초 망설이더니 “엉새미”(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매이를 안고 어린이 집 밖을 나서면서 재차 물었다. “선생님이 좋아, 아빠가 좋아?” 0.1초 망설이더니 “아빠”라고 답했다. 어느 새 매이는 처세술을 터득했다.

그날 저녁 잠자리 가족쇼(침대에서 매이가 노래하고, 엄마와 아빠를 일으켜 세워 노래시키기) 와중에 “매이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었다. 약간 수줍은 표정을 짓던 매이는 엄마를 선택했다. 소변 누이러 화장실에 데려다 주면서 또 물었다. 역시, 엄마란다. 처세술이 필요 없었던 탓이다. 꽤 잘해 준다고 했는데, 확실히 엄마와 자식 사이에는 아빠와의 관계에서는 충족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옛말은 말(이데올로기)의 힘으로 진실을 뒤집으려는 안쓰러움이 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어머니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는 아버지로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있는 신체적인 연대가 있다. ‘연대’라고 했지만 꼭 호혜적인 공생은 아니다. 아내는 임신 초기에 뱃속의 아이는 ‘기생충’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곤 했다. 어떻게 태아를 기생충 같다고 하냐고 했지만, 들어보니, 그렇기도 하다.

초기 입덧이 심해서 잘 못 먹을 때 나는 은근히 태아의 영양을 걱정했다. 그랬더니 (의학을 전공한) 아내는 걱정할 거 없다고, 태아는 산모가 영양실조 걸리는 상황에서도 필요한 영양소는 모두 빨아 먹는다고, 아이의 헤모글로빈 분자구조는 산모의 헤모글로빈 구조와 달라서 산소 결합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그래서 산모가 질식 상태에 있어도 태아는 호흡할 수 있다고, 태아와 산모의 관계는 기생충과 숙주와 같다고 한다.

인간이 생태계를 바꾸듯이 기생충은 자신의 생식환경인 숙주의 습속을 바꾸기도 한다. 바다 달팽이의 몸속에 있는 기생충은 숙주(환경)를 바꾸기 위해 어느 순간 달팽이를 바위 위로 올라가도록 만든다. 축축한 곳에서,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하는 달팽이 입장에서는 ‘싸이코’ 증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면 하늘을 떠돌던 갈매기가 달팽이를 먹고 그 기생충은 성공적으로 생식 환경을 바꾸게 된다. 임신 4개월부터 약 석 달 간 아내의 습속이 완전히 바뀌었다. 원래 아내는 완벽한 육식동물인데, 놀랍게도 초식 동물로 바뀐 것이다. 된장찌개나 시래기국 같은 전통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었다. 태아가 그런 게 필요했나 보다.

태아는 기생충이라기보다는 ‘에일리언’이다. 외계에서 인간 체내로 침투해 들어와 인간의 몸을 숙주삼아 변형시키다가 몸을 찢고 튀어나오는 <에일리언>의 공포는 실은 모든 여성의 현실적 공포이자 모든 남성의 (여성-되기에 대한) 상상적 공포이다. 태아는 산모의 체내 환경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사회적 환경까지 바꾼다. 자기 신체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아내는 사춘기 때와 같은 정체성 혼란과 감정기복에 시달렸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일어서다 불룩한 배로 옆 테이블을 건드려 물이 엎질러진 날 아내는 몹시 우울해 했다. ‘내 몸이 이상해, 이건 내 몸이 아니야.’ 사춘기의 혼란을 성인 사회에서 겪을 때는 또 다른 곤란함이 생긴다. 입던 옷을 하나도 못 입고, 이미 형성된 자신의 신체 이미지가 깨져 버리고, 사회생활도 못하고, 집안에 고립되다 보면 사회적 자아가 상실된 듯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에일리언이 인간사회를 위협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우리야 운이 좋아 큰 탈 없었지만, 임신과 함께 직장을 잃고 생계가 어려워지는 여성 노동자들, 게다가 ‘수컷’도 없이 혼자 가난과 모멸 속에서 ‘새끼’를 키워야할 비혼의 ‘암컷’들이 겪는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끔찍한 에일리언은 애초부터 만들지 말자는 게 아니다. 에일리언의 공포는 에일리언의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대로의 사회가 좋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마음에 찾아드는 공포이다. 에일리언과의 공생을 통해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들춰내고 바꿔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공포는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매이’라는 에일리언이 순화된 인간이 아니라 에일리언으로 남길, 이 문제투성이 사회에 이질적인 공포의 대상이 되길, 그래서 그 공포를 제거하는 싸움에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하길 조심스럽게 바라 본다.

– 매이 아빠

응답 6개

  1. 박카스D말하길

    세미나 함께하시는 **님께서
    ‘저는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제 자식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다른 세계를 살게하고 싶어서 당신부터 새롭게 공부를 하신다는 말씀이 떠오르네요.’ 에어리언은 여러모로 가능성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2. 김노자말하길

    저도 아이를 키우는 아빠인데, 공감이 되네요. 에일리언-되기! 엄마, 아빠가 야생이 되어야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3. 걸어다니는 죠스말하길

    보면 볼수록 자꾸 애를 낳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요 ^^;;;;

    • 매이아빠말하길

      걸어다니는 죠스님, 숨가쁘지 않으세요? 가슴이 답답하고 손발이 차지요? 외로워서 그래요. 꼭 결혼할 필요 뭐 있나요? 그냥 한 놈 물어다 애 낳으세요. 매이가 잘 놀아 줄테니 ^^

  4. 박혜숙말하길

    순화된 인간이 아니라, 에일리언으로 남길…
    샘, 멋집니다. 너무 솔직해서, 그래서 더 가슴을 두드리는 글 매주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담주도 기대합니다!

  5. 도망 노비말하길

    주로 벗고 나오던 매이의 옷 입은 모습! “착의의 매이”편이군요.
    그런데 첫번째 사진의 짜장면 드립과 두번재 사진의 콧물 드립은 역시 원초적입니다.
    맛있는 짜장면과 콧물(코딱지?)의 추억에 짠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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