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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면서 보여주기, 가면의 매혹!!

- 유정아(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예전에 보았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가운데 한 장면이다. 성공한 의사인 빌 하퍼드(탐 크루즈)와 아름다운 아내 앨리스(니콜키드만)는 예쁜 딸과 함께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그러나 빌은 대학 동창으로부터 난교파티에 대해 듣게 되고,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듯 벌거벗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집단 섹스를 벌이는 혼음파티를 목격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벌거벗은 몸들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수많은 가면들이었다. 매혹과 오싹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가면 뒤에 저들은 누구인가?

가면은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매개물이다. 영화에서 빌은 파티에 참석하기 전에 상점에 들려 가면을 구입한다. 가면을 착용함으로써 그는 젊고 유능한 뉴욕의 의사가 아니라, 내면의 욕망을 은밀하고 고급스럽게(또 매우 저급하게) 탐색하는 한 남자로 변신한다.

인간의 얼굴과 닮았으면서도 같지 않은 것, 무언가 비밀스러움을 내포한 것, 매혹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대상인 가면은 지속적으로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특히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 새로움을 갈구하던 화가들은 아프리카나 중동의 이국적인 가면들에 매혹을 느껴, 이를 작품세계에 적용했다. 피카소가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며 이국적인 가면들을 많이 보았고, 이를 소장했으며, 작품에도 활용한 예는 잘 알려져 있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가면’을 화폭에 끌어들인 화가는 19세기의 벨기에에서 활동한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60-1949)이다. 그의 어린시절은 매우 독특하다.

“나의 조부모는 오스텐드 카푸친느 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했다. 그 가게는 조개껍질, 레이스, 진귀한 박제 물고기, 오래된 책 그리고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에 의해 항상 엉망이 되는 기괴한 물건들이 빠져나올 수 없는 혼잡을 이루었고, 귀를 찢을 듯한 목소리의 앵무새와 원숭이 한 마리도 있었다… 나의 외할머니는 종종 나를 이상한 옷으로 괴상하게 옷 입히고 원숭이 역시 정성껏 입혀서 산책에 데리고 다녔다. 할머니는 가면무도회를 아주 좋아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멋진 꿈으로 가득 찼다. 박제된 이상한 짐승들, 원시인들의 무서운 영혼들이 나를 공포에 떨게도 했다. … 바다에서 물고기 잡이가 한창이었는데, 거기서도 역시 수 천 가지 색을 가진 조개껍질들을 볼 수 있었고, 참으로 이런 특별한 환경은 나의 예술적 능력을 발전시켰으며, 할머니는 나에게 멋진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Xavire Tricot)

앙소르는 고향인 오스텐드에서 매년 성대하게 열리는 카니발에 외가 가족들과 함께 참여하였고, 갖가지 이국적이고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찼던 기념품 가게를 보면서 자랐다. 어린 시절 경험한 카니발과 기괴한 물건들로 가득 찬 기념품가게의 비현실적인 인상의 기억들이 그의 작품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가게 내부에 진열된 물건들 가운데 앙소르의 흥미를 가장 많이 끌었던 것은 가면이었다. 카니발이 시작되면 사람들에게 빌려주거나, 외국인들에게 팔기 위해서 가게의 높은 벽에 가면들을 매달아 놓았다. 강렬한 원색과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형태의 가면들이 있었고, 이 가면들을 얼굴에 착용한 군중들의 행렬로 도로가 가득 찼던 카니발은 앙소르에게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가면들 속에 갇혀있는 듯한 그의 얼굴은 매우 인상적이다. 수많은 화가의 자화상들 중에도 이런 기괴한 자화상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림에서 준수한 얼굴에 깃털 장식 모자를 쓴, 영국 신사와 같은 차림의 앙소르는 젊은 시절부터 코와 턱에 수염을 길러 마치 성스러운 그리스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실제로 매우 진지하고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앙소르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살펴보자.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1888)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처음부터 호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건 앙소르가 보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감상하도록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불편하게 바라보기를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령 회화에는 보통 눈길을 끌기 위해 화면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확연히 분리하는 구도를 취한다.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에서 누구나 봐도 그리스도에게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자연스레 관심이 쏠리도록 인물, 구도, 원근법, 색채 등의 요소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앙소르의 작품에는 그러한 중심점이 없다. 비록 소실점처럼 보이기는 하나, 많은 요소들이 그 중심점으로 향하는 눈길을 방해한다. 보는 이들의 집중 관심을 받게 될 그리스도의 모습은 잘 보이지도 않게 작게 그려졌고 옷차림은 주변 인물과 잘 구분되지도 않는다. 화면에는 원색이 가득하여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데다가 결정적으로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눈은 쉴 곳을 찾을 수가 없다.

여기에서 저기 뒤쪽에 보이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웬만해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신적인 존재보다는 인간적인 면모가 강조되었다. 이런 태도는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데, 사회가 다변화되고 개인의식이 성장한 19세기 말에 이르면 교회의 중요성은 사라지고, 이제 종교화는 전적으로 화가 자신의 종교관과 자유로운 교리해석을 반영하는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성의 표출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화가 개인사로 이 그림을 볼 때, 이 시기는 앙소르가 자신의 작품을 동료들이 이해해주지 않자, 절망감에 괴로워 하던 시기였다. 그는 매우 독특한 작품 세계 때문에 주변 동료들과 비평가들, 대중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운 입장에 놓였었다. 그러나 이 그림이 그런 개인적인 우울과 좌절의 결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괴상한 가면들의 등장 덕분에 화가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 가면들을 통해 화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었을 테니까. 더불어 여기에 과감한 원색과 거친 붓터치를 통해 마음대로 형태를 왜곡, 과장시킬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런 기법은 20세기 초반 표현주의 등장에 영향을 주었다.

이런 경향은 당시 과학적 방법론을 그림에 적용해 외형적 정확함을 추구하려했던 프랑스의 신인상주의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제작되기 바로 1년 전인 1887년에 조르주 쇠라의 대작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이 브뤼셀에서 전시되었고, 이 작품의 반향이 벨기에 화단을 강타하여 다수의 동료들이 점묘주의로 옮겨갔다. 제임스 앙소르는 그런 벨기에 전위미술계의 경향과 쇠라의 과학적인 색채사용에 반대하는 자신의 예술적 입장을 이 거대한 화면을 통해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는 결국 이 그림은 사회에 비판적 시선을 던지는 앙소르의 정치적 발언이었던 것 같다. 그의 정치적 입장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그림에서 군중들이 들고 있는 플랭카드에는 ‘사회주의여 영원하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가면을 통해 앙소르는 가식적이고 자신만의 이익을 탐하는 개인주의와 물질에 대한 탐욕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근대적 인간의 위선과 이중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결국 이렇게 가면을 매개로 부르주아 사회를 탐색해나가면 그 귀결점은 어리석음과 허무함이다. 어느 부르주아의 방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공간에는 해골 가면, 인형, 부서진 부채, 장화 등의 잡동사니들이 나뒹굴며 불안함을 자아낸다. 바닥에 놓인 꺼질듯한 촛불도 그 불안함을 강조하고 있다. 해골 형상은 전통적으로 시간의 유한성과 어리석은 인간을 상징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면과 해골, 부서진 인형이 나뒹구는 이 공간은 어지러운 세상사, 어리석은 인간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가면뒤에 사회적 신분과 지위, 공식적 얼굴을 감추고, 난교 파티에 참여했었던 <아이즈 와이드 셧>의 그들처럼. 미모의 여인과 그녀를 둘러싼 사회적 권력남들이 벌이는 한국사회의 스캔들처럼. 심지어는 가면도 필요치 않다는 듯 민낯으로 기괴함을 발산하는 그들처럼.

응답 3개

  1. hermes말하길

    앙쏘르 그림을 보면서 가면이 참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면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매우 재미있는 오브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hermes말하길

    앙쏘르 그림을 보면서 가면이 참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면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매우 재미있는 오브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 cman말하길

    급속한 사회의 발전을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인격과 여과없이 받아들인 저속한 자본주의로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 많은 가면을 가지게 되는 사회, 교육 그리고 문화로 가득한 사회에서 진실을 추구하고 진리를 찾아갈 수 있는 커다란 전환을 필요로 합니다. 마치 작가들이 걱정하고 그리고자 했던 경고를 보는 듯 합니다. 좋은 그림과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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