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핵의 공포,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 황진미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핵발전소의 방사선 누출로 전 세계가 핵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일본처럼 지진이 많이 나는 나라에, 그것도 원자폭탄으로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맞본 나라에 왜 핵발전소를 55개나 건설한 것인지 순진한 의문이 생겨난다. 핵발전소가 깨끗하고 안전하며 값싼 전기를 무한정 제공해준다는 말은 거짓이다. 핵발전소는 안전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사고 시 치러야 할 비용 등을 고려하면 전혀 경제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은 물론, 석유에너지가 충분한 중동지역 국가들까지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것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이유 때문이다. 핵발전과 핵무기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란이나 북한의 핵개발에 국제사회가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그 때문이다. 이번 사고로 일본이 플루토늄을 핵발전에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북한의 핵개발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언론이 핵무기의 전 단계라고 강조하던 플루토늄이 일본에선 별다른 제재 없이 농축되어 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1945년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류는 핵에너지가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경험하였다. 그 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기치아래 핵보유 국가들의 감시 하에 제한적인 핵 발전이 허용되었지만, 핵보유국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진 못하였다. 그리고 당장 핵무기를 보유하진 못하더라도, 핵발전소를 통하여 그 발판을 마련하려는 나라들에 의해 핵발전소 건립이 추진되었다. 오일쇼크 역시 핵발전에 힘을 실었다. 한국의 박정희 정권 때 핵발전소 건립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1979년 쓰리마일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반핵여론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핵발전소 건립은 어려워졌다. 하지만 기후문제가 대두되면서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핵발전이 다시 대안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 원자력 르네상스’는 이번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근본적인 회의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1. 핵에 대한 공포를 그린 외국 영화들

핵에 대한 공포는 영화 속에도 많이 나와 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치상황에서 단순한 실수만으로도 인류를 절멸시킬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음을 풍자적으로 경고한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나 냉전 이후 발칸분쟁에 무력 개입한 나토를 응징하러 배낭에 핵무기를 매고 국제회의장에 난입하려는 주인공을 통해 핵 테러의 가능성을 경고한 <피스 메이커> 등이 대표적이다. 핵발전소에 대한 공포를 그린 영화들도 있다. <차이나 신드롬>(1979)은 핵발전소 냉각장치 고장으로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현상으로 방사능물질이 방출되어 지구반대편에 있는 중국까지 방사능물질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사고를 은폐하려는 당국의 비리와 음모를 파헤친 스릴러이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데다, 개봉 후 몇 달 뒤 쓰리마일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도쿄 원발>(2004)이라는 기막힌 영화도 있다. 일본 국민배우 야쿠쇼 코오지가 주연한 이 영화는 동경에 핵발전소를 유치하자는 도쿄도지사의 폭탄발언과 이를 둘러싼 관료회의를 통해 핵발전소의 위험과 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는 핵발전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내다가, 말미에 도쿄도지사의 발언이 핵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을 국민들에게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영화에는 일본 핵발전소가 지진에 취약하며, 일본에서 아직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건 기적이라는 대사까지 나와, 후쿠시마 사고가 예견된 인재였음을 알려준다.

2. 핵무기 보유 열망을 드러내는 한국 영화들

한국영화 중에도 핵무기나 핵발전을 다룬 영화들이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5)는 1993년에 베스트셀러였던 김진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남북합작 핵개발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와 반일감정을 내세운다. 영화는 물리학자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기자를 중심으로 스릴러를 펼치다가 중반이후 엄청난 스케일의 정치적 비밀을 드러낸다. 미국과 일본의 감시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없는 남북한이 이들을 잘 따돌리고 인도에서 들여온 플루토늄으로 남북한이 합작하여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고, 그 핵무기를 독도를 점령한 일본에 사용하여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유의 히트를 기록했던 소설과 달리 영화가 나왔을 때의 관객반응은 시큰둥하였다. 영화가 원작을 제대로 못 옮겼기 때문이 아니다. 소설과 영화의 시기상의 간극 때문이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를 겪으면서 국민정서가 변화하여 남북한 공동 핵 개발로 일본에 맞선다는 정치적 구도에 공감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유령>(1999)는 최민수, 정우성 주연에 특수촬영이 화제가 되었던 영화로, 핵잠수함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령’은 러시아에서 차관대신 비밀리에 들여온 핵잠수함의 이름으로, 승선한 해군들은 모두 문서상으로 이미 죽은 자들이다. 오직 함장만이 내용을 아는 비밀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유령’이 출항하는데, 쓰시마 해협을 지날 무렵 함내 반란이 일어난다. 부함장(최민식)이 함장을 죽이고, 함장이 주인공(정우성)에게 맡긴 핵미사일 열쇄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비밀작전이란 주변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느라 핵잠수함 보유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상부의 명령에 의해 망망대해에서 핵잠수함과 함께 자폭하는 것이었고, 이를 안 부함장이 자폭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핵잠수함을 손에 넣고 핵미사일로 일본을 공격하려 한다. 일본 영해로 들어간 ‘유령’을 공격하려는 일본잠수함을 향해 어뢰가 발사되고, 전쟁의 위험이 목전에 닥친 순간 이를 막으려는 주인공의 필사의 노력에 의해 핵잠수함의 자폭이 이루어진다. 영화는 ‘유령’의 자폭을 무척 허무하고 안타깝게 그리며, 영화 전체의 정서적 균형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부함장 쪽으로 기울어진다. 즉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의 자폭으로 봉합되지만, 영화 전반에 흐르는 무의식은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와 간섭을 받지 않는 ‘강성대국’을 꿈꾸며 ‘핵 주권’을 갖기 열망하는 군사적 패권주의이다. 비슷한 정서는 <천군>(2005)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남북한 공동합작으로 만든 핵탄두를 미국에 양도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불복하는 북한군 장교가 핵탄두를 탈취하여 도주하고 이를 뒤쫓던 남한군 장교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다. 그때 혜성에 의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게 된 이들은 아직 영웅이 되기 전의 이순신을 만난다. 이들은 한량으로 방황하는 이순신을 추동하여 여진족과 전투를 치루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한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이들이 핵탄두를 양도하기로 결정한 상부에 항의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유령>, <천군> 등은 모두 남북협력, 핵 보유, 반외세 등을 주장하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핵무기를 강력한 힘으로 열망하는 의식을 보여준다.

3. 핵폐기물의 위험에 둔감한 한국 영화들

핵폐기물을 소재로 한 우리나라 영화도 있다. <태풍>(2005)은 탈북자 출신의 동남아의 해적 씬(장동건)이 남한 상공으로 핵폐기물을 살포시키려는 테러기획을 막기 위한 남한 해군장교(이정재)의 대결을 그린 영화이다. 씬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탈북하여 남한으로 입국할 예정이었으나, 중국과의 수교를 염두에 둔 남한 당국의 배신으로 중국에서 가족을 잃고 고아로 살아남았다. 씬은 그 원한을 갚기 위해 동중국해에 배를 띄우고 러시아인에게 얻은 체르노빌 핵폐기물을 풍선에 담아 태풍에 실어 한반도로 날려 보내려 한다. 그러나 이를 막으려는 남한 장교와 대결을 펼치다가 막판에 자신의 울분을 자기 허벅지를 찌르는 것으로 분출하며 핵 테러 시도를 스스로 철회한다. 그 과정이 썩 와 닿지는 않는데, 영화는 모든 것을 동포애와 ‘싸나이로서의 교감’으로 설명하며 신파조의 엔딩을 맺는다. 하지만 <태풍>은 핵을 보유하고픈 군사력이 아니라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사물로 인식한 유일한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지닌다. 이는 <이장과 군수>와 비교해 보아도 명확하다. 이 영화는 동창생인 이장(차승원)과 군수(유해진)의 대립과 우정을 통해 지방정치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이를 당시 노무현정권의 현실에 빗대어 풍자하려는 코미디이다. 그런데 지방정치의 난맥상을 보여주기 위해 집어든 카드가 하필 핵폐기장 건설이다. 이는 2003년도에 부안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지역민의 상처도 채 아물지 않은 민감한 사안이다. 하지만 영화는 핵폐기장 건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치적 빌미로만 활용하며 부안사태를 심각하게 왜곡한다. 영화는 일단 핵폐기장의 안전문제는 논외로 하고, 핵폐기장이 안전하다고 믿으며 지역발전을 위해 유치해야 한다는 군수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는 순수하고 소신있는 정치인으로 그리면서,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수기득권 세력의 음해나 보수언론의 거짓선동에 넘어간 우매한 이들로 그리거나, 개인적 열등감으로 반대하지만 다시 우정을 회복할 옛 친구로 묘사한다. 사실 이러한 인식은 당시 친노진영이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였던 현실정치의 대립구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영화에서 방폐장은 지역경제를 위해 유치해야할 사업일 뿐, 지역주민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에 대한 논의는 완전히 빠져있다. 이는 핵폐기장과 핵발전소의 위험에 둔감하고,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한국사회의 핵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4. <검은 비>와 <히로시마 평양> 피폭의 고통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핵에 대한 공포가 가장 리얼하게 묘사된 영화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검은 비>(1987)이다. 1966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히로시마 원폭투하 당시 살아남은 피폭자의 삶을 그린다. 결혼을 위해 외삼촌 부부에게 가던 20살 야스코는 히로시마 인근에서 ‘검은 비’를 맞는다. 그녀는 신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서와 피폭을 당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기장을 제시하지만, 원폭병환자라는 이유로 번번이 혼사를 거절당한다. 5년 뒤 그녀는 점차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고, 그녀의 손에 묻었던 검은 비가 방사능 낙진이었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순간 검게 탄 수십 명의 시체더미 사이로 사지가 떨어져나가고 전신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너덜너덜 걸어다니는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고, 당시에는 운 좋게 살아남은 야스코 마저 몇 년 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고 남몰래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통해 핵에 대한 공포를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국내관객들 중에는 침략의 당사국인 일본에서 일어난 피폭에 대하여 희생자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인과응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등의 한국영화들에 일본에 대한 핵공격이 암시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정서의 반영이다. 민족주의는 피폭의 고통을 나의 것, 혹은 인류공통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되는 것이 있다. 원폭 투하 당시 두 도시의 피폭인구의 10%는 조선인이었다. 약 7만 명의 조선인이 피폭당하여, 그중 4만 명이 즉사 또는 연내에 사망하였다. 생존한 3만 명 중 2만 3천명이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대다수가 합천 등 남한으로 귀국하였지만, 일부는 북한지역으로 귀국하였다. <히로시마, 평양>(2008)은 북한에 생존해 있는 피폭자들을 그린 일본의 다큐멘터리이다. 이들은 북일 수교가 없어서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였다. 남한의 피폭자들은 1965년 한일 수교로 개인적인 구상권이 박탈되었고, 한일 양측으로부터 외면 받아 치료와 배상을 받지 못하였다. 원폭 2세들 역시 원인모를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단명하였는데 실태조사조차 되지 못하다가 2002년 김형률이라는 32세의 청년은 원폭2세환우임을 밝힌 것을 계기로 한국원폭2세환우회가 조직되었다. 그가 평화인권운동을 펼치다가 병사한 2005년, ‘원폭피해자지원을위한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회기만료로 무산되었다. 2008년에 이르러 원폭1세들은 일본의 원호법 개정으로 소액의 진료비와 원호수당을 받게 되었지만, 원폭2세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다.

65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원폭사건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우리와 먼 사건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은 인적, 물적으로 연루될 수밖에 없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핵의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 핵발전소 사고 역시 내일 우리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길 것이다. 또한 최악의 피폭사건을 앞에 두고도 핵에 대한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한국의 핵발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일본은 내일의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핵에 대한 공포에 둔감한 채, 핵무장을 부르짖거나, 눈앞의 경제적 이익에만 급급하여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의 위험을 간과하는 국내 여론이 하루바삐 변화하여, 반핵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한국영화들을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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