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존경하옵는 판사님

-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수)

안녕하십니까. 다름이 아니옵고 세계20개 주요국 정상 회의 홍보 포스터 손상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박정수 님의 “사건” 관련으로 저의 의견을 판사님께 참고로 제출해볼까 합니다. 물론 원칙상 공공용도의 포스터 등에 개인적 낙서 내지 그림을 남기지 않는 것은 사회의 통례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박정수 님께서 포스터에 “쥐” 그림을 남긴 것은 포스터의 파손 내지 파괴를 목적으로 한 것도, 단순한 자기 과시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으며 어디까지나 곧 이루어질 세계20개 주요국 정상 회의에 대한 박정수 님의 다소 비판적인 의견을 미술적이고 유머적인 형태로 피력한 것이었습니다. 세계 20개 주요국 정상 회의에 대한 박정수 님의 의견을 많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꼭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세계 언론을 보면 개최국인 한국의 정부가 회의 개최로 말미암아 시민 생활에 과도한 불편을 끼쳤다는 점이라든가 회의 자체의 효용성에 대한 회의 (懷疑) 등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즉, 이 의견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대한민국에서는 이와 같은 류의 의견들이 소수의견이라 하지만, 소수의견의 표현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기본 원칙이 아닌가 싶습니다. 20개 주요국 정상 회의 개최의 여러 목적 중의 하나는 대한민국 이미지 개선과 국가 홍보이었다면, 박정수 님의 의견과 같은 소수의견에 대한 사법적 탄압은 분명히 이 목표에 거스를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공공적으로 피력한 죄 밖에 그 어떤 자른 죄도 저지른 것 같지 않은 박정수님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에는, 이는 분명히 국외적으로 인권, 즉 표현 권리의 탄압으로 해석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킬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와 같은 인권적, 사회적 고려를 염두에 두시고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발전과 인권 신장, 민주·인권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이미지 확립에 도움이 될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판사님께 거듭 부탁 드리고자 합니다.

응답 1개

  1. 또나말하길

    역시 박노자 선생님은 한국사람들보다 한국인의 화법을 더 잘 구사하시는 군요. 한국사회의 정서나 사법부 사람들의 사고를 정말 정확하게 이해하시고, 그걸 글에 녹여내시는 솜씨와 태도에 절로 존경심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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