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법 앞에서

- 박정수(수유너머R)

오는 4월 22일 G20 그래피티 사건에 대한 (아마) 마지막 공판이 열립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지난 해 10월 30일 저는 시내 가판대에 부착된 G20 홍보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스텐실 기법으로 홍보포스터의 청사초롱 옆에 쥐 그림을 덧그린 것이었는데요. G20 서밋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 40조의 수익이 생기고 우리의 국격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다는 과대 허위광고도 유치했지만 개발독재시대의 국가행사 때처럼 외국인을 만나면 당황하지 말고 ‘헬로우’ 라고 인사하고, 냄새 풍기니까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지 말라 하고, 동네 곳곳 청소시키고, 기초질서 다잡는 행태에 심한 모욕감이 들어서 장난 좀 쳐 봤습니다. 스무 장 쯤 그리다가 경찰에 체포되었고, 공안검찰은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습니다. 다행히 기각되어 불구속 상태로 여러 달 검찰조사까지 받고 법원에서 2차 공판까지 받았습니다.

검찰의 논리는 단순하더군요. 그래피티 ‘아트’라고 우기지만 불법행위가 아니냐. 그것도 단순 경범죄가 아니라 국가 행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공용물을 파손한 중범죄라는 것입니다. 예술이냐 아니냐를 불법성 여부로 가리는 것도 납득키 어렵고, 내가 구체적으로 G20 행사를 어떻게 방해하고 무엇을 파손시켰다는 건지 이해할 수도 없지만, 법적으로는 그렇답니다. 법정에 선 만큼 법을 존중하고 법의 논리에 복종하라는 얘기인데, 몸은 법정에 섰을지라도 영혼은 아직 법 앞에 서성이고 있습니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에 나오는 시골사람처럼.

법 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습니다. 이 문지기에게 한 시골 사람이 와서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문지기는 지금은 그에게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시골사람은 법 안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문지기에게 간청도 해 보지만 문지기의 으름장에 주눅이 들어 오랜 세월 법 앞에 서성이기만 합니다. 그렇게 법 앞에서 늙어 죽게 될 즈음, 시골사람은 문지기에게 묻습니다. 왜 나 이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락받으러 오지 않느냐고. 그러자 문지기가 말합니다. “이곳에서는 너 이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락받을 수 없어. 왜냐하면 이 입구는 단지 너만을 위해서 정해진 곳이기 때문이야. 나는 이제 가서 그 문을 닫아야겠네.”

시골사람의 어리석음과 용기 없음을 한탄할 수도 있겠지만, 조르지오 아감벤은 다르게 읽습니다. 법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끝까지 법 앞에서 버틴 시골사람의 태도야말로 법에 저항하는 가장 급진적인 전략이라고. 그의 끈질긴 기다림으로 결국 법의 문은 닫혀 버렸으니까요. 그는 메시아가 그랬듯이 삶에 대한 율법의 지배를 종식시켜 버린 겁니다. 법 바깥의 삶에서 구원을 찾는 것. 그러기 위해 시골 사람이 한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연구’입니다. 아이처럼 유치하게, 문지기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여 모피 깃에 붙어 있는 벼룩까지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월 22일 피의자 심문 때 물론 저는 저 자신을 변호하겠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저는 법 앞에서 연구할 겁니다. 문지기들의 옷깃에 붙어 있는 ‘권력의 벼룩들’의 움직임과 종류를 세세하게 연구할 겁니다. 물론 법의 심판을 받겠지만, 저의 영혼과 삶은 늙어 죽을 때까지 법 앞에 두겠습니다. 아직 법을 모르는 어린 아이처럼, 그저 삶을 연구하며 놀겠습니다.

이번 호 동시대반시대는 저와 최**의 재판에 대해 판사에게 보낸 국내외 친구들의 의견서들 중 일부를 실었습니다. 어떤 건 법정 제출용이라 본의 아니게 과도한 공손함을 보인 것도 있고 어떤 건 판사를 아랑곳 하지 않고 직설적인 것도 있습니다. 감안하시고 봐 주시고, 혹시 같이 연구할 분들은 4월 22일 오후 5시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응답 8개

  1. 푸른하늘말하길

    어머, g20 박정수가 이 박정수였어요? 이런, 난 참 빨리도 알어. 샘이, 이 개그의 주인공이라니! 정수샘 응원합니다! 놀이와 연구의 유쾌한 결합, 힘내세요!!!

  2. 도시사랑말하길

    몸은 법정에 섰을지라도 영혼은 아직 법 앞에 서성이고 있습니다.

    쌤의 한문장에 마음이 울컥합니다.

  3. 여하말하길

    박정수 선생과 ‘거기’에서 연구하지는 못하지만, 또다른 곳에서 연구하며 놀고 있겠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평소보다 찐하게! 법가는 아니지만, 법이 쓸모 있을 데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 ‘보수주의자’의 눈에마저도 이 상황은 꼭 봄에 오바입고 오바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더울텐데…

  4. 요암말하길

    법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끝까지 법 앞에서 버티는 급진적 전략.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응원합니다 선생님. 파티 기대하겠습니다.

  5. 달맞이말하길

    어린 아이처럼 삶을 연구하며 놀겠다, 멋집니다. 정수 샘, 응원합니다!

  6. 강물처럼말하길

    4월 22일 오후 5시, 서초동을 기억하고 있겠음. 박형 파이팅!

  7. 케이말하길

    당당하게 법-폭력과 싸워서, 하고 싶은 말 맘껏 하고, 하고 싶은 놀이 맘껏할 수 있는 세상을 한 뼘 더 앞 당겨 주길!

  8. 고추장말하길

    몸은 멀리 있지만 맘은 법 앞에선 정수형과 어깨를 걸고 있겠습니다. 우리의 놀이와 연구를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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