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유럽의 두 얼굴..중동민주화 시위 before &after

- 맹찬형(연합뉴스 제네바 특파원)

지난 3월 17일 무아마르 카다피의 친위부대에 의한 리비아 민간인의 추가 희생을 막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안 1973호를 채택한 이후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첨단 전투기를 동원해 연일 공습에 나서고 있다. 서방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보름간에 걸친 공습으로 카다피 친위부대의 전투력의 약 30% 정도가 궤멸됐다는 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평가다.

당연한 얘기지만,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개입이 순수한 `인도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믿거나, 서방연합군을 시민 자유와 권리의 일관된 수호자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내가 흥미를 갖는 대목은 아랍세계를 휩쓸고 있는 민주화시위 과정에서 서방 국가들의 다양한 분야에서 추악한 면모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아랍 민중의 편에 선 것처럼 보이는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독재정권들과 매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단순히 정치ㆍ군사적 지원 수준을 넘어 기업과 학계에 이르는 광범위한 유착이 있었다.

영국 정부의 경우 카다피 정권이 민주화 시위대를 학살하기 불과 4개월 전까지 리비아를 비롯한 아랍지역 독재자들에게 막대한 규모의 무기를 팔아온 사실이 데일리 메일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영국 산업부의 공식 통계만 보더라도 2009년 이후 16개 나라 독재자들에게 총 23억 파운드(약 4조원)의 무기 수출이 승인됐다. 여기에는 리비아 6천130만 파운드, 사우디 아라비아 17억 파운드, 알제리 2억7천600만 파운드, 이집트 2천40만 파운드 등이 포함돼있다.

점잔을 빼던 영국의 대학들도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명문 런던 정경대(LSE)는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이 2008년 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카다피 재단으로부터 150만 파운드(약 28억 원)의 기부금을 약정받았고, 실제 30만 파운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하워드 데이비스 학장이 물러났다. 또 킹스 칼리지 런던, 리버풀 존 무어 대학, 런던대학 소속 오리엔탈ㆍ아프리카 연구소(SOAS)도 카다피 재단과 맺은 돈독한 관계가 드러나 망신살이 뻗쳤다.

이탈리아는 과거 식민지였던 리비아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고, 리비아가 이탈리아에 투자한 자금 규모는 무려 36억 유로(약 5조6천억 원)에 달한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절친이었던 카다피의 가족은 이탈리아 최대 은행 유니크레딧의 지분 7.5%를 갖고 있고, 이탈리아 방위산업 및 우주항공 분야 최대 기업인 핀메카니카와 명문 프로축구단 유벤투스의 지분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 이탈리아 석유회사 ENI는 전체 원유 채굴량의 14%를 리비아에서 생산해왔다. 심지어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붕가붕가 파티’로 알려진 자신의 심야 섹스파티를 카다피의 하렘에서 본뜬 것이라고 했다는 이탈리아 현지 신문의 보도도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리비아 반군을 가장 먼저 승인하고 파리에서 긴급회의까지 열어가며 공습을 주도한 프랑스 역시 자유로운 처지는 아니다. 미셸 알리오-마리 전 외교장관은 시민혁명으로 쫓겨난 지네 알 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의 측근 재계인사가 제공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2차례 해외여행을 즐긴 사실이 드러나 3개월 만인 지난 2월27일 사퇴했다. 알리오-마리 전 장관은 부모가 벤 알리의 측근과 부동산 거래를 한 사실도 밝혀졌다.

프랑스가 너무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연합군의 공습을 채근한 배경에는 외교장관의 스캔들뿐만 아니라, 내년 5월 차기 대선을 앞두고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딱한 처지가 깔려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0% 안팎에 불과한 사르코지는 내년 대선에서 예선 탈락할 것이라는 불길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자였고, 시위대를 겨냥한 군경의 무자비한 발포로 비난을 받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과 대테러 전쟁의 오랜 동맹 관계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세상이 변한 것을 깨닫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독재자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쪽에 서기로 한 것은 좋은 일이다. 서방이 비록 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아랍의 변화를 촉진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다만 과거에 어둡고 칙칙한 유착이 있었음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 민주화로 이행하고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아랍 민중들이 자신들에 속한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경제적 권리를 또다시 저당 잡히지 않도록 현명함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끝으로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자국의 추악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유럽의 언론 환경만큼은 참으로 존경스럽고 부럽다.

응답 2개

  1. 지나가다말하길

    나토군의 리비아 공습이 뭔가 찜찜했는데, 이런 면이 있었군요. 한국의 언론에서는(심지아 한겨레, 경향에서도) 얻을 수 없는 고급정보, 감사합니다. 리비아 인민들의 자생적 혁명의 열기가 되살아나야 할텐데…무력의 약점은 무력에 의존하여 대항케 하고 무력은 항상 자율성과 창의성을 말살한다는 거죠.

  2. 마야말하길

    유럽의 언론환경은 어떻게 그렇게 이룩되었을까요. 시민들의 투쟁인가요?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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