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무한독전

놀이, 새로운 삶을 상상하는 능력

- 이상미

“의무적 군사 훈련이 없었기 때문에 공놀이를 통한 신체 단련의 필요나 기회가 더욱 많았다. 교육 형태도 이런 쪽으로의 발전을 지원했고, 또 평평한 땅이 많은 영국의 지형도 한몫 거들었다. 그래서 전국 어디서나 평평한 공유지가 있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놀이터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영국은 현대 스포츠 생활의 요람이요 출발지가 되었다.”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中

자발성, 자연스러움, 거기에 덧붙여 스스로 행동하도록 하는 즐거움까지. 우리가 흔히 노동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놀이를 파악할 때, 이를 삶을 자발적으로 살아내는 원동력으로 이해한다(비록 몇날 며칠을 도박하느라 한숨도 못 자고, 운동장을 한껏 뛰어다닌다고 해도 피곤할지언정 질리지는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활동이 바로 ‘놀이’인 것이다. 고대의 제의처럼 진지하면서 오락적인 요소가 강한 인간의 자유 활동, 요한 하위징아는 자신의 저작인 『호모 루덴스』에서 사람들이 놀이를 통해 삶을 추동하는 창조력을 발휘하게 됨을 설명한다. 심지어 법률, 문학, 스포츠 등 인간이 일궈낸 문화의 각 분야는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간의 자발성이 만들어낸 문화적 성과로 설명된다.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서의 충동이 없다면 문화 전반에 대한 창조도 없다. 하지만 근대에 접어들어 일과 놀이가 분리되면서, 사람들은 일이 지닌 생산성에 주목하게 되면서 놀이가 지닌 자발성과 창조성을 과소평가하게 경향이 생겨난다. 노동은 부의 창출을 위한 필수 덕목이며, 놀이는 비생산적인 행위로서 지양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다.

18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작업복을 입기 시작한다. 심지어 단순히 즐기는 영역으로 생각되던 문화나 각종 스포츠에서도 돈을 벌기 위한 ‘프로’와 영리 여부와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운동을 즐기는 ‘아마추어’의 구분이 생겨난다. 아마추어는 프로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프로의 능력은 돈으로 환산된다. 운동을 잘 하기 위해 신체를 단련하는 프로의 단련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닌 노동이다. 좋은 성과를 내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미덕이 되면 놀이 정신과는 전혀 상반되기 때문이다. 생산성만을 주목하게 된 사람들의 성향은 막스 베버의 저작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도 잘 묘사돼 있다.

빈곤해진 놀이 정신과 마주하다

생각을 집중하는 능력과 ‘노동을 의무로 여기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태도가 이들에게 빈번하게, 수입과 그 크기를 반드시 계산하는 엄격한 경제성, 그리고 작업 능력을 상당히 제고하는 냉철한 자기 통제 및 절제와 결합되어 나타난다.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中

원래 놀이 요소는 노동과 따로 떼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이나 정치 등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속에 녹아 있었다. 하위징아가 결론을 내린 것처럼 “놀이 요소가 없는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
요즘의 놀이 형태는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의도를 위장하기 위해 의식, 무의식적으로 사용되며(80년대에 시민들에게 제공됐던 프로야구와 같은), 얼핏 보기에는 어떤 놀이가 항구적인 놀이 경향을 갖고 있는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여가 시간에 쇼핑을 하고 노래방에 간다는 것이 항구적인 놀이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위징아가 이상적으로 언급하는 연극, 제의 등 고대의 놀이와 비교하면, 이러한 놀이 요소들은 진정한 놀이로 판단할 수 없다.

현대에는 얼핏 보기에 놀이와 비슷하여 놀이 요소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곳곳에 있다. 노동 외적인 시간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쇼핑이나 영화 관람 등은 결국 사람들의 여가 시간마저 노동의 생산물을 소비하도록 한다. 고대의 제의나 아이들의 역할극 등에서는 놀이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놀이를 통해 자신을 확장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커다란 소비 사이클 속에서 자신의 놀이 시간을 돈으로 지불한다. 일을 하건 놀이를 하건, 사람들은 자신들을 고양시키는 행위보다 자신을 소모시키는 행위를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삶의 주인이 되게 하는 진정한 놀이 정신

인생은 놀이처럼 영위돼야 한다. 일정한 게임들을 놀이하고, 희생을 바치고, 노래하고 춤춰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인간은 신을 기쁘게 할 것이고,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것이며, 경기에서 승리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자연을 따라 살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대부분의 측면에서 꼭두각시나 진리의 약간의 몫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에서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며

하위징아는 놀이를 단순히 여가에 국한시키지 않고, 삶의 여러 요소를 능동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자발적인 힘으로 정의 내린다. 그렇다면 삶의 매 순간을 놀이 정신이 발현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의 존재를 보다 능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노동과 분리되어 언급하는 여가에 대해서도 좀 더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재발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효율성과 정확성을 유일한 잣대로 기준 짓지 말고, 삶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놀이 정신을 발휘해 자신을 있는 힘껏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혼자 하기가 어렵다면 삶을 새롭게 꾸며보고 싶은 주변 동료들과 함께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도 즐거울 듯싶다.

응답 1개

  1. 박카스말하길

    놀이란 삶의 여러요소를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힘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와닿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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