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파 코미디들이 몰려온다. 작년의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방가? 방가!>, <불량남녀>를 거쳐 올해의 <위험한 상견례>와 <수상한 고객들>까지, 녹록치 않은 사회문제를 코미디로 풀어낸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하면서, 조폭 코미디와 할리우드식 장르코미디가 주류로 인식되던 한국코미디영화계에 새바람이 일고 있다.
계보를 그리자면 <간첩 리철진>(1999)가 가장 앞선다. 북한의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슈퍼 돼지를 훔치러 남파되었다가 택시강도를 당하고, 남북화해무드조성으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간첩을 통하여 당시까지도 일소되지 못하였던 반공 이데올로기에 잽을 날리는 신선한 코미디였다. 이어서 <대한민국 헌법 1조>(2003)도 있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차별을 국회의원 선거와 연결시킨 참신함은 좋았지만, 제목이 가리키는 참정권 이상의 주장을 끄집어내지 못하였고, 성정치의 측면에서도 ‘매춘부 여성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실향민 아버지를 위하여 통일 가상극을 펼치는 소동을 그린 <간큰 가족>(2005)도 꼽을 만하다. 이 영화는 한층 변화된 통일관을 반영한다. 통일은 노인세대에게는 혈연(민족)적 당위성을 지닌 문제이지만, 이후세대들에겐 경제적 실리에 관한 문제이다. 서해교전이 터진 상황에서도 유산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평화무드를 가장하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통일은 일종의 판타지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성격을 띤 기획이자 연출임을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아울러 작금의 통일논의가 여성을 주변화 시키는 가부장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노출시키는 영화였다.
그러나 21세기 남한사회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회파 코미디의 본격적인 출발은 <1번가의 기적>(2006)으로 봐야 할 것이다. 영화는 조폭 코미디로부터 사회파 코미디로 갈라져 나온 ‘발생론적 흔적’을 지닌다. 깡패인 주인공(임창정)이 철거동의서를 받기 위해 철거예정지에 들어왔다가, 이곳의 아이들과 여성복서와 친해지는 과정을 코믹의 축으로 삼으며, 가난과 철거의 참상을 담는다. 아이들과 노인의 밥상머리위로 날아드는 포클레인이나 무심하게 제 몸에 불을 붙이는 아주머니에서 보듯이, 영화는 철저하게 철거민의 관점에서 재개발의 문제를 바라보며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슬픔과 분노를 관객들에게 대면시킨다. <스카우트>(2007)는 선동렬 선수를 ‘스카우트’하려는 대학직원(임창정)의 좌충우돌을 그린 코미디이지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개인적 해석을 담은 영화이다. 또 영화는 대학의 운동부가 총장실점거농성을 벌이는 학생들을 해산하는 폭력에 동원되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에 다시 현실화되고 있다.
사회적 문제의식을 코미디에 녹이는 것은 쉽지 않다. 빈부격차와 입시교육으로 황폐화된 학교를 그린 <울학교 이티>나 자살과 은둔형 외톨이를 조명한 <김씨 표류기>도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파 코미디가 되기엔 부족하였다. <이장과 군수>와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과도하지만 잘못된 정치의식으로 실패한 예들이다. <이장과 군수>는 지방정치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당시 노무현정권의 현실에 빗대려던 코미디로, 핵폐기장 건설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2003년도 부안사태를 왜곡시켰으며, 핵폐기장을 유치하려는 군수를 선으로 보고 반대세력을 뭉뚱그림으로써 당시 친노진영이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였던 현실정치의 대립구도를 피해 망상적으로 재현하는 패착을 낳았다. 이상적인 대통령상을 제시하였다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도 제왕적 대통령제나 외모·학벌·인맥에 좌우되는 엘리트주의, 여성대통령이 나와도 성별구조는 그대로인 모순을 노정하였다. 감독의 정치의식의 한계가 고스란히 배어나온 것이다. 이는 코미디 영화 한편을 만드는데도 충분하고 정확한 사회인식이 필수임을 역설하는 예들이다. 사회파 코미디의 시도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동안, <과속스캔들>, <7급 공무원> 등 할리우드적 장르의 세련미로 세공한 코미디들이 크게 성공하였다.
그러던 중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출시는 신선하였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1번가의 기적>에서 다시 출발한 영화이다. ‘발생론적 흔적’도 공유한다. 3류 조폭 주인공을 축으로 그가 접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환기한다. 이번에는 ‘옆방 세입자’ 취업준비생을 통해 청년실업 문제를 다룬다. 그녀(정유미)는 지방대 전산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석사까지 마쳤으나 고향에는 경리직 밖에 없다. 전공을 살릴 일자리를 찾아 상경하였지만, ‘지잡대’ 출신이란 이유로 면접 기회조차 없다. 간신히 얻은 면접에 성심으로 임하지만, 실력을 보여줄 질문한번 받지 못한 채 조롱당하기 일쑤이며, 성희롱까지 당한다. 그녀의 꿈은 고사 직전이며, 불안과 우울 속에 반 지하 셋방에서 빈속에 영양제만 먹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진다. (최고은 사태는 이미 예견되었다.) 그녀는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3류 조폭과 나란히 놓인 도시빈민이며,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 없이 방치된 독거인구이고, 편의점 알바로 시급을 버는 88만원 세대이다. 영화는 박중훈의 입을 통하여 “프랑스 애들은 막 폭동 일으키고 난리던데, 우리나라 애들은 너무 착해서 다 지들 탓 인줄 알아요.” 라며 이들에게 충고한다. 영화는 3류 조폭의 희생으로 그녀에게 제대로 된 면접의 기회가 주어지고, 공정경쟁으로 그녀가 사회에 진입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지금의 오디션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에게 우리사회와 기성세대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엔딩이다.
<방가?방가!>는 청년실업의 관점에서 이주노동의 문제를 본다. 영화는 외국인노동자로 위장취업한 주인공을 통해, 이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고발하며, 한국의 노동계급에게 이들과 차이를 넘어 연대할 것을 촉구한다. ‘지잡대’ 출신에 후진 외모로 취업시장에서 밀려난 주인공은 이주노동자로 취업해 차별을 몸소 겪으며, 그들의 부당함을 항변하는 활동가(?)가 된다. 그는 가르친 한국어 욕과 노래는 이들이 ‘말하는 주체’이자, 우리와 같은 감정과 사고를 지닌 존재임을 일깨운다. 영화는 분열된 주인공의 정체성을 통해, ‘왜 같은 밥 먹고, 같은 일 하는데 외국인 노동자라고 차별받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반문하며, 내·외국인 가르는 차이가 비본질적임을 환기시킨다. 클라이막스에서 그들은 연습하던 <찬찬찬>이 아니라 그들 나라의 노래를 부르며, 영화는 관객에게 노래를 경청시킨다. 영화는 이들이 한국인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에 머물지 않고, 그들의 다름에 주목하고 그들의 노래에 귀를 열어야함을 일깨운다. 또한 베트남여성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들에게 ‘나는 한국인입니다’ 대신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를 가르치는 것을 통해, 한국인과의 동일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인과 우애를 나누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너희가 완전히 한국인과 같아진다면 받아들여 줄 수 있다’는 동화와 관용의 태도가 아니라, 타자의 다름을 환대하는 태도가 진정한 다문화주의임을 역설한다.
<불량남녀>는 빚 독촉하는 카드사 직원과 채무자가 싸우다 정드는 로맨틱 코미디로, ‘선진금융사회’의 실상을 보여준다. 빚 독촉으로 맺어진 관계가 처음은 아니다. <투 가이즈>에선 빚 받으러 쫓고 쫓기던 두 남자는 의기투합하여 산업스파이를 잡았고, <멋진 하루>의 헤어진 연인은 빚 받으러 재회하였다. 하지만 <투 가이즈>의 빚은 사채였고, <멋진 하루>의 빚은 개인채무였던 반면, <불량남녀>의 빚은 카드빚이다. 이게 뭐 대수냐고? 영화는 조폭도 아닌 대기업 직원이 제 돈도 아닌 “남의 빚 갚으라고 중간에서 전화질”해대는 것이 정상노동인 사회를 고발한다. 그녀 역시 채무자로 고통을 공감하지만, 팀장의 득달같은 지시를 내면화하여 30분마다 전화질이다. 일이 쉽진 않다. 분노 섞인 욕설과 딱한 사정도 받아쳐야 하고, 성희롱에도 의연해야하는 냉혈감정노동이다. 상시적 빚 독촉으로 일상 업무를 할 수 없는 채무자는 “사람을 칼로 찔러야만 살인이냐? 당신 목소리는 칼보다 더해”라 말한다. 이런 살인적인 빚 독촉이 일상다반사이고, 금융대기업에 의한 합법적이고 체계적인 산업이다. 말끝마다 “고객님~”하며 깍듯이 응대하는 감정노동자와 신경쇠약 직전으로 치닫는 채무자의 고통 뒤에, 손안대고 코풀며 고리대로 매초마다 불어나는 금융자본이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카드회사의 번듯한 건물과 피 같은 돈을 다달이 뽑아가는 ATM 단말기만 보일 뿐이다.
<위험한 상견례>는 지역감정이라는 까다로운 소재를 <가문의 영광>식의 혼인빙자(?)코미디에 녹인 영화이다. 영화는 지역감정이 가장 극심했던 8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쳐 얻어낸 대통령직선제가 양김의 분열로 ‘죽 쑤어 개 준 꼴’이 되었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상흔은 청문회를 통해 터져 나왔지만 권좌엔 여전히 ‘개’가 앉아있는 상황에서, 오직 프로야구만이 대중의 울분을 실어 나르던 그 때 말이다. 그러나 지역감정은 과거지사가 아니다. 지금은 뒤집힌 출산정책소동을 그린 <잘살아보세>가 과거풍속코미디인 반면, <위험한 상견례>가 사회파 코미디인 것은 지역감정이 여전히 현실정당지지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광주남자가 부산의 유지인 여자 집에 결혼승낙을 받기 위해 서울말을 익히는 것은 리얼리티를 지닌다. 나아가 ‘벌교 꼬막아가씨’였던 김수미가 결혼생활 내내 서울여자의 가면극을 하며 살았다는 것은 찡한 충격을 안긴다. 영화는 지역문제 이외에 순정만화라는 기표를 통해 탈 젠더적 취향의 정체성을 말한다. <위험한 상견례>는 숨겨진 정체성에 관한 영화이자, 동일성의 틈에 관한 영화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남성과 여성의 두 진영 내부는 완전히 동일해 보이지만, 그들 내부엔 틈이 있다. 김수미나 다홍오빠 ‘현지님’ 등이 바로 그 틈이다. 영화는 그 틈으로 인해 공고한 두 진영 간의 대립이 사실은 관념에 의해 조작된 허구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아울러 그 틈을 드러내고 틈들 사이에 홈을 만들어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대립을 와해시키고 화해로 나아가는 길을 암시한다.
<수상한 고객들>은 사회적 타살이라 할 수 있는 빈곤자살을 다룬다. <1번가의 기적>과 비슷한 짜임으로, 보험설계사(류승범)가 보험금 지급을 막기 위해 고객의 자살을 막으러 동분서주하다가 이들 삶에 연루된다. 영화는 시작과 더불어 몇 만원 때문에 연쇄충돌사고가 빚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두 명이 죽고 관련자들은 생명보험에 든다. 죽음에 경각심이 들어서가 아니다. 이들은 보험금을 남기기 위해 2년간 보험료를 내고 자살할 생각이다. 이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자살기도병력이 있다. 달동네 사는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는 혼자 아이 넷을 키워야하고, 틱 장애가 있는 청년은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고, 밤무대 여가수는 사채 빚을 피해 동생과 함께 한강둔치 버스에 산다. 이들에게 희망은 사치이고, 삶은 보험금과 맞바꾸고픈 무의미한 시간이다. 영화는 자살을 막으려는 보험설계사를 통하여 보험의 의미를 되묻는다. 원래 보험은 사회적 안전망의 욕구에서 출발하였지만, 삶이 아닌 죽음을 지향하며, 관계가 아닌 돈이 최종물이다. 보험의 혜택은 죽어서 받는 돈(죽은 노동)이지, 삶을 지탱하는 인간들의 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보험은 삶을 죽음으로 바꾸어 스스로 돈이 되려는 자살자를 막지 못한다. 그런데 보험설계사의 산 노동이 그들에게 삶을 선사한다. 그런데 그 일은 보험금지급을 막으려는 보험설계사의 몫이 아니라, 공동체의 손실을 막으려는 친구, 이웃, 사회복지사, 아니 사회구성원 전체의 몫이다. 영화가 첫 장면에서 보듯이 우리의 삶은 무수히 연결되어있지만, 그 연결은 죽음의 순간에만 보인다. 영화는 보험이라는 금융자본의 형식을 빌어 사회적 관계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웃음을 통해 곱씹게 해주는 사회파 코미디의 흐름은 반갑다. 더 많은 사회파 코미디의 등장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