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독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 홍진

“밥은 잘 먹고?”

“네, 할머니도 건강하시죠?”

“근데 거기 중국에서 돼지고기 먹지 말라더라.”

가끔 걸려오는 할머니의 안부전화에는 꼭 음식 관련 최신 뉴스가 끼어있다. 한국 사람들의 팍팍한 일상에, 그나마 여기가 낫다는 한줄기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중국발 음식파동 뉴스가 현지 소식을 자상하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잡는 멜라닌 우유에 공산품 달걀, 한 그릇에 비닐봉지 열 개 분량의 플라스틱을 함유했다는 국수며 화학사료 돼지고기까지 믿고 먹을 수 없는 금지 품목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니 중국에서 굶어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 라며 탄식도 해 보지만, 무엇이든 대충 주워 먹고 보는 나에게는 좀 낯간지러운 대사긴 하다. 아무튼, 중국에서 이 다양한 위험 식품들을 일컫는 방법은 간단하다. 독우유, 독돼지. 독이다 독毒.

더 빨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우유에 물을 타고, 성분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무언가를 집어넣는다. 더 빨리 가기 위해, 더 많은 전기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자동차나 핵발전소처럼 음식도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벽돌 고춧가루와 공업용 기름으로 튀겨낸 라면에서부터 미국의 유전자 조작식품과 광우병 소고기까지, 자본주의의 먹거리들은 같은 욕망에서 비롯된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너무나 거칠어서 더 무서워 보이는 중국산 조립식 음식들도 조만간 좀 더 세련되게,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의 위험으로 진화할 것이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야광 돼지고기

위험한 음식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치사하게 혼자 비싼 음식을 사 먹으면 된다. 근 몇 년 사이 중국의 슈퍼에도 가격대가 다른 녹색 식품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계란 하나하나에까지 고급스런 녹색 스티커가 붙어있다. 인민들이 좋아하는 컨더지肯德基 (KFC)에서는 아침메뉴로 안전유타오安全油条(기름에 튀긴 길다란 밀가루빵)를 판다. 이런 싸가지 없는 작명이 있나. 그럼 길거리에서 파는 건 몽땅 위험 유타오? 정크 푸드의 대명사 마이당라오麦当劳 (맥도널드)에서는 ‘안전한 닭고기로 만든 녹색 햄버거’라는 약간 더 비싼 아이템을 내걸어 자사 메뉴판의 다른 햄버거들을 싸그리 소외시키는 유머러스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돈 있는 몇몇 특정 계층의 안전으로, 혹은 녹색 햄버거라는 환상을 구성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진 않는다. 그렇기에, 끊이지 않는 중국의 음식 파동은 탄터忐忑 라는 사회 현상을 낳고 있다. 마음心이 오르락 내리락上下 하는 글자의 싱숭생숭한 생김새가 말해 주듯이, ‘불안하다’, ‘안절부절 못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지금 각종 사회적 이슈로 불안한 인민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단골 표제어이다.

소금 사재기 광풍이 몰아친 베이징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배출해내는 폐기물, 혹은 부산물들 앞에서, 인민들은 걱정하는 행위 자체를 문제의 해결책으로 착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방사능이 유출되었다는 소식 직후의 어처구니없는 소금 사재기나, 흰 옷을 입는 것으로 쉬운 안도를 구하듯이 말이다. 격한 반응과 빠른 망각 속에서 이슈들은 그저 빠른 속도로 흘러가버리고 공포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러나 음식파동, 혹은 갖가지 괴담의 형식으로만 드러나는 공포의 원인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빠른 경제 성장이 만들어내는 압력과 불안하고 막연한 미래 앞에서 우리는 이미 자본의 언어로 말하고 삶을 영위하며, 자본과 같은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다롄大连 인근에 건설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홍옌허红沿河 핵발전소. 참고로 지진대 위에 있다

귀주 출신의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인 공린나 龚琳娜 는 중국의 전통 음악 발성법을 응용한 《탄터忐忑》로 2010년의 인터넷을 평정했다. 가사가 없이 오르락 내리락 기이한 발음들로만 이루어진 이 독특한 노래는 일면의 예술성으로, 울며 웃으며, 자신이 무엇을 무서워하는 지 모르는 채 그저 불안해하고 있는 싱숭생숭한 중국 인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http://v.youku.com/v_show/id_XMjMzNjc1OTc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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