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편의점>

- 김민수(청년유니온)

밤 11시, 피곤한 하루 일과에 지친 이들이 이 쯤에서 정리하자와, 딱 한 잔만 더 먹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어스름. 대학교 상권을 끼고 위치한 전철역 언저리의 어느 편의점에서 나의 업무는 시작 된다. 방금까지 술 마시고 웃고 떠들던 유니온 동료들과의 여흥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어찌하랴. 먹고 살려면 출근 해야지. – 그렇다. 나는 야간 편의점 알바생이다.

앞 타임에 복무(아니, 근무)하던 파트타이머와 바통 터치를 한 뒤, 곧바로 경계(아니, 근무)태세에 들어간다. 네온사인 조명 아래 술잔 기울이던 이들이, 은은한 형광 물질을 내뿜는 편의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충동 구매하러 들어 올 시간이니, 초장부터 바쁘게 돌아간다. 뻐근한 목을 몇 바퀴 돌릴 때 즈음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비틀비틀 들어온다. 중간고사도 끝났겠다, 신나게 한 잔 씩 걸친 모양이다. 음료수, 아이스크림 따위의 차가운 물질들을 각각 집고 카운터에 올려 놓으니, 제일 나이 많아 보이는 친구가 카드를 꺼낸다. 대학교에서 정상적인(?) 선배노릇을 하려면 등골이 휘겠다는 장난스런 생각이 스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친구들이 교양과목으로 ‘상호존중’ 수업을 듣는지, 헤롱거리는 고갯짓과 함께 수고하시라는 말들을 남긴 채 우루루 출입문으로 향한다. 아직 휴학 기간이 남아있지만, 나의 정체성이기도 한 대학생들의 지친 해후를 보고 있자니 맴이 싱숭생숭 거린다. 저 친구들은 미친 학자금과 생활비를 어떻게 감당하며, 취업이라는 무시무시한 관문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을까. 가카의 묘안대로, ‘눈높이를 낮추고, 소비를 줄이’면서 잘들 살아야 할텐데. -야밤에 혼자 일하다보니 상념만 늘었다. 제 코가 석 자이면서.

몇 무리의 대학생들, 간간히 들어오는 커플들, 근처에서 회식 마치고 컨디션 구입하러 오는 직장인, 고시원에 박혀 있다가 담배 구입하러 오는 청춘들을 맞이하며 바코드와 씨름을 벌이다 보면, 어느덧 찬란한 심야 장사가 마무리 되는 이른 새벽이다. 이 즈음 되어 찾아오는 손님들은, 앞선 이들과 조금 다른 그룹이다.

‘대랭~’

다이소에서 구입한 듯한 허술한 방울소리의 울림이 손님의 출입을 알린다. 화려하게 차려 입은 두 명의 여성이다. 차림새만으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이 시간에 저런 복장으로 방문하는 이들은 십중팔구 근처 술집이나 토크바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이다. 술이 올라왔다 못해 떡이 된 이들은 지친 몸짓으로 컵라면을 각각 계산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새벽 4시는 수면 중 공복이 절정에 다다르는 시간이겠지만, 이들에게는 저녁 식사 시간이다. 알콜과 니코틴이 범벅이 된 유흥의 장에서, 온갖 감정노동과 희롱에 시달렸을 이들의 허기를 달래 줄 존재가 고작 컵라면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안 좋다. 분말 스프를 끓는 물로 덮고 나서야, 하루의 상처를 치유할 ‘수다’를 나눈다. (남성들에게는 쉽게 발현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야 말로, 야만의 시대와 맞서는 여성들의 힘이 아닐까.) 희롱에 노출되고, 함께 술을 나누며, 감정적 유희를 선사하여, 남성 고객들이 더 많은 술(특히 데낄라)을 주문하게 하는 역량에 따라 종업원의 ‘등급’(돼지고기냐?)이 나뉜다는 사실은, 이들의 존재를 통해 흘려들을 수 있었다.

완연한 봄기운에 힘입어 일찍 기상하는 해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새벽 6시. 나에게는 퇴근을 목전에 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출근을 재촉하는 시간이다. 밀리터리 모자와 투쟁이란 단어를 연상시키는 조끼를 걸쳐 입은 세 명의 남성들이 방문한다. 무언가에 쫒기는 발걸음으로 컵라면과 싸구려 김밥을 집어서 계산한다. 필히,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인부들이다. 이른 기상시간을 조금이라도 미뤄보고자 애쓰다보면, 번듯한 식사 시간이 사라진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의 젓가락질은 애잔하다. 코와 입으로 동시에 라면을 섭취한 듯한 시간이 흐르고 인부들은 발길을 재촉한다. 빨리감기를 누른 듯한 남성들의 퇴장 이후 오래지 않아 오전 파트타이머가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도착하고, 나의 편의점 일과는 막을 내린다.

야간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고단한 일과는,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나와 너의 고단함과 우리의 슬픔이 공존하는 편의점 한 켠에서, 오늘도 나는 바코드를 읽힌다.

응답 1개

  1. 지나가다말하길

    누군가에게는 밤이 고단함과 슬픔의 시작이로군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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