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무한독전

돈 쓰지 않고 신나게 노는 법- 놀이와 공부 사이

- 이경

돈을 쓰면서 노는 건 재미가 없어!

몇 달 전, 친구들과 함께 음악 밴드를 만들어보겠다며 곡 선정을 두고 한참 고민했던 적이 있다.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자, 노래방을 가면 결정이 되지 않을까 해서 거금 2만원(!)을 들여 노래방에 갔다. 헌데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있는 서로의 모습이 너무나 어색했다! 어떤 곡을 불러도 어색했고 신곡을 몰라 옛노래들만 불러댔다. 노래방을 나와서 다들 입을 모았다. “역시 돈을 쓰면서 노는 건 재미가 없어!”

놀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노는 것’이라고 이해를 한다면 어른들의 놀이에는 돈이 빠질 수가 없다. 잘 놀기 위해서도 돈이 있어야 한다. 친구나 연인을 만날 때 밥집, 카페, 술집, 당구장, 노래방 등에서 돈을 쓸 수밖에 없고, 연인과 단 둘이 있기 위해 모텔, 펜션, 렌트, 기름 값 등에서 나가는 지출이 상당하다. 겨울에 스키장을 가거나 ‘놀이’의 최고봉인 ‘여행’을 가려면 큰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시대에 돈을 쓰지 않고 신나게 놀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돈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방법과 이러한 놀이를 도와준 친구들도 소개하면서 말이다.

책을 읽다 거리로 … 책과 당신의 □□□을 바꿔주세요

재작년, 세계의 절대적 빈곤에 대해 고민하던 글로벌한(!) 청년들이 푼돈을 보태어 옥탑방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다른 이들의 빈곤을 외치기에는 스스로의 미래와 꿈이 더 빈곤했기에 ‘나만의 길’을 함께 찾자며 공간으로 모여들었다. 혼자만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밥도 지으면서 옥탑방은 방 2칸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다. 매달 내는 월세가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랐지만 넓어진 집의 크기만큼 함께 삶을 나누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책을 보고, 글을 쓰고, 텃밭도 가꾸고, 기타도 배운다.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 뭔가를 하면 더 재밌고 자극이 된다. 특히 책을 같이 보다 거리로 뛰쳐나가 한판 진득하게 놀다 오기도 한다.

“가치란 무엇인가… 가치는 언제나 삶의 의미를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사람들이 삶으로부터 정당하게 희망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개념으로 규정되어 있던 것이다.… 클록혼은 가치가 단순히 추상적인 삶의 철학이 아니라 사람들의 실질적인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개념들이라고 생각했다.”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29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연구한 글을 읽으며 우린 현재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는 ‘돈’에 대해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돈’이 아니라면 어떤 것을 가치있게 보는지 묻고 대답을 듣고 싶었다. 요즘은 “모든 물건과 대지, 인간의 능력과 관계를 포함해 지구상의 모든 것을 하나의 단일한 가치 기준에 종속시키는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획일적인 평가 시스템”(<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19면)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아닌가.

가치에 대한 물음을 안고 거리로 나섰다. 돈 대신 다른 가치들을 교환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걸까. 각자 가지고 온 책을 내어놓고는 사람들에게 “책과 당신의 □□□을 바꿔주세요. 꼭 돈이 아니어도 됩니다.”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콩고물을 묻힌 떡을 사람들 입에 넣어주었다. 지나가다 얼떨결에 떡을 입에 넣은 사람, 젊은 사람들이 뭐하나 궁금해서 계속 지켜보는 아저씨들, 자신들도 떡을 만들고 싶다며 떡 만드는 과정을 물어보는 아가씨들. 많은 사람들이 “떡 먹고 가세요”라는 구호를 듣고는 몰려들었다. 그리고는 책을 한 권씩 들고는 얼마냐고 물었다.

“돈이 많으시면 돈으로 내셔도 되구요, 실은 돈보다 책의 가치에 맞는 물건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무엇을 내야할지 망설이다 가방을 뒤적거려 뭐라도 손에 쥐어주었다. 돈을 못줘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이날 책과 바꾼 것들의 수확은 돈 1만원, 빨간색 우산, 아이스티 2잔, 과자 3봉지, 담배 2개비, 사탕 1봉지, 물 1통이다! 이외에도 같이 떡을 만들고, 길에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만든 노래를 함께 만든 지나가는 행인들 모두가 우리에겐 선물이었다.

길에서 놀자

놀기 위해 돈을 뿌리고 다녔던 그동안의 경험이 무색해졌다. 이렇게 간단한걸. 집에서 불린 쌀에 물을 좀 더 넣고 만들어 가져오고, 안 읽는 책을 몇 권씩 가져와 늘어놓고 길에서 그저 놀았을 뿐인데, 이것이 이렇게나 재밌다니! 이후로도 친구들과 함께 명동성당 앞에서 “우리에게 배움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등록금 성토 대회도 하고, 흑석동 시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힘내시라며 동네 떠나갈 듯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 ‘놀고’ 있다.

“욕망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삭제된 이런 현실에서 시장 논리의 주창자들은 시장 논리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식, 즉 개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정작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들기 위해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이다.”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551면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문을 넣지 않아도, 노래방 시간 늘려달라고 애교 어린 미소를 날리지 않아도, 이번엔 내가 쏘겠다며 부담스러운 카드질을 하지 않더라도 놀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우선 친구 몇몇과 함께 길에 돗자리부터 펴시라! 카페나 노래방, 술집이 아닌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에 앉아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읽지 않거나 입지 않는 옷을 펼쳐 놓기만 하면 저절로 놀이판이 된다. 거기에 나름 선호하는 “4대강 반대” 또는 “등록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같은 구호를 슬그머니 적어 놓으면 더 좋다.

“본래 이들(아프리카 흑인 부족, 개발로 인해 피해 입은 이주민, 자본주의 시대에 보호막 없이 던져진 모든 존재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가 심어주던 동기부여나 삶과 행동의 목적 따위는 이제 더 이상 희생과 노력을 바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문제는 문화적 진공 속에서의 삶이란 결코 삶이 될 수 없다는 점에 기꺼이 동의하는 이들조차도, 경제적인 필요와 욕구만 생겨난다면 그것으로 문화적 공백도 저절로 메워지고 아무리 끔찍한 상태에서도 삶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거대한 전환> 中

폴라니는 “문화적 환경이 붕괴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했다. ‘논다’라고 했을 때 떠올려 지는 것이 몇 가지 없다는 것이 가장 걱정이 되는 지점이다. 어린 시절에 작은 돌 몇 개, 고무줄 하나로도 재미나게 놀았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술과 성性이 아니면 놀이가 없어졌다. 자기계발과 가족에 투여되는 시간 외에는 좀처럼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큰 한 몫을 하지만 잘 노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폴라니가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 우리는 뻥뻥 뚫린 ‘문화적 공백’을 잘 노는 것으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잘 노는 게, 잘 사는 거야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라는 책이 있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른들‘도’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라고 말이다. 며칠 전, 미래에 대한 고민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에 ‘너무 놀아서’ 조금은 걱정된다는 내 말에 친구가 명언을 했다. “잘 노는 게, 잘 사는 거야.” 열정으로 가득 찬 일상도 가치있고, 노는 것에 온전히 시간을 집중하는 이들의 일상도 가치있는 두루두루 다양한 사회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놀아본다. 어른들도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를 중얼거리며 ^^

응답 6개

  1. 심심풀이말하길

    오오 저도 저런거 있었으면 좋겠어요

    파티원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한건가요 ㅋㅋㅋ

  2. cman말하길

    잘 논다는 것의 의미가 왜곡되고 퇴색한 사회입니다. 논다는 말이 게으름과 동일시되거나 모범스럽지 않다는 의미로 굳어져가는 우리 사회의 일향성과 경직성을 고민하고 걱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빛나지 않지만 열심히 정상으로 돌려보려는 시도가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꾸벅!

  3. 어린왕자말하길

    돈 없이는 사람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는데 놀아서 좋고 공부해서 좋고 서로 어울려서 좋고 참 좋은
    아이디어 입니다.

  4. 노세노세말하길

    같이 하는 친구들은 어디서 만나셨어요? 어떻게 함께 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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