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쥐 그래피티3차 공판기 – 와우 개콘 돋는 밤!

- 황진미

4월 22일 서울 지방법원 5시, G20포스터 쥐그림 사건의 3차 공판을 보러갔다. 쓰나미급 연예 스캔들이 터진 마당에, 과거 서태지의 열혈 팬이자, 정우성의 기럭지를 몹시도 사랑하는 영화인의 한사람으로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기사를 클릭질 하거나 지인과 전화로 수다를 떨며 깜놀 가슴을 맛사지하고 있을 시간에 내가 친히 재판정까지 나선 이유는, 피고가 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서태지-이지아 커플도 아니고, 듣보잡 부부가 못 밝힐게 뭐 있나. 그렇다, 쥐 그림 박정수와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법적·사실적 부부이다.

앞서 두 번의 공판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양측 심문과 구형이 3차 공판으로 미뤄진 상태여서 약간의 기대가 있긴 했지만, 이런 불세출의 쇼를 구경할 줄 어찌 알았으랴! 80분이 넘게 펼쳐진 이번 공판은 코미디 애호가인 나에겐 빅 재미를 선사한 개그 콘서트 번외편 공개방송이자, 최고의 코미디를 보면서도 절대 웃으면 안 되는 변태스러운 규칙으로 고문당하는 흔치 않은 체험이었다.

출석확인과 더불어 검사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피고는 작년 10월 30일 롯데백화점 앞에서 G20 홍보물을 스프레이 등으로 훼손한 일이 있나요?” 하고 추상같이 물으며, 압수된 증거물을 떡하니 책상 위에 올려놓으신다. 인터넷 화면으로 익히 보아왔던 그 그림. 나도 실물로 보긴 처음이다. 오랜만에 실물크기로 보니 아우라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푸핫” 웃음이 터진다. 평소 시사회에서 약간의 코믹장면만 나와도 어김없이 큰 웃음을 터뜨려 다른 관객의 빈축을 사거나, 제작진들에겐 회심의 미소를 품게 하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어쩔 도리가 없는 반사작용이었다. 판사가 근엄하게 주의를 주신다. “재판정에선 웃으면 안되요.” 아차, 잘못하다간 법정소란 혐의로 감치처분을 받겠구나, 싶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방귀참기보다 힘들다. 그 시각 피고석의 박정수는 자신의 답변보다 내가 또 웃어서 감치당하면 ‘애는 누가 보나’ 조마조마 했더란다.

“피고는 000, 000 등과 더불어 사전에 모의한 일이 있습니까?” “모의라기보다는 제가 그라피티 작업을 할 거라는 말을 한 적은 있습니다.” “피고 박정수는 000, 000 등과 더불어, 치밀한 사전 준비를 통하여 야간에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이, 세계정상을 맞이하는 G20행사에 계획적, 조직적으로 여러 장의 포스터에 쥐와 같이 불길한 존재를 그려 넣었습니다. 범행도중 경찰에게 발각되자 마분지 그림틀, 스프레이 통, 장갑 등 범행도구 일체를 두고 도주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이것은 통상적인 예술행위가 아니라 조직적 범죄행위에 해당됩니다.” 지루한 지난 줄거리 반복. 아, 검사가 생각하기에도 쥐는 불길한 존재가 맞구나. 불길해…그나저나 범행 도구 한번 무시무시하구나. 뭐 그런 잡생각을 하다가 검사 옆 의자를 보니 서류 뭉치가 한 상자이다. 저따위 맥 빠진 심문을 준비하느라, 산더미 같은 서류를 읽었을 너도 참 욕본다, 저걸 일일이 만든 사무직 노동자는 또 얼마나 고달팠을까 생각하니, 원수를 사랑하고픈 마음이 절로 솟는다.

이어지는 변호인 측 심문. 의외의 사진을 스크린에 비추어 보여준다. “피고 박정수는 평소에도 주위의 생활공간을 버려진 물건들을 활용하여 꾸미는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구실 주위의 작은 놀이터에 피고가 만들어 놓은 것들입니다. 피고, 이건 무슨 의미로 만든 거죠?” 화면엔 박정수가 요즘 꼭두새벽에 일어나 공들여 가꾸고 있는 일명 ‘갤러리 텃밭’이 나온다. 피고는 변호사의 질문을 받자, 여유작약 작품 설명을 해댄다. “저것은 아이들이 펜스를 위험하게 넘어다는 것을 막기 위해 여수장우중문 시를 패러디하여…..저것은 버려진 변기에 수련을 심은 것으로 뒤상의 변기에서 착안하여 ‘마농의 샘’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며…..저것은 남자청바지에 흙을 채워 고추를 심고 ‘남자의 부푼 꿈’이라고 제목을 붙여…저것과 한 쌍이 되는 작품으로…여자 청바지에 토마토를 심고 ‘여자의 열매’라고 제목을…그러니까 남자의 꿈이 열매를 맺어서 …” 이거 뭥미. 웬 아기자기 음담패설 돋는 작품 설명회인가. 그런데 또 듣고 있자니, 묘하게 몰입되네. 어디 또 해봐 싶은데 변호사가 대뜸 끊고, “이런 작업에 대해 최근 구청에서 조사가 나왔지요?” 묻는다. “네…동네의 소외된 아이들과 같이 작업을 하여,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고 정서에도 도움이 되는데, 구청에서 허가되지 않은 설치물이라 위험하다며 당장 철거를 하라고 해서, 제가 담당 공무원을 만나…”

“다시 포스터로 돌아가서요, 저기에 왜 쥐를 그려 넣은 거죠?” “그라피티 작가 중에 유명한 뱅크시 작품의 상당수가 쥐그림입니다. 그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고, 도안도 쉽게 따왔습니다. 쥐는 또 G20과 발음이 같고요. 당시 G20행사를 준비하면서, 정부가 88올림픽 때처럼, 외국인을 만나면 인사를 하라느니 40조의 국가수익이 난다고 하며 마치 저 행사만 끝나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양 너무 엄숙하게 홍보하고 있었고, 저는 그에 대해 제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내어 풍자적인 의미로 가필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에 해당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요?” “그래피티 작업이 일종의 서브컬처로, 길거리 비보잉처럼 경찰과 마주치는 일이 생길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훈방 정도로 처리될 줄 알았지,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70시간이나 유치장에 구금이 되고, 이렇게 재판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공공물을 훼손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공물 즉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재산인 저 포스터에 시민의 일원으로서 일종의 참여를 한 것입니다.”

검사는 이런 분위기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아까 보다 훨씬 높아진 언성으로 묻는다. “놀이터에 화분을 설치했다 치울 수 있는 것과는 달리, 포스터의 쥐 그림은 분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명백한 훼손이 아닙니까? 그리고 놀이터에 넘어 다니지 말라는 의미의 설치물을 만드는 것은 놀이터의 취지에 맞지만, 이 포스터에 불경한 쥐를 그려 넣은 것은 포스터의 취지에 반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주민의 신고로 체포되었는데, 그들이 보기에도 이것은 예술이 아니라 범죄라는 증명이지 않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고 득의양양해하는 검사와는 달리 피고의 답변은 시큰둥하다. “글쎄요. 관의 입장은 둘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던데요. 이것은 관에서 설치하고 홍보하는 것이니, 민은 이의를 제기하거나 어떠한 다른 것도 덧붙이지 말고 그냥 설치해 준대로 이용하고 홍보하는 대로 따르라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 제 나름의 의견을 유머러스한 예술의 방식으로 표현하여 시민적 참여를 한 것이구요. 그리고 당시 신고한 주민이 시민사회 전체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검사의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 했는지 거의 샤우팅 수준으로 외쳐댔다. “피고는 예술을 운운하면서, 예술행위를 법보다 우위에 놓인 새로운 입법자로 간주하며, 불법적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하였습니다. 그리곤 뱅크시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뭐 이런 뜻의 말인데, 검사 스스로 말을 하다고 꼬여서, 알아듣기 곤란한 이상한 문장이 되어버렸다. 유감스럽게도 그 괴상한 비문을 정확히 옮기진 못하겠다.) “무슨 말씀이신지…저는 예술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는 다른 차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법의 기준이 아닌 시민 사회적 기준에서 용인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한 2년전 엔 공영방송 KBS에서 그래피티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구요. 서울시 디자인사업을 홍보하는 포스터에 재미있게 말풍선을 집어넣은 친구들에게도 천만원의 벌금을 물리겠다는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처벌되지 않았던 예도 있구요. 그리고 제가 뱅크시의 권위에 기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요, 뱅크시가 영국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그래피티 작가이긴 하지만, 기존 사회나 예술계에 어떤 권위를 가진 존재는 아니고요. 저는 다만 뱅크시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저의 작업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이때 판사가 개입하였다. “피고가 쥐를 그려넣음으로써 저 포스터를 원래 그린 사람의 예술작업이 침해됐다는 생각은 안 하나요? 그리고 피고가 쥐를 그려 넣은 것처럼, 또 누군가는 저기에 코끼리를 그려 넣는다거나 하면 본래의 포스터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어 버릴 텐데, 그것은 공공물의 훼손이 된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놀이터에도 피고처럼 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무엇인가를 설치하겠다고 하면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겠어요? 그리고 뱅크시가 아직도 익명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요?” 판사의 질문은 나름 신선했다.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라고 말하던 칸트 식으로 사고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판사가 말한 상황을 상상해보더라도 과히 나쁠 것 같진 않다. 물론 그런 장이 열린다고 해서 모두가 뭔가를 그려 넣거나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능력이나 욕구가 되는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할 것이요, 적당한 자정적 도태과정을 거쳐 걸러질 것이다. 왜 제재가 없으면 무질서가 온 세계를 뒤덮을 것이라 생각하지? 왜 질서는 관의 강제에 의해서만 유지된다고 생각하지? 그러니까 법의 논리는 ‘공공(public)=관(government)’으로 사고하는 것이고, 박정수가 쥐그림이나 갤러리 텃밭을 통해 제기하는 문제는 공공을 시민자율(civil)의 차원에서 사고한다는 정치철학적 의미가 있구나 뭐 그런 상념에 빠져 있는데, 피고가 답변을 한다. “세계 최고의 경찰력과 CCTV를 보유한 영국에서 뱅크시가 계속 활동을 하는 것은, 영국사회가 그를 잡지 못해서가 아니라 잡지 않기 때문입니다. 뱅크시가 익명을 유지하는 것은 범죄성 때문이 아니라, 그래피티라는 작업이 지닌 게릴라적인 성격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고, 또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소유하고 판매하는 식의 작가가 되길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으로 작품을 시민사회에 돌려주고 싶어 하는 것이고, 또 쓸데없는 유명세로 성가심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겠지요.” 오호, 내 남편이 언제 뱅크시에 대해 저렇게 공부를 많이 했나, 신통방통해 하는 찰라 검사가 최대한 언성을 높여 말한다. 이 법정에서 자꾸만 뱅크시가 언급되는 것이 이상한 술수에 말려드는 느낌이 든다는 듯 아주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 포스터를 보십시오. 청사초롱은 예부터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쓰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 청사초롱을 마치 쥐가 들고 있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원래 포스터에는 누가 청사초롱을 들고 있는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누구여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G20대회를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국가의 번영을 이루겠다는 우리 국민들, 우리의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피고 박정수는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강탈하였습니다. 이런 피고인 박정수에게 징역 10개월을 구형합니다. 함께 범행을 사전에 모의하고 현장 부근에서 박정수와 연락을 취했던 피고 000에게는 징역 8개월을 구형합니다.” 검사는 목소리가 갈라져 음이탈이 될 정도로 열변을 토하였다. 손발이 오글거리면서도 뭔가 참 알 수 없는 감흥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뭐지? 쥐가 놓인 그 자리, 선진국으로 도약, 국가의 번영, 아이들의 꿈, 강탈, 그리고 뭐 뭐 징역 10개월? (말이면, 다 하냐?)

아, 검사는 정말로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믿는 척 연기를 하는 것인가. 본래부터 수사과정을 통해 악감이 쌓인 수사검사도 아니고, 수사검사가 올린 서류만 보고 공판을 하는 공판검사에게 저런 종류의 분노는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이데올로기적 확신? 그런데 검사는 지금 쥐그림이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는 논박을 하는 중 아니었나? 하지만 저 검사의 말보다 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말고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용납할 수 없으며 이를 표현하면 범법행위가 된다는 뜻? 와…저 장면을 그대로 찍어서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린다면 서태지 스캔들과 함께 검색어 순서를 다퉈 볼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 누군가 <100분 토론>에 시민논객으로라도 나와서 저런 논리와 말투로 웅변을 해댔다면 다음날 ‘병림픽 스타’로 급부상 했을텐데. 가만, 이걸 단편 극영화로 재현을 해보면 어떠려나. 그러면 윤성호 감독의 <우익소년 윤성호> 같은 블랙코미디가 되려나. 이런 장면을 장편 극영화에 삽입을 하면 어떨까. 누군가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 나 같은 평론가로부터 검사를 너무 유치하게 그림으로써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검사의 인격 문제로 환치시키며 논의를 저열하게 축소시켜버렸다며 욕 얻어먹기 딱 좋은 설정 아닌가. 역시 현실은 영화를 압도하는 구나. 뱅크시의 공공예술이 어떻고, 공공성과 시민적 참여가 어떻고 하는 수준 높은 예술적 정치적 담론이 이 자리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뻘소리였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러니까 여기는 G20으로 선진국이 되어보려 안달을 해대는 후진국 대한민국이 맞구나 하며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이었다.

판사가 “피고, 최후진술하세요.” 진행을 했다. “포스터에 대해서건 텃밭에 대해서건 제 행위에 대한 관의 반응은 한가지입니다. 국가가 하는 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주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은 행위가 징역 10개월에 해당된다니, 법 앞에 선 일반인으로서 몹시 당황스럽고…….겁이 납니다. 그렇다면…저는….이제……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잉?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앞으론 범법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반성인가, 아니면 너희가 그 따위이면 나도 그만 두겠다는 냉소인가? 내용상 반성인데, 말의 형식은 이상하게 삐친 것 같고 뭔가 달래거나 붙잡아야 될 것 같은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판사는 저 말을 반성으로 알아들으려나, 아니면 뭐 꼭 다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고…왜, 더 해보시지, 이거 섭섭한걸, 하고 받아들이려나.

선고는 5월 13일로 미루어졌다. 법정 바깥으로 나오니, 그동안 억지로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이들은 징역 10개월을 구형받았는데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웃긴 걸 웃지 못하게 하는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생체반응이 한참을 갔다. 우와. 저기서 일하는 속기사나 질서요원은 웃고 싶어서 어떻게 한다니. 복남씨 말씀에 참으면 병 된다는데. 검사는 어떻게 웃지도 않고 쥐그림을 똑바로 가리키며 “번영된 국가를 향한 아이들의 꿈을 강탈….” 어쩌고 하는 대사를 자기 확신에 찬 듯 말하며 심지어 완벽한 분노 크리를 탈 수 있을까? 웃기면서도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참 안됐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인 일인가. 웃자고 한 짓에 죽자고 매달리며, 그것도 벌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건에 한 상자 분량의 서류뭉치를 뒤적이며 날콩 씹는 쌩소리를 해대는 검사도 참 3D 업종이구나 싶은 측은지심이 밀려오는 것이다. 집에 오니 지하철 성 추행 현행범이 현직 판사라는 뉴스가 나온다. 이해가 갈 만도 하다. 그토록 인간의 성정을 억압한 작업환경에서 하루 종일 소외된 노동에 시달리며 오로지 법의 잣대 외에는 다른 가치를 생각지 못하는 판검사들이니, 욕망 역시 자연스럽게 발산되지 못하고 금기에 대한 일차적 위반에 집중되어, 퇴폐 성 접대를 받거나 지하철 성추행을 향하는 것이겠지. 과연 억압은 변태를 낳는구나.

60년대 고물상을 하다가 장물취득 혐의로 법정에 섰다는 나의 부모님은 판검사의 위엄에 감명을 받아, 천한 장사치로 살지 말고 판검사가 되라고 자식에게 가르치셨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어도, 발랄한 예술하며 살아라. 소외된 판검사 따위 될 생각 절대하지 말고.”

응답 4개

  1. 아침식사말하길

    세상이 그들 마음대로 그렇게 쉽게 휘청거리지 않을 겁니다.
    힘내십시오.

  2. 그저울처럼`말하길

    부끄러운 이나라의 현실- 저런 아이들을(검사) 만든 우리 학교- G20은 끝났건만 아직도 끝나지않은 이런 일들이 다시 한번 뇌를 차게 만들어줍니다. 5월 13일 얼마 남지 않았군요. 또 한편의 코메디를 기다리며 아울러 두분의 건승을 빕니다. 마음의 승리를 확실히 누리시기를….

  3. 이승대말하길

    재밌고 감명되고
    다음 소식도 기대됩니다

  4. cman말하길

    코미디가 반복되어 일상으로 굳어지고 장차 힘까지 가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비참하게 하고 죽기까지 밀어부치는 것을 계속 보아오고 용납하는 사회입니다. 상식을 무시하는 판검사와 권력기관을 어찌해야 할까 하는 걱정과 답답합이 있습니다. 또 우리 아이들을 그런 판검사가 되도록 가르쳐야 하는지도 혼란됩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지성과 양심이 더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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