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국사(國史)를 균열내는 국사(國史)의 가능성

- 오항녕

국사, 쇼! 쇼! 쇼!

4월 22일에 이런 보도가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사편찬위원회,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년 고교 입학생부터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환원한다는 내용의 ‘역사교육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사의 필수과목 전환 이유에 대해 정부는 학생들에게 역사의식을 강화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역사 왜곡에 대응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먼저 사실 확인부터. 2년 전, 2009년 12월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정부는 학습부담을 줄인다는 이유로 고교 ‘국사’를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꿨다. 하지만 교과부에 따르면 당시부터 지금까지 전국 2300여개 모든 고교에서 필수든 선택이든 한국사를 가르쳐 왔다. 따라서 이날 정부가 한국사를 필수로 다시 바꾼 것은 1년 4개월 전 한국사 교육과정 개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다보니, 교육계에선 학교 현장의 한국사 교육에는 변화가 없었는데 정부만 선택에서 필수로 왔다갔다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MB정부는 일관성이 있다. ‘일관성 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라는 일관성.

한편 2009 개정 교육과정 발표 때 교과부 차관은 ‘MB교육의 입안자’였던 이주호 현 교과부 장관이었다. 이쯤 되면 거의 붕어 수준의 기억력이다. 한국사를 선택으로 바꾼 뒤에도 교과부는 행정지도를 통해 전국 고교에서 한국사를 꼭 가르치도록 했다.(이럴 거면 왜 바꿨지?) 교과부 김 아무개 과장은, “현재 전국 2300여개 고교 중에서 한국사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는 한 곳도 없다.”고 밝혔다.(^^) 옆에 있던 집사람은 이렇게 정리했다. “오늘(22일) 교과부의 발표는 아무 의미 없어. 정부만 오락가락한 거지.”

국사, 경계 짓기 / 경계 지우기

대학 교양이나 고등학교 교과목에서 국사가 필수 아닌 선택이 될 때, ‘우리 역사학자’들은 한결같이 결연히 성명서 또는 칼럼을 통해 그 부당함을 천명해왔다. 안타깝게도 나는 조금 철이 든 뒤 국사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국사는 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대열에서 거리를 두는 중이다.

르낭이 <국민이란 무엇인가>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근대 국민국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기억을 창출한다.(이규수 옮김, <내셔널히스토리를 넘어서>(삼인, 1999)에 실린, 우카이 사토시, 「르낭의 망각 또는 ‘내셔널’과 ‘히스토리’의 관계」. 신지영 역, <주권의 너머에서>에 재수록) 국민국가의 기억, 국민국가의 국민이 가져야할 기억, 이것이 국사다. 고구려를 국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구려 사람들의 대부분이 말갈인이었다는 사실은 지워야 한다. 남북국 시대가 되기 위해 발해는 그 고구려의 유민이 세운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권국가가 시행하는 일종의 오만한 여권 발급!

과거의 경험은 관념 속에서 재단되니까 유보한다고 쳐도, 막상 현실에서 이런 망각과 함께 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도미야마 이치로가 <전장의 기억>에서 오키나와가 전쟁을 거치면서 어떻게 일본화되어 가는지, 일본화되는 과정에서 일본화되지 않는 균열의 지점이 어딘지 묻고 또 물었던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탐라, 제주도가 겹쳐지고, 또 우리의 삶이 겹쳐진다.

경상도 공무원은 경상도사(史)를

국사, 즉 국민국가의 기억은 역사(학)를 부정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고착이다. 이 국사의 고착이 갖는 폭력성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첫째 층위. 언젠가 본 ‘장군님’으로 시작하는 개그 프로그램. 신라 사신이 고구려 국왕에게 왔을 때 통역을 내세운다. 경상도 사람이 하는 말을 평안도 사람이 못 알아들었다는 발칙한 상상인데, 나는 거기에 한 표 던진다. 충청도 천안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대학 들어와서 마산 친구가 하는 말 대부분을 못 알아듣고 알아듣는 척 웃기만 했다. 분명 ‘국어’를 하는 건 맞는데, 주파수, 발음, 억양이 나를 헷갈리게 했다. 국사는 이런 현실은 물론 개그맨의 상상도 용납하지 않는다. 삼국시대는 원래 하나여야 하는데 불순하게도 셋으로 나뉜 시대인 셈이다. 국사의 경계 짓기!

둘째 층위. 내가 어떤 삶을 살던, 어느 집안이건, 종교가 뭐건, 어떤 사회활동을 하건, 어떤 학교를 다니건, 나의 기억은 대한민국사(史)라는 한 차원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전라도 공무원이나 경상도 공무원이나 모두 경상도사(史), 전라도사(史)가 아닌 국사를 배워야 한다. 그것도 이상한 한국사검정시험인가 뭔가 하는 거 3급을 따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용산구 공무원이 왜 국사 시험을 봐야 하나? 용산구 사(史)를 봐야지! 이 층위는 경계 짓기가 아닌 경계 지우기, 곧 차이의 삭제!

그렇다고 내가 국사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 무대에 국가 또는 나라라는 차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여러 차원 중 하나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차원으로 다른 차원이 흡수된다거나, 하나의 차원을 위해 다른 차원이 왜곡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한국사의 경우 비교적 오랫동안 중앙집권국가를 유지했고 그에 따라 국사의 망각 기능이나 폭력성이 미국사나 유럽사에 비해 적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위에서 말한 우려를 상쇄하지는 않는다.

‘역사의 창(窓)’의 해프닝

이렇게 군림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기억인 국사를 균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두 층위에 대한 실증적 비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당연히 우카이 사토시 선생 같은 주권국가에 대한 비판적 사유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나는 전에 다른 측면에서 국사가 국사를 균열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하나는 국사를 관장하는 국가 기관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둘 다 국사라고 불리는 역사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통상 짐작이 가기 어려운 사태였지만, 알고 보면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첫째. 2006년 내가 국가기록원에 근무할 때이다. 국가기록원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소속기관으로 공공기관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기록의 생산, 관리, 보존, 활용에 대한 정책과 실무를 총괄하는 관청이다. 이때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근무하던 분이 원고 의뢰를 해왔다. 내가 조선시대 실록을 편찬하던 춘추관을 주제로 논문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분은 제언하기를, “실록을 편찬하던 춘추관의 후신이 국편(국사편찬위원회의 약칭)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 국편 소식지 ‘역사의 창’에 춘추관 얘기를 실어볼까 합니다.”라고 했다.

허어, 이를 어쩐다? 실록을 편찬하던 춘추관의 후신은 국편이 아니라, 지금(2006년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는 국가기록원인 것을! 오해가 있는 듯하다고 사양했지만, 춘추관의 후신이 현재 어느 관청인가보다 우선 내 글이 필요한 듯하여 난감해하면서 수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조선시대 춘추관에 대해 길게 소개하고, 끝에 아주 조심스럽게 춘추관의 후신은 국가기록원에 가깝다는 말을 간단히 덧붙이는 모습으로 원고를 마쳤다. 그 원고는 국편 ‘역사의 창’ 2006년 여름호에 실렸다.

알다시피 국편은 1970년대 유신정권 때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 일환으로 국사교육을 강화하면서 생긴 국책기관이다. 굳이 국민국가의 기억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일체의 수식이 필요 없었다. 왜냐? 당시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에 쓰인 대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으니까! 조선시대에는 이런 ‘국편 식의 국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원고청탁에 당혹했던 것이다.

‘국사’ 실록이 보여주는 가능성

두 번째 경험. 어디선가 논문을 발표하면서, 실록을 가리켜 국사(國史)라고 하니까, 듣고 있던 동료 한 분이 실록을 국사라고 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했다. 이 질문은 당시에 엄연히 실록을 국사라고 불렀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무식의 소치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국사라는 용어가 조선시대 전공자에게는 어색하다는 뜻도 된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는 우리가 아는 요즘 ‘국사’를 편찬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국사라는 용어에 내재한 간극이 있다.

실록은 문서를 날짜별로 모아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정리된 근대국가의 기억이 아니다. 다만 실록도 편찬은 한다. 그래서 흔히 역사학자들로부터 필요한 것만 남긴 기록이라는 혐의를 받는다. 그러나 모든 기록은 필요한 것만 남긴 것이다.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은 기록을 남기는 사람 고유의 몫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만 남겼다는 것이 실록을 폄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같은 ‘국사’라는 말을 붙이지만, 실록은 국민국가의 ‘국사’와 다르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볼 때, ‘사(史)’에는 ‘History’뿐이 아니라, ‘Archives’도 포함된다. 실록은 문서의 등록이라는 점에서, ‘History’가 아니라, ‘Archives’에 해당한다.(참고로 Archives는 문서기록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 보관장소나 관청을 가리키기도 한다.) 실록을 국사라고 말할 때는, 국가 차원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든가 국가 차원에서 편찬한 기록이라는 의미였다. 실록의 자료가 되는 기록을 생산하는 조직이나 기구로 정부조직만한 것이 당시에 있지도 않았거니와, 그 기록을 실록이라는 편찬물로 정리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자원이나 인력을 동원하는 역할도 정부조직이 맡았던 국가 차원의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실록을 ‘국사’로 인식했을 것이다.

유럽의 경우, 근대 ‘국사’의 형성 과정과 함께 ‘국립기록관[National Archive]’을 만들었다. 교구와 가문, 지방의 ‘Archives’가 아닌 국가의 ‘Archives’이다. 이런 점에서 일견 근대국가와 ‘National Archive’는 협조적인 듯하다. 실제로 19세기에 건립되기 시작한 국립기록관은 곧 민족주의적 충동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춘추관이 조선이라는 국가에 대해 그러했듯이, 국립기록관은 국민국가에 대하여 미묘한 관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첫째, 국립기록관은 근대국가를 안으로부터 비판하는 기능을 갖는다. 최근 서울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광고를 내면서 지출한 홍보비가 무상급식을 하고도 남을 액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서울시의 예산 ‘문서’가 시민이나 시의원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립기록관의 사명 중 하나인 ‘정부활동의 투명성과 책임성 보장’이다.

둘째, 국립기록관은 해당 사회의 기억을 보존한다. 여기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국립기록관에서 보존하고 있는 ‘국사(National Archives)’는 ‘국사(National History)’의 동일성을 해체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National Archive’는 ‘국사’ 교과서와는 다른 역사 쓰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Archives’는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National Archive’는 ‘국사’와는 달리, 중앙과 지방, 동네, 촌, 동아리, 종교단체 등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활동을 역사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해준다. 국사 교과서와는 달리, 얼마든지 재구성할 수 있는 1차사료로서의 아카이브가 국립기록관에서, 각 시도(市道) 기록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국사교육 강화라는 쇼의 배경에는, 분명 최소한도의 사실(史實) 기술에 대해서마저도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좌파적 역사인식’이라고 매도하는 ‘정치역사학’이 개입되어 있다. 그건 그것대로 정리해가야 될 것이다. 아울러 근대 국민국가의 ‘국사’를 곧 대표 ‘역사’로 특권화시킨 점, 역사를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구겨 넣은 점을 반성해야할 시점이기도 하다.

※ 일단 다음 홈피를 방문해보시길.
국가기록원 http://www.archives.go.kr/next/main.do
정보공개센터 http://www.opengirok.or.kr/

응답 1개

  1. cman말하길

    암기할 것 투성이였던 ‘국사’과목이 소위 ‘포기과목’이었던 내가 처음 해외출장지로 중국 심양으로가서 현지 공무원들과 관광차 ‘하궁'(청대 여름철 일종이 휴가지 궁궐)에 가서 전시된 유물들에 대하여 배운 바를 설명했더니 현지인 왈 역사학을 전공하셨냐며 존경(?)의 눈빛을 보이기에 혼자 실소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같은 바보도 역사를 배워서 폼을 잡은적이 있습니다. 역사의식 없는 지성과 시민은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언제쯤이나 우리 역사교육이 상식의 수준으로 돌아 올까 생각합니다. 현재 오락가락하는 역사교육은 틀림없이 역사를 무서워하거나, 역사를 모르거나 둘중 하나인 무리들이 하는 짓일 겁니다. 아니면 둘 다 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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