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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융희, G20 ‘쥐벽서’ 사건에 대한 탄원서

- 편집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70대의 노인으로, 지금까지 법률문제로 탄원서를 써 본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처음 신성한 재판에 관여하여 탄원서를 쓰려고 하니 마음이 매우 착잡하고 주저됨니다. 그럼에도 이 탄원서는 꼭 써야겠다고 생각되어 감히 글을 올림니다.

저는 피고인 박정수와 최지영을 오래 전부터 같은 연구실에서 함께 배우고 공부하며 지내는 친구요 선생, 그리고 가까운 동료로써 지내고 있습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젊은 학인들의 배움터요 공동체인 연구실을, 이 최고령의 늙은이가 찾아다니며 10여년동안 그들과 더불어 배우고 익히며 어울리고 있으니, 누구보다도 저는 피고인들을 잘 아는 처지입니다.

연구실에는 많은 젊은 학인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가장 가까이서 어울리며 존경하는 동료가 바로 박정수와 최지영입니다. 물론 그들의 인격과 학문의 자세가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꼭 탄원서를 써야겠다는 지금의 심정은 그들과 가까운 동료로써가 아닌, 그들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온 기성세대로써, 한 사회의 선배로써, 그들과 같은 세대의 자식을 둔 아비로써, 어떤 알수 없는 자책과 책무와 무거운 마음의 부담감이 의무처럼 느껴진 마음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박정수와 최지영은 정말 훌륭한 인격과 지식을 갖춘 젊은 학인입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바라본 많은 사람들, 특히 요즈음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들 박정수와 최지영은 정말 법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가장 착하고 순수한 학자요,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젊은이들입니다. 세대 차이의 후배들이지만 그들을 마음으로 존경하는 나의 동료요 친구입니다. 곁에서 바라본 그들.
장래를 이끌 젊은이라면 그 정도의 문제를 갖고,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더구나 어느 누구보다도 아주 선량하고 순수한 그들이 진리를 배우고 익히면서 느끼는 마음속에 분출된 나름의 감정 표현을, 너그러히 수용 못하는 제도요 우리의 사회라면 정보화 사회의 지구촌 시대를 이끌 수 있는 미래의 젊은이들이 양성될 수 있을까, 라는 이 늙은이의 망상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바쁘실 판사님께 좁은 소견으로 되지 못한 소리를 늘어 놓아, 신성한 재판에 행여 조금치라도 누를 끼칠까 두렵습니다. 다만 70평생을 살아오면서 매사 마주친 세상사들이, 가장 믿고 바람직스러운 젊은 동료가 매우 착하고 순수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매우 어려운 처지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 자식을 둔 애비로써 착한 자식만이 꼭 바른 자식이 아님을 경험하면서, 마음에 무거운 부담의 짐을 외면할 수 만은 없어 탄원서란 민원으로 늙은이의 넉두리를 늘어 놓았습니다. 혜량하여 주십시오.

정말 박정수와 최지영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하고 순수한 모범 시민입니다.
재판장님의 특별한 배려와 관용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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