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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G20 ‘쥐벽서’ 사건에 대한 탄원서

- 편집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미술인으로서 미술이론과 비평을 연구하며, 글쓰기와 미술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이태호입니다. 저는 2007년에 영국의 미술인 뱅크시의 작품과 활동, 그리고 그 의미를 미술전문 잡지에 기고한 일이 있으며, 이후 출간된 책 에 ‘해제’를 쓴 일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포스터 훼손 사건으로 입건된 박정수와 최지영에게 각각 징역 10개월과 8개월의 구형이 언도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크게 충격을 받은 때문입니다. 그것은 본인이 이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체재와 법 감정, 그리고 국제적 및 예술적 상식과 너무나 거리가 있어서, 이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올리며 재판장님께 선처를 호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제 의견들을 될수록 간략히 기술하고자 하오니, 다소 번거롭더라도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박정수의 작업이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근대미술 이후, 특히 20세기 이후의 미학에서는 박정수의 작업을 분명히 예술에 속하는 것으로 봅니다.

미국국립현대미술관 ‘다다’전의 포스터-<마르셀 뒤샹, ‘L.H.O.O.Q.’ 1919년>. 워싱턴D.C. 2006년왼쪽의 그림은 지난 2006년 미국 워싱턴D.C.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회의 포스터입니다.

이 포스터의 사진은 다빈치가 아니라, 마르셀 뒤샹이라는 작가의 20세기 초 작품입니다. 그는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인쇄한 복사본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 넣었고, 제목을 라고 바꿨습니다. 이 작품을 뒤샹의 명작품의 하나로 인정하는 것은 단지 미국의 국립미술관만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모든 정통 미술사와 이론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 속의 위대한 미술작품들을 흔히 실제작품이 아니라 수많은 대량복제인쇄물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그 인쇄물의 이미지에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무엇을 덧붙이거나 왜곡을 가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미술작품은 이제 전 세계에서 너무나 많습니다. 이른바 포스트모던미술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표현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박정수의 작업에 대해 그 질의 높고 낮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예술행위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이 분명히 하나의 예술행위이며,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근대 이후의 예술가나 교양인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세계화’를 지향해왔으며, 그 성과에 힘입어 실제로 G20회의를 유치한 국가에서, 대량복제 인쇄물 포스터에 그 정부기관이 중세에나 있었을 법한 대단한 권위를 앞세우며 그 중 몇 장에 가필을 했다고 작가에게 10개월의 징역을 명하는 것은 단지 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 국제적으로, 우선 G20회의 참여국가에서부터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2. 박정수의 행위가 범죄인가, 하는 문제

해외에서 낙서화(그래피티)가 ‘범죄인가, 예술인가’하는 문제는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이기도 합니다. 직분상 본인이 아무리 미술인편에 서서 본다 해도, 사유재산이나 공공의 기물에 심각한 손괴를 가하는 것에 예술의 이름으로 무조건 손을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된 박정수의 작업은 개인이나 공공의 건물 등 부동산에 그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에서 제작한 대량의 인쇄물로 길거리 여기저기에 붙여진 포스터일 뿐입니다. 특별히 법으로 보호하는 선거벽보도 아니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즉시 없어질 한 행사의 포스터입니다. 뜯거나 구기면 그만인 포스터에 한 시민이 자신의 의견표명으로 유머러스하게 동물(쥐)을 덧그렸습니다. 그 행위가 징역 10개월의 중죄에 처해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결코 적지 않은 예산과 시간을 들여 제작한 관영방송 KBS의 뱅크시 특집 ‘예술의 반란-게릴라아티스트, 도시를 쏘다’를 1시간짜리로 만들고 방영한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요? 그리고 제가 해제를 쓴 책 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 의해 ‘청소년권장도서’가 되는 이유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쥐가 불길한 동물이라는 것도 검사의 주관적 판단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적 예술가이자 기업가인 월트 디즈니는 쥐그림(미키마우스)으로 명성과 부를 쌓았고, 그 외에도 최근의 뱅크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쥐를 그려 환영을 받아왔습니다.

쥐를 많이 그린 예술가를 관영방송에서 방영하고, 그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가 되는데, 그와 비슷한 일을 매우 소극적 방식으로 행한, 즉 공공의 건물도 아닌 한갓 인쇄된 포스터 위에 그림을 그린 한국인은 왜 징역 10개월의 구형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본인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3. 표현의 자유

여기서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가 현저히 위축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왔는지, 그리고 현재에도 이 법의 실제와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경비와 노력이 투자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대가와 희생이 있더라도 이 법은 지켜가야 할 뿐 아니라 더욱 확대해가야 하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의 위축은 시민과 예술가의 상상력 자체, 나아가 정신 자체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지난 70년대 말 유신정권의 ‘장발 단속’이 계속됐다면 오늘날 우리가 때때로 자랑스러워하는 ‘한류’ 문화가 가능했을까요? 문화와 예술은 ‘공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에 의해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명하신 재판장님,

위와 같은 이유를 근거로 포스터 훼손사건에 대한 선처를 앙망합니다. 저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존중되고 토론되는 사회, 시민과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꿈꿀 수 있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세계를 위해 두 사람이 중형에 처해져선 안된다고 믿습니다. 한 시민이자 미술인으로서 올리는 이 탄원서에서 재판장님께서 나라와 시민사회와 예술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선의를 보아주시길 기대합니다. 더불어 박정수와 최지영 사건에 대한 재판장님의 현명하고도 관대한 처분을 간곡히 요청합니다.

미술인 이 태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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