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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 G20 ‘쥐벽서’ 사건에 대한 탄원서

- 편집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중앙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 강내희입니다. 이번 사건의 피고인 박정수, 최지영 양인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이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제가 이번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신문 보도를 통해서이고, 피고인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피고인들이 소속한 수유+너머라는 학문공동체와의 개인적 인연을 통해서입니다.

제가 알기로 피고인들은 G20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공용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공용물건을 훼손한 것이 법에 위촉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라피티 작업을 한 일로 사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라피티 작업이 사회적 풍자를 목적으로 하는 표현 행위로서 무엇보다 서로 웃자고 하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행 법률을 위반한 점이 없지는 않더라도 두 피고인의 행위는 표현의 자유의 폭을 넓혀서 우리 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려는 취지가 크다는 것이 또한 저의 소견입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제가 강의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예컨대 <리어왕>, <헨리 5세>, <햄릿>, <템페스트> 등에는 어릿광대, 바보라고 부르는 인물 유형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들 바보가 벌이는 가장 특징적인 짓이 권력자의 흠결을 꼬집으며 권력자를 놀리는 것입니다. <리어왕>에 나오는 바보는 자기 왕국을 딸들에게 나눠주려는 리어왕의 결정을 바보짓이라고 놀리지요. 물론 이들 바보는 바보인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바보 현자의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이런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르네상스 시대에 성행하던 전문적 바보(professional fools) 제도를 반영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왕궁 안에 바보들을 거두어 그들로 하여금 왕이나 귀족들을 놀려대도록 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공주 인판타 마그리트를 그린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그림 <라스 메니나스>에도 그런 바보가 나오며, <햄릿> 제5막에서 주인공 햄릿이 들어 올리며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해골의 주인공 요릭도 그런 바보입니다.

박정수, 최지영 피고인들은 아마 우리 시대의 바보일 것입니다. 두 사람은 공용물건을 훼손하는 위법적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보라면 우리 사회는 그들을 처벌해야 하는 것일까요? 절대왕정 아래서도 바보들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보들을 옆에 두면서 정상적인 사람들은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게 했습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대한민국의 오늘, 우리 시대의 권력에 대해 바보짓을 한 두 사람을 사법적으로 처벌하는 상황을 저는 상상하기 어렵군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두 피고인을 선처해주십시오. 두 사람 모두 악의로 공공물건을 훼손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과 함께 한 벗 웃어보자고 한 것입니다. 풍자적인 웃음과 해학에는 그에 못지않은 또 다른 풍자와 해학으로 응대하는 것이 훨씬 더 멋있는 일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한 번 더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부디 이 사건을 현명하게 헤아리셔서 피고인 박정수, 최지영에게 선처를 내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강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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