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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 G20 ‘쥐벽서’ 사건에 대한 탄원서

- 편집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경남 밀양에서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는 이계삼이라고 합니다.

저는 피고인 박정수, 최지영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며, 다만 이분들이 지난 2010년 G20 국제회의 당시 행한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언론 기사를 통해 보았고, 관련 자료를 조금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 두분이 기소될 만한 성질의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가르치는 고등학생 아이들 또한 학교나 선생님들을 가끔은 그렇게 빈정거리거나 혹은 비판하는 뜻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커뮤니티나 소통 매체를 통해서 혹은 학교 축제나 기타 여러 공개된 장소에 그런 표현들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표현들을 지켜보면서 ‘교사’라는 제 자신의 권위의식만을 내려놓고 보면 거기에 참으로 놀라운 생명력과 자유에 대한 꿈틀거림이 살아있는 것을 느끼며 또한 감탄하곤 합니다.

저는 피고인들이 행한 퍼포먼스는 최소한 제게는 ‘아, 이 곳이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명력의 감흥을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외람되오나, 이러한 행위가 어떻게 형사입건의 사안이 되는 것인지, 그것도 10개월, 8개월씩 감옥 생활을 구형해야 할 사안이 되는지 미욱한 제 판단력으로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들의 행동이 극소수 권력을 가진 이들과 그들 동아리에 걸쳐 있는 인간들을 제외한 다수 시민들에게는 영문도 모르고 불려들어가야했던 ‘G20’이라는 마당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한 사회가 반드시 제공해 주어야 할, 하나의 탁월한 예술적 기표(signifiant)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 공동체의 건강성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실존적 생명력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용기있는 예술가들이 살아움직일 수 있는 자유와 표현의 공간을 한껏 열어주는 일에 조금도 주저하지 말아야 하리라 믿습니다.
재판장님께옵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또한 이런 예술적 표현에 담겨있는 인간의 생명력과 자유에의 지향을 이해하시는 분이라 믿기에 이렇게 탄원의 글을 올립니다.

재판장님의 판결을 통해, 대한민국이 그래도 사람이 살아 있고, 인간의 정신이 살아있는 나라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평안을 빌며 탄원의 말에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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