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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서울시에 살고 있고,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평범한 시민 김동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피고인 박정수 최지영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하여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저는 피고인을 개인적으로 만난적도 없고, 본 적도 없으며, 어떤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쥐그림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도 피고인의 이름도 알지 못했고, 검찰에서 각각 징역 10개월, 8개월을 구형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나서야 피고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피고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하고, 지역사회와 주변에 어떤 활동으로 기쁨을 줬는지, 그런 행동들을 위해 그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사건에서 표현의 자유가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시 옆길로 빠져서, 황당할지 모르지만, ‘고전소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유입과 정통 유학의 득세로 한국에서 소설은 설 곳이 없어보입니다. 채수라는 사람은 <설공찬전>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로 추정되는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그를 죽여야 한다는 탄핵까지 받게 됩니다. 이처럼 소설이 박해 받았던 이유는 정통 성리학의 정서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 환상이 가미되어있는 것도 있지만 다른 장르가 할 수 없었던, 봉건적 지배질서에 대한 비판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서얼 등, 신분 질서의 부조리함을 비판한 허균의 <홍길동전>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소설이 지배질서 하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조명하고, 신분적‧성적 모순을 말하자 성리학자들은 ‘종묘사직이 와열될것이다’며 염려하고, 소설가들을 비난합니다. 그들, 성리학자들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원천봉쇄하고 ‘삼강오륜’ 등, 국가 통치 이념에 부합하는 글만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변을 지키면서 소설을 쓰기 위해 익명으로 소설을 쓰기도 하고, 배경을 중국으로 설정하기도 하며, 마치 자신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기록한 것 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 저희 사회에는, ‘종묘사직을 와열’할 것을 걱정한다며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탄압하고 통치이념에 부합하는 글만 있기를 바라는 성리학자들이 되살아 있습니다. 단지 ‘종묘사직이 와열’된다는 말은 ‘국가의 이익’이라는 말로 바꾸고, 삼강오륜의 통치이념은 G20 정상회의에 대한 국가의 시각으로 바꾸면 딱 맞을겁니다. 국가의 압도적인 홍보력 앞에, 피고인은 다른 시각도 존재함을 알리고 싶었을 뿐일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G20 홍보물에 대한 그라피티 작업으로 나타났습니다. 봉건적 사회질서에 대한 고전소설가들의 의문처럼, 세계화에 대한 의문으로.

피고인의 행위는 또한 공공에 크나큰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행동에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피고인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공용물건을 훼손했다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마치 고전소설을 대하던 조선 성리학 관료들처럼, 사회 비판에 대한 목소리를 막기 위해 무리한 기소와 함께 무거운 형벌을 구형했습니다.

멈춰있는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깨끗함을 유지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거 봉건사회에서 일어났던 일이 답습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회가 깨끗하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공공에 심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으로 다른것에 우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검찰이 공공에 심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하는 것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시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부디, 피고인에게 선처를 바랍니다.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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