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이미지올로기

‘나는 너희들을 찬란한 파산으로 이끈다’

- 유정아(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하트필드와 포토 몽타주

때로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여 순간적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가 그러했다.

‘정의의 여신’이 상처를 입어 피범벅이 되었다. 아니 거꾸로 말해야 내 몸이 느낀 전율을 조금 더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상처를 입어 피범벅이 된 주체가 다름 아닌 ‘정의의 여신’이다. 올바름을 수호하고 죄의 경중을 가늠해야 할 칼과 저울이, 붕대로 칭칭 감긴 손 안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여신의 얼굴마저 피묻은 붕대로 감겨 있어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이다.

위의 포토 몽타주는 베를린 다다이스트를 대표하는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 1891-1968)의 작품 <사형 집행인과 정의>(1933)이다. 포토 몽타주는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이 사진을 이용해 콜라주한 작품들을 일컫는 것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과 사상을 담는 도구로 몽타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포토 몽타주는 미학적 감상의 차원에 머물던 예술품의 경계를 정치사회적으로 확장시켰고, 미학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하트필드는 자신의 작품이 조금 더 쉽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미술관을 벗어나서 신문이나 잡지 등의 출판 매체를 활용했다.

위의 포토몽타주는 1933년 2월 27일에 일어난 독일 의회 건물 화재에 관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나치는 이 화재의 책임을 공산주의자에게 돌려서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4천여명의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사진 아래의 텍스트에는 ‘의회 화재 재판정의 괴링 : 나에게 법은 완전히 피로 물들게 하는 일이다.’라고 씌어져있다. 당시 독일 사회가 파시즘으로 내몰리면서 위태로워진 상황에 대해 하트필드는 피로 물들은 정의의 여신으로 상징화하고 있는 것이다.

존 하트필드의 본명은 헬무트 헤르츠펠트(Helmut Herzfeld)였다. 하지만 독일 내 지나친 국수주의에 반발하며 1916년에 존 하트필드로 개명했다. 청년 하트필드가 활동할 무렵 독일은 총파업과 대중시위, 패전국에 부과된 전쟁 배상금 등의 경제적 위기가 닥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트필드를 위시한 베를린의 다다이스트들은 독특한 정치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포토몽타주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하트필드의 작품에는 히틀러와 나치 지도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가운데 괴링은 위에 언급한 화재사건과 함께 자주 풍자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그가 국회의사당 화재사건을 사주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하트필드는 <괴링 : 제 3제국의 사형집행인>(1933)을 통해 이런 상황을 다소 유머스럽게 그러나 끔찍스럽게 표현했다.

독일의 위대한 전쟁영웅이며 장교인 괴링은 피묻은 도끼를 들고 서 있는 도살자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괴링 옆에는 국회의사당 건물의 불타는 모습이 병치되어 등장한다. 서로 관련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은 다음의 텍스트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9월 12일 라이프치히에서 네 명의 무고한 남자들- 흉악한 법적 살인의 희생자들-은 선동대리인인 루브와 함께 재판받도록 되어 있다. 의회 화재의 실재 방화범인 괴링은 법정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다’

파시즘에 대한 폭로

하트필드의 작품에 매우 자주 단골로 등장했던 인물은 히틀러였다. 하트필드는 독일을 파시즘의 독재로부터 구출하려고 했고, 나아가 대중들에게 파시즘의 본성을 일깨우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이 가까이 있으면 더 이상 그 대상을 눈여겨보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파시즘조차 그러하다. 이 때 한 장의 이미지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트필드는 히틀러의 정치적 본성과 전제주의적 특성을 풍자하며 <황제 아돌프 : 나는 너희들을 찬란한 파산으로 이끈다>(1932)을 제작했다.

하트필드가 야망 가득한 히틀러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간단하다.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사진에 몇 가지 요소를 추가했을 뿐이다. 위로 치켜올려진 콧수염, 깃털이 꽂힌 황제의 모자, 그 근엄해 보이는 표정까지. 하트필드는 오랜 지배계급을 의미하는 황제의 제복과 새로운 독일의 건설을 꾀하는 히틀러를 대립시킨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작품 제목의 패러디이다. 독일을 불운한 1차 세계대전으로 몰아간 황제는 ‘나는 그대들을 찬란한 시대로 이끌것이다’라고 서약했다. 다시 한 번 독일을 불운한 파시즘 체제로 몰아간 히틀러에 대해서 하트필드는 ‘나는 너희들을 찬란한 파산으로 이끈다’ 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전쟁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독일국민들을 또 다른 전쟁으로 이끌었던 황제의 거짓 서약은 이후 더 큰 불행으로 낳은 히틀러의 모습 위로 겹쳐진다.

히틀러의 정치적 본성과 함께 그의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적 본성을 풍자한 작품을 살펴보자. <아돌프, 슈퍼맨 : 황금을 삼키고 쓰레기를 내뿜다>(1932)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 하트필드는 히틀러의 몸 안의 척추 뼈를 동전으로 쌓여진 기둥과 조합시켜 히틀러와 자본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풍자한다. 나치의 숭배대상인 히틀러의 얼굴에 황금을 삼키고 있는 탐욕적인 몸체를 대립시킴으로써 위대한 정신의 형이상학적인 면에 돈과 탐욕의 형이하학적인 면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히틀러의 모순을 폭로한다. 입을 벌려 연설을 하고 있는 히틀러는 거짓말을 내뿜는 자본주의의 대변자로서 그려진다. 이 작품은 다섯가지 요소- 집회에서 연설하는 히틀러의 신문사진, 갈비뼈대, 벨트, 동전더미, 나치 기장의 네거티브 사진-이 결합되었고, 에어브러쉬가 교묘하게 사용되어 히틀러의 원래의 인상이 완벽하게 표현되었다.

1933년 제 3제국을 건설할 당시, 히틀러는 경제적 어려움을 독일의 자본가 계급과의 밀접한 이해관계 속에서 공생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해결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하트필드는 히틀러를 파시즘과 거대한 자본 계급과의 비밀스런 관계를 드러내는 데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다. 즉 나치의 체제는 재벌의 자금에 의해 유지되고 재벌들은 그들의 사업상의 이익을 위해 나치를 옹호한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본가들과 히틀러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 중 대표적인 것이 <히틀러식 경례의 의미>(1932)이다.

조그만 히틀러와 뒤에 서 있는 거대한 자본가는 일단 크기면에서도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보이는 현실을 고려할 때 히틀러의 크기가 더욱 크게 그려져야 하는데, 자본가의 모습을 거대하게 그림으로써 둘 사이의 관계를 암시한다. 더 나아가 히틀러식 경례를 하고 있는 히틀러의 들린 손 위에 놓인 돈을 통해 숨겨진 정체가 드러나면서, 그 다음 단계로 ‘내 뒤에는 수백만이 있다 : 작은 사람이 커다란 선물을 요구한다’라는 텍스트가 파시즘과 자본의 결탁을 형상화한 이미지임을 말해준다. 이 작품은 1932년 11월 선거가 한창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이 선거에서 파르벤(I.G. Farben)은 400,000마르크를 지불하고 선거의 주된 금융 후원자가 되었다. 프리츠 티센이나 플릭, 루덴도르프 같은 산업 경영자들은 1930년부터 나치의 선거운동에 많은 재정적 기부를 바쳤다.

하트필드는 이질적인 조형 요소들을 나란히 배열해 충격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도록 하는 이미지의 변증법, 포토 몽타주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자신의 사상과 비판의식을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전후 독일이라는 특수하고 민감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고, 이를 실천으로 옮길 줄 아는 예술가였다. 이후 나치를 피해 프라하로 망명한 후 하트필드는 전 세계에 나치의 만행과 실체를 알리는데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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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트필드의 작품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예술이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특정 사회가 파시즘 하의 독일과 같은 끔찍한 상황에 처해진다면, 그래서 정의의 여신이 지닌 무기들이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면, 예술은 풍자와 비판이라는 기능을 톡톡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예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사회비판과 풍자에만 쏟도록 만드는 그 사회는 얼마나 비참하고 천박한가!

* 참고논문 : 권수경, <존 하트필드의 정치적 포토몽타주에 나타난 변증법>

응답 2개

  1. hermes말하길

    ㅋ 감사합니다. 저런 겁나는 풍자가 나왔던게 거의 1930년대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저만도 못하죠. 어디 무서워서 풍자하겠나요…

  2. 비틀어말하길

    오호, 풍자와 비판으로의 이미지! 가히 아트라 할 수 있군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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