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메이데이>

- 김민수(청년유니온)

#1_ 메이데이

5월 1일 – 온갖 휴일(한글날, 식목일.. etc)들이 폐지 됨에 따라 적당히 위상이 올라갔다곤 하지만, 으레 근로자의 날로 명명되는 메이데이(노동절)는 그 위상이 퍽 와닿지는 않는다. 타이틀 한 켠에 청년유니온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청년 노동의 잔혹한 현실을 폭로한답시고 설치는 나 녀석도,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이 아닌 ‘메이데이’로 읊은 역사는 작년과 올해, 딱 두 번이다. 엄밀히 말해, 주휴일을 제외하고 노동자에게 보장 된 유일한 휴일인 노동절의 위상이 이토록 난해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추석, 설날, 어린이 날 등, 우리가 으레 ‘쉰다’고 알고 있는 빨간 날들은 사실 국가 공무원에게만 보장 된 휴일이다. 추석 때 집에 안 보내주고 일 시킨다고 네이버 지식인에 법률적 하소연을 구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의미이다. – 공무원을 제외 한 노동자에게 보장 된 법정 휴일은 주휴일(대개 일요일)과 노동절 뿐이다.)

네이버에 몇 글자 치면 확인할 수 있는 연대기적 사실을 지면에 할애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분위기 환기 차원에서 몇 줄 덧붙이려 한다. 메이데이는 19세기 말 미국의 시카고에서 벌어 진 대규모 총파업에서 유래 되었다. 여지없이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던 이 날의 핵심 구호는, ‘8시간 노동’이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곧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가슴에 저민다. 노동시간의 단축이야 말로, 오직 자가증식이라는 황당한 목적을 향해 질주하는 자본에 대항하여 인간의 존엄을 획득하는 길이 아니었을까. 자본가의 품에 안길 잉여가치를, ‘시간’의 개념으로 되찾아 인간으로 존재 할 자유를 얻는 길 – 인간의 길.

2011년은 메이데이의 강렬함이 121번 째 돌아오는 해이다. 이상하게 마음이 좋지 않다. 8시간 노동이라는 뜨거운 함성이 대륙을 적신지 백 여년이 지났지만, 이 땅의 노동은 여전히 연간 2200시간을 웃돌고 있다. OECD 평균을 6~700시간 앞지르고 있으며, 단연 세계 최강이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와 ‘8시간 노동’이라는 원초적인(…) 슬로건이 유효한 이 나라는, 대체 언제 쯤 글로벌 스탠다드에 진입할 것인가. -9시 뉴스에서 ‘가카’의 용안과 쇳소리를 마주하고 있자니, 쉽지 않을 것 같다. 제기럴, 2012년에 투표 해야헌다 ㅋㅋㅋ

#2_ 초대 받지 않은

시청 한복판에서 벌어진 메이데이 기념행사에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매번 대규모 집회 참여할 때마다 조금씩 인원이 늘었는데, 이번에는 앙증맞은 깃발 아래 서른 명 가량 모였다. 조금 민망하지만, 이 날 행사에는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메인 무대가 있었다. 보다 많은 청년들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깨알같이 만든 ‘최저임금 댄스’를 시연(?)하게 된 것이다. 전야제를 겸해서 진행 된 운동회에서 벼락치기로 연습한 솜씨를 어설프게 선보인 유쾌한 시간이었다.

최저임금 댄스 공연 이후에도 잔디밭에 주저앉은 우리들은 나름의 축제를 즐겼다. 정치인들의 축배에는 빈정거림이나 박수를 선사 했으며, 준비 된 퍼포먼스는 넋을 놓고 지켜 보았다. 뜨거운 투쟁가에는 제멋대로 코러스와 율동을 섞어가며 불러 제꼈다. 근엄함이 지배하는 투쟁집회의 한 켠에서 세대를 교차하는 새로운 감수성이 꽃 피고 있었다.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진행 될 대규모 노동집회의 감성적 스펙트럼이, 보다 넓어지길 기대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나, 오늘처럼 메이데이 행사에 나온 것은 처음이야. 그동안 내 자신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없이 살아왔던 것 같아서 반성했어.”

한 조합원이 뒷풀이 자리에서 맥주 잔을 기울이며 위와 같이 말했다.
나는, 그의 입장을 반대했다.

우리에게 노동자의 정체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초대받지 못한 것이다.

1600만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그 어떠한 거대 노조에게도, 우리는 초대받지 못했다.
조직되지 않은 분노의 가치는 취급하지 않는 시대이거늘, 우리의 분노는 조직되지 못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에 담뱃값 바코드를 읽히는, 반갑습니다 고객님이라는 인사말에 씨발년이라는 화답을 받는, 술 취한 취객들의 실랑이와 토악질을 받아내는, 하루를 벌어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연명하는, 빨리 배달하기 위해 죽음과 사투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우리의 분노가 메이데이 행사에 초대되는 그 날, 이 땅의 아름다움은 한결 빛날 것이다.

이 땅의 아름다움이 나아가야 할 경로에, 함께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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