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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G20 쥐벽서 사건에 대한 탄원서

- tibayo85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영화감독으로 활동중인 봉준호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피고인 박정수, 최지영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하여 이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피고인 박정수와 최지영이 G20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비록 공용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한하였지만 이는 예술활동을 통한 다채로운 풍자와 해학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바 재판장님께서도 너그러운 관점으로 보아주시길 호소합니다. G20과 같은 국제적인 대규모 행사도 훌륭히 치러내는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풍자와 유머조차 가볍게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이는 실로 큰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6년 필리페 페팃이라는 프랑스청년은 자신의 동료 세명과 함께 몇 개월에 걸친 치밀한 준비를 통해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조직적’으로 침투하여 경비원과 경찰들의 눈을 피해 두 빌딩의 옥상에 ‘불법적’으로 와이어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와이어 위에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고공 외줄타기 퍼포먼스’를 펼쳐보여 세계무역센터 일대의 교통을 마비시키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그는 물론 퍼포먼스 직후 뉴욕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져 연행되었습니다. 주요 공공시설에의 무단침입, 사전허락 없는 공연, 도로교통을 방해한 점 등등….경찰로서는 당연하고 합당한 연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욕 법원이 이 프랑스 청년에게 내린 최종판결은 아래와 같습니다.

“….피고는 공원에서 뉴욕시 어린이들을 위해 외줄타기 무료공연을 1회 이상 실시토록 한다.”

법률에 대해 무지한 저 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아니 전 세계인 그 누가 보더라도 실로 위트와 센스가 넘치는, 유머감각이 살아있는 최종판결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앞에서 제가 감히 과거 해외의 판례까지 들먹인 이유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1976년 미국사회만큼의 여유는 최소한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의 관용과 유머도 없이 어떻게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너그러운 관점으로 이 사건을 보시어 피고인 박정수, 최지영에게 과도하게 씌워진 혐의를 벗겨 주시고, 선처하여 주시길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영화감독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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