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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 G20 ‘쥐벽서’ 사건에 대한 탄원서

- tibayo85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명석이라고 합니다. 여러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만화를 전문으로 비평하며 여러 일간지와 문예지 등에 기고를 해왔습니다. 문화관광부의 ‘오늘의 우리만화상’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대한민국만화 대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G20 포스터 쥐그림 사건은 발생 초기부터 깊은 관심을 가졌고, 재판 과정을 신문 기사를 통해 챙겨보고 있습니다. 먼저 여러 문제로 바쁘실 법조계가 이런 사안으로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점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검찰에 의해 기소되고 재판과정에 있기에, 피고인들에 대한 탄원의 의미에서 저의 소견을 전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불길한 형상으로서 ‘쥐’를 그렸다는 점에 대해서 만화 그리고 대중문화의 전문가로서 소견을 말씀드립니다. 쥐는 오래전부터 민초, 혹은 사회적 약자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월트 디즈니의 세계적인 캐릭터 <미키 마우스>도 쥐이고, 애니메이션 <마이티 마우스> <톰과 제리>도 쥐입니다. 이 작품의 창작자들은 평소에는 약자로 여겨지는 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쥐처럼 도망만 다니고 움츠려지내던 대중들이 상상 속에서나마 활개를 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도록 한 것입니다. 퓰리처 상을 수상한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 - 어느 생존자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 전체를 쥐로 묘사하며, 고양이인 독일인들에게 수난받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언론을 통해 공판 도중 판사님이 지적하신 부분을 보았습니다. “피고가 쥐를 그려넣음으로써 저 포스터를 원래 그린 사람의 예술작업이 침해됐다는 생각은 안 하나요? 그리고 피고가 쥐를 그려넣은 것처럼, 또 누군가는 저기에 코끼리를 그려넣는다거나 하면 본래의 포스터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어버릴 텐데, 그것은 공공물 훼손이 된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깊이 생각해볼 만한 지적이라 여겼습니다. 이런 수준의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이 공판이 단순히 우발적인 그래피티 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거리 예술 그리고 패러디의 경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를 따지는 건설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피고들이 그림을 그린 포스터가 대량복제된 작품이고, 공공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피고들이 포스터의 인쇄 공장에 난입해서 모든 포스터에 쥐를 그렸다면, 그것은 검사 측이 주장하는 조직적 범행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량복제되어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어간 포스터 일부에 그림을 그려넣은 행위는 그야말로 작은 해프닝에 불과합니다. 이미 인터넷 상에서는 온갖 종류의 광고와 홍보물을 편집하고 재해석한 패러디물이 가득합니다. 물론 대중들이 그 모든 패러디를 보고 유쾌해하거나 즐거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대량복제물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디지털화되지 않고 물질로 존재하는 포스터에 그림을 그리고, 원래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원 제작자의 작업을 침해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번호를 매기고 창작자의 낙인을 찍은 판화 작품이 아닌 이상, 공공기관에서 만든 포스터와 같은 대량복제물에 그만큼의 고유성이나 훼손 불가능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견해로 인해 저는 재판장님이 피고인들의 정상을 참작해 선처를 해주시길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이들은 달리 보면 모두가 방관만 하는 국가 행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거기에 관심을 이끌어내기까지 했습니다. 피고들에게 어느 정도의 법적인 책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 포스터 제작자에게 도의적인 사과를 하고, 재산상의 손실에 대해 약간의 책임을 지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 포스터에 그려진 쥐 그림이 너무 훌륭하다는 사실입니다. 원작 포스터를 빼고 쥐 그림만 따로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탄원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이 때문이니다. 만약 패러디를 빙자해 조악한 이미지로 공공이 보고 있는 포스터를 훼손했다면, 저와 같은 비평가들이 먼저 그런 짓을 벌인 자들을 타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그 쥐 그림은 죽은 포스터를 살아 있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G20을 개최하는 영광스러운 우리나라가 그런 정도의 패러디는 유머로 이해하고, 애교를 가지고 너그럽게 바라보는 국가이기를 염원합니다. 아무쪼록 두 피고인이 공판 과정을 통해 이미 많은 대가를 치루었을 것으로 보이니, 선처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이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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